텃밭 친구 떡두꺼비여, 이제는 안녕
지금 벌통 속에는 수천 마리의 벌이 겨울 준비를 하고 있다. 벌들은 마지막 꿀과 꽃가루를 모으고 있다. 바깥에서 이런 식량을 모아 오는 벌을 수집벌이라 한다. 수집벌들을 위해 착륙판을 둔다. 벌통 입구는 지면에서 10cm가량 높고, 3cm 폭으로 좁다. 착륙판은 지면과 입구를 완만한 경사를 만들어 준다. 벌에겐 계단이기도 한 셈인데, 화물을 가득 실어온 꿀벌들이 쉽게 기어올라 올 수 있도록 해준다.
벌통은 시각 정보를 통해 집을 기억한다. 수직 착륙을 하다시피 한다.
먼 거리를 날아온 꿀벌에게 착륙판은 넓은 주차 구역이기도 하다. 수집벌은 이곳에서 날갯짓을 조금이라도 쉴 수 있도록 해준다. 꿀벌에게는 날갯짓이 가장 많은 에너지를 소비하는 일이다. 한낮이 되어 봉순이가 활동하기에 가장 좋은 시간이 되면 벌통 앞은 러시아워가 된다. 수십 마리 꿀벌이 한 번에 집으로 들어가는 것은 힘든 일이기도 하기 때문에 넉넉한 주차공간은 필수라고 해야 할까.
벌통을 얻어오던 날, 눈치껏 발판을 얻어왔다. 볕에 조금 바래고 계단이 중간중간 깨졌지만 벌들에게 이 발판이 필수였던 것 같다. 색깔도 노란색이었다. 노란색은 이제 벌들의 색이었다. 어느 날, 저 멀리서 신호를 기다리는 어린이집 노란색 미니버스를 보니 집에 있는 꿀벌들이 생각났다. 벌들은 착륙판이 나무 데크라도 되는 듯 총총총 돌아다니는 녀석도 있고, 잘 기어가다 틈새로 굴러 떨어지는 녀석도 있었다. 놀이터 꼬마들 같았다.
봉도사들의 유튜브를 보니 착륙판을 뒤집어서 설치했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크게 다를 게 있을까? 싶었는데, 뒤집어보니 달랐다. 봉순이들이 발판 밑으로 굴러 떨어진 이유가 있었다. 봉순이들이 노느라 구른 게 아니라, 발을 헛디딘 것이다. 그렇다 여긴 꿀벌 놀이터가 아니라 벌꿀 산업현장이었다. 저녁에 유튜브를 보다 말고 랜턴을 들고 벌통을 향해 뛰쳐나갔다. 밤은 풀벌레 소리만 고요히 들렸다. 벌통은 여전히 날갯짓 소리로 분주해 보였다. 벌통 속에선 무슨 일이 벌어지고 있는 걸까. 애벌레들의 체온을 유지하기 위해 유모벌들이 몸을 떠는소리일까?
벌들이 사랑하는 착륙판을 집어 들었다. 알고 나니까 위와 아래가 확실히 달랐다. 발판을 놓으려는 순간. 그 자리에 내 주먹만 한 두꺼비 한 마리가 떡하니 자리를 잡고 있었다.
올해는 봄 가뭄이 심했다. 그러더니 여름에는 비가 많이 왔다. 덕분인지 개구리가 많았다. 주변의 논은 모두 유기농사를 짓는다. 제초제와 살충제를 쓰지 않는 덕에 원래도 개구리가 많지만 이번 여름은 더욱 많았다. 집 주변 풀섶을 헤쳐 걸어가면 개구리가 한 마리씩 꼭 뛰어 도망쳤다. 폴짝. 개구리뿐만 아니었다. 화분 아래나 나뭇잎 그늘진 곳은 어디나 청개구리가 있었다. 청개구리는 턱주머니를 올롤볼록하며 숨을 쉬었다. 저녁이면 두꺼비가 엉금엉금 기어갔다. 느낌상 개구리는 벌레를 많이 잡아먹을 것 같았다. 세상 대부분의 곤충은 풀을 먹는데, 풀 중에 제일 맛있는 풀은 농작물이었다. 농부는 농작물을 두고 벌레와 경쟁하는 셈인데, 개구리가 내 경쟁자를 잡아먹는다면 개구리와 친구가 되는 게 자연스러운 순서 아니겠는가.
어찌 됐든 개구리는 고마운 동물이라 할 수 있었다. 토마토는 먹지 않으면서 토마토에 붙은 벌레들을 먹어주니 말이다. 일종의 누이 좋고 매부 좋은 경비업체 말이다. 비슷한 목적을 가진 닭은 너무 파이팅 넘치는 것이 문제다. 벌레만 쪼아 먹는 것이 아니라 꼭 배춧잎까지 입을 댔다. 같은 꿈을 꾼다 생각했는데 그렇지 않았다. 고대의 공룡을 길들이는 건 힘들었다.
그래서 전래 이야기는 언제나 두꺼비를 이무기를 물리치는 영웅, 혹은 조력자로 묘사했는지 모르겠다. 할머니들은 손주들을 떡두꺼비 같다고 했다. 밤에는 우리 집 방충망으로 청개구리가 출근했다. 불빛을 따라 날아온 나방들은 방충망에 붙었고, 청개구리는 나방이 있는 곳을 찾아온 것이다. 방충망을 잘도 기어올랐다. 청개구리 똥을 치우는 건 좀 귀찮았지만, 식사를 마치고 만족해하고 있는 청개구리의 새하얀 배를 지켜보는 재미가 있었다. 생물다양성이 넘치는 우리 집이 만족스러웠다.
그랬던 두꺼비가 벌통 앞에서 나타났다. 벌통 밑에서 뭘 하고 있던 건가. 하루 종일 꿀을 구해오느라 고생했을 봉순이들을 위해 보초를 서고 있었을 리는 없다. 당연히 꿀벌을 잡아먹기 위해 온 것이다. 뒷간에 빠지면 귀신한테 잡혀간다는 옛이야기처럼, 두꺼비는 발판 밑으로 빠지는 봉순이가 있으면 낼름낼름 잡아먹고 있었을 것이다. 두꺼비 녀석은 작업장 지붕(착륙판)을 번쩍 들었는데도, 자신은 들키지 않았다는 듯 꼼짝하지 않고 앉아있었다. 눈 하나 깜빡이지 않고 특유의 떡두꺼비 자세를 유지했다.
두꺼비는 어기적어기적 자리를 떠났다. 다음날, 벌통 주변의 풀을 바짝 깎았다. 개구리가 숨을 곳이 없도록. 뱀을 풀 수는 없는 일이지만, 이젠 개구리가 폴짝 튀어나와도 반갑지 않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