집 짓는 꿀벌들
벌통에 소초(벌집을 지을 수 있는 틀)가 들어오자. 일벌들은 기다렸다는 듯이 집을 짓기 시작했다. 일주일 후에 보니 소초에 하얀 벌집이 완성되었다. 이것을 소비(벌집)라고 한다. 이제 막 완성된 소비는 가볍고 말끔하다. 벌들은 벌통 안에 빈 공간이 있으면 집을 짓기 시작한다. 언제고 필요할 테니까. 신비한 건 어느 쪽에서 집 짓기를 시작하든 가운데 서로 만나는 지점까지 육각형은 어떤 오차 없이 만난다고 한다. 어떻게 그럴 수 있는지, 최근까지 연구대상이었다. 비밀은 표면장력이었다. 이제는 양봉가들은 일벌들이 빠르고 손쉽게 집 짓기를 시작할 수 있도록 육각형 틀이 있는 소초를 넣어준다.
집은 밀랍(beeswax)으로 만들어진다. 꿀벌의 배는 일곱 환절(마디)로 이루어졌다. 밀랍은 환절 사이에서 나오는 고형 기름이다. 양봉이 일반화되었던 지역에선 밀랍으로 양초를 만들어 왔다. (고려시대에 금속활자를 만들 때 썼다고도 한다) 밀랍은 그을음 없는 깨끗한 빛과 달큼한 향을 주는 귀한 재료였다. 꿀벌들은 배드랑이(배관절)에서 뾱뾱 솟아나는 하얀 밀랍조각을 씹어 말랑말랑 반죽으로 만들어 집을 짓는다. 한창 집을 지을 땐 밀랍 조각이 바닥에 떨어져 있다. 큰 비듬 같기도 하고 생선 비늘 같기도 하다.
꿀벌이 오차 없이 육각형을 만드는 비밀은 이렇다. 벌은 밀랍을 얇게 쌓아 올려 원통 다발을 만든다. 그 뒤 꿀벌이 원통 속에 들어가 밀랍 벽을 가열시킨다. 겨울을 날 때처럼 가슴근육을 떨어 열을 낸다. 밀랍벽이 녹는다. 비눗방울은 동그랗지만, 두 개가 만나면 평면이 된다. 표면장력 때문이다. 원형이던 밀랍벽도 옆 방과 만나 직선이 된다. 벌이 육각형의 장점을 알고 있는 것은 아니지만 벌집방은 여섯 개의 서로 다른 방과 만나 육각형이 된다. 육각형은 같은 면적을 가장 빈틈없이 이용할 수 있으면서 가장 적은 재료가 든다. 밀랍은 꿀벌의 젊은 시절에 나오고 나이가 들면 나오지 않는다. 하지만 군락의 필요에 따라 늙은 벌에게도 밀랍이 나올 수 있다. 막내가 없어지면 마지막 막내가 다시 막내가 된다.
벌집꿀은 꿀만 먹는 것이 아니라 꿀을 벌집에 담겨있는 째로 먹는 것을 말한다. 벌집에 꿀이 차면 소비 틀에 있는 것을 잘라 낸다. 벌집꿀은 채밀 과정이 필요 없기 때문에 소규모로 양봉을 하는 사람들이 많이 하는 방식이라고 한다. 벌집에서 꿀을 분리해 주는 채밀기도 필요 없다. 밀랍은 분해가 어려운 고형 기름이라 사람이 먹어도 소화가 되지 않고 그대로 배출된다고 한다. 밀랍은 위에 좋다고도 한다. 숟가락으로 떠먹는 꿀이 (해장) 약 느낌이라면, 포크로 찍어먹는 벌집꿀은 어쩐지 디저트 느낌이다. 벌집꿀 수확을 목표로 삼고 싶어졌다. 벌집꿀 전용 벌집틀도 한 장씩 넣어주었다.
"나한테 말하지, 우리 집에 빈 소비가 많이 있는데. 벌집 만드느라 꿀이 많이 빠질걸?"
내가 소초광을 넣어 소비를 만들게 했다고 하니, 벌들의 아버지께서 말하셨다. 벌집을 짓는 일에는 많은 에너지가 들기 때문이다. 밀랍 1kg을 만들기 위해선 꿀이 대략 10kg이 필요하다고 한다. 꿀이 워낙 많이 들어오는 시기(유밀기)에는 집을 짓는데 꿀이 얼마큼 소모되는지 느낄 수 없었다. 하지만 꿀이 없는 시기(무밀기)에 벌집을 짓는 걸 보니 그 말이 체감되었다. 꿀 도둑이 왔다 간 줄 알았다. 꽃이 아주 없는 시기는 아니기 때문에 있는 꿀을 유지할 수 있을 거라 생각했다. 하지만 소비 한 장 꽉 차 있던 꿀이 말끔하게 없어졌다.
꿀이 없어지는 걸 보니 집 짓는 게 힘든 작업이라는 것을 알 수 있다. 집 짓는 노동 자체가 힘들지는 않다고 하더라도 꿀을 만드는 게 힘든 노동이기 때문이다. 꿀벌이 꿀 1kg을 만들기 위해선 꿀벌이 지구 한 바퀴 반을 날아야 한다고 했다. 꽃 꿀 채집과 집 짓는 노고가 똑같진 않겠지만 집을 짓는 것은 그 노동을 투자하는 작업이었다. 하지만 꿀벌들이 이 벌통에 올해만 사는 것이 아니라, 내년을 위해, 내년 이후에도 계속 살아갈 동생들을 위해 보금자리를 만드는 것이었다. 벌집을 소중히 다루어야겠다. 벌집꿀 먹기도 조금 생각해 봐야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