양봉일지_현대인의 교회를 갔습니다.
초보들의 마음이란 게 사실 거기서 거기지만, 막상 일이 닥치면 별수 없는 것이다. 오늘 아침 일이 그랬다. 게다가 봉순이들의 사체 더미라니. 인터넷 봉선생님들의 가르침을 찾았다. 역시나 모두 나 같은 과정을 거쳤는지 쉽게 답을 찾을 수 있었다. 벌이 죽는 이유는 여러 가지가 있었다. 그것은 응애라는 진드기 피해일 수도 있고, 바이러스 병일 수도 있었다. 하지만 수명이 다 되어서 죽는 경우가 많다고 했다. 꿀벌은 나이를 먹을수록 엉덩이가 까매진다고 하니, 죽은 벌의 엉덩이가 진한 검은색이라면 일상의 일인 것이다.
오래 사는 동물들만 보아 오다, 짧은 수명의 생명을 키우는 것은 달랐다. 벌통에는 장례를 담당하는 일벌이 있다고 한다. 이들이 매일 동료 벌의 시체를 벌통 바깥으로 옮긴다고 했다. 그러니까 나는 벌들이 죽은 봉순이들을 정리한 것을 본 것이다. 하지만 이 쌓여있던 사체들이 또 깨끗이 사라졌는데 … 어디로 간 것일까?
말벌이라거나 응애라거나, 알아갈수록 양봉은 어렵게 느껴졌다. 막막하고 캄캄했다. 강아지와도 대화가 안 된다는 것이 답답한데, 꿀벌은 더 했다. 불안이 계속되고 보니, 봉순이들을 지키기 위해선 ‘어떤’ 아이템이 필요한 거 같았다. 그게 무엇인지 중요하지 않다. 도깨비방망이 같은 무엇인가가 있을 것만 같았다. 그렇다면 쇼핑이다. 그것이 헛된 희망이라도 좋다. 돈으로 천국을 가진 못하지만, 불안한 마음을 구원해 줄 수는 있을 것이었다.
그러니까, 나 같은 샌님들이 하는 행태라는 것이 대부분 장비 구입으로. 실제 해야 할 일을 다했다고 위로하는 것 아닌가. 쇼핑몰로 들어갔다. 양봉 용품점은 벌 빼고는 다 팔았다. 벌 빼고는 아무것도 없는 나 같은 인간에게 그곳은 구원이요, (돈으로 들어가는) 낙원이었다.
솔직히 말해서 양봉 물품은 어쩐지 멋지다고 생각해왔다. 연기를 뿜어내는 은빛 훈연기(무려 스텐레스)와 말벌도 뚫지 못하는 가죽장갑(꿀벌과 같은 노란색이다). 미지의 세계를 탐험하는 느낌의 방충복. 어쩌면 나는 물욕 때문에 벌을 키우고 싶은 건지 모르겠다.
도낏자루가 썩을 만큼 양봉 낙원에는 많은 용품이 있었다. 같은 용품에도 다양한 형태가, 저급에서 고급까지 가격도 다양했다. '주님, 봉순이들이 안전할 수만 있다면 얼마든지 내고 말고요.'
마음은 그렇게 먹었지만, 나는 실용성보다는 디자인이 예쁜 물건들을 착실히 장바구니에 담았다. 어쩌면 영원히 실용적이지 않을 수도 있었다. 왜냐하면 해본 적이 없으니까. (하지만 소장하고 싶은 그런 거 있잖아요.) 물론 냉철한 구매를 위해 결제는 내일 할 터였다. 감성이 충만한 저녁 시간 쇼핑은 위험했다. 관대하고 포용적인 감성은 가계 경제에는 독이었다.
낙원은 친절했다. 나 같은 철부지들을 위해 양봉 서적도 팔았다. 공부를 하라는 말씀이었다. 샌님에겐 역시 이론이 필요하다. 이것이야말로 샌님 머리는 굵어지고 낙원은 돈을 버는 자본주의 아닌가(자본주의를 위해 헌신하겠어요) 그렇지만 자존심은 있었다. 어디서 들은 건 있었고, 그 책을 찾고 싶었다. <365일.. 뭐라고>하는 책이 있었는데. 계절별로, 월별로 해야 할 일이 적혀있는 책이라고 했다. 초보자 수준으로 읽기 쉽게 문답 형식으로 쓰였다고 들었다.
아쉽게도 그 책은 없었다. 양봉 낙원의 전체적인 선별력에 의심의 마음이 돋았다. 다른 낙원에 가볼까. 하지만 밤이 늦었다. 조금만 더 찾으면 나올 것 같지만, 지금을 넘기면 오늘 밤 잠은 다 잤다. 일찍 일어나서 말벌을 잡아야 한다. 노트북을 덮고 잠자리로 들어갔다. 그런데 머리맡에 놓여있는 책 하나. <365일 양봉> 내가 찾던 <365일.. 뭐라고>하는 책이 왜 여기에 있는 거지?
아, 이것은 새해의 내가 오늘의 나를 위해 준비해둔 선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