알을 낳는 암탉이 2마리, 암탉을 지키는 수탉 2마리, 올해 새로 태어난 병아리닭이 4마리. 이들이 사실상 우리 집 양봉의 최대 수혜자다.
봄 계절의 하루 일과는 텃밭 산책으로 시작한다. 봄 텃밭에 특히 말썽인 거세미 나방 애벌레 때문이다. 거세미의 영어 이름은 Cutworm이다. 이것들은 어린 식물 줄기를 싹둑 잘라버린다. 다른 벌레처럼 작물 잎을 서서히 갉아먹는다면 어떤 공생의 여지가 있는데, 원샷-원킬 거세미는 공생 불가다. 밤 야식을 먹는 거세미. 하루를 시작하는 아침, 이슬 맞으며 죽어가는 모종을 발견하게 한다는 점이 이 놈들의 잔인한 점이지만, 어디서 출몰할지 예측 불가라는 것이 더 공포스러운 점이다.
거세미 방제의 가장 좋은 방법은 소를 잃었을 때가 잡기 좋은 때라는 것이다. 거세미 애벌레는 죽은 작물 주변 땅속에 있다. 둘레를 파헤치면 범인(충)을 찾을 수 있다. 몸 양쪽으로 검은 점이 박힌 잿빛 애벌레, 엄지손가락 한마디 길이에 생생우동 정도 두께의 애벌레가 나온다면? 즉시 처형지로 간다. 복잡 다단한 벌레 생태계를 인간이 판단할 수 없기 때문에 웬만한 벌레는 멀리 쫓아내는 정도로 끝난다. 하지만 몇몇 확실한 전범에게 용서는 없다. 닭장으로.
닭의 몸은 벌레를 먹기에 최적화된 신체 구조를 가졌다. 뾰족하진 않지만 충분히 날카로운 부리, 어디를 응시하는지 알 수 없지만 분명히 달려 있는 눈, 필요하면 풀섶을 헤집기에 적합한 두 발. 거의 언제나 굶주린 닭이 먹이를 쪼는 속도는 어떤 독수리 타법보다 빠르다. 세상 기운찬 병아리들은 한 마리 벌레를 두고 슈퍼볼 뺨치는 미식축구를 시작한다. 한 마리가 들고뛰다가 다른 병아리가 낚아채고 그걸 또 빼앗기고, 땅에 떨어트려 엄한 걸 물고 뛰는데 그걸 쫓아가고 어부지리로 발견한 병아리가 줍고. 낭자한 최후로 마무리 되는 이야기. 미안한 마음이 들기까지 한다.
거세미의 계절이 끝난 후에는 특별한 전범이 나타나질 않는다. 처형지에서는 일자리를 잃은 닭들의 성토가 시작된다. '꼭꼭'이라 경쾌히 울지 아니하고, '끄오옥, 끄오옥' 하고 뱃속에서부터 불만을 끌어올려 운다. 저 인간 들으라는 듯이... 그런데. 이제 등검은말벌이 나타나기 시작했다. 웃어야 할지 울어야 할지. 어쨌든 블랙 타이거 새우 요리를 마주한 공룡 후예는 기쁨을 되찾았다. 말벌을 잡으면 꿀벌도 지키고 닭 먹이가 생긴다. 돌 한번 던져 두 마리 새를 잡는다는 아름다운 이야기. 실상은 벌통을 틈틈이 관찰하며 꿀벌을 지키는 동시에 말벌을 잡는 족족 닭장으로 갖다 바치는 나는 두 주인을 섬기는 ... 노예?
꼬꼬댁들은 봄부터 여름까지 수벌 번데기도 먹게 된다. 봄부터 여름은 꿀벌이 수벌을 낳는 시기. 수벌은 번데기 상태일 때 제거를 한다. 꿀벌 진드기는 수벌방으로 숨어들어 번식하는 것을 좋아한다. 수벌이 번데기 기간이 길고 방도 크기 때문이다. 눈이 없는 진드기가 수벌방을 구분하는 방법은 촉감이다. 연구로는 진드기 90%는 수벌방을 번신공간으로 선택한다고 한다. 그래서 사람들은 진드기 제거를 위해 수벌방을 공략한다. 봉도사들은 꿀벌이 수벌방 만들기 좋은 공간을 따로 만들어준다. 여왕벌이 그곳에 수벌단지를 만들면 인간은 그 벌집 통째로 빼내어 제거한다. 수벌방을 정리하면 애벌레가 많이 나온다. 벌레를 보며 닭을 생각하는 나는... 설마 그...?
헉.