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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호호동호 May 30. 2021

(1) 태초에 글쓰기 모임이 있었으니

태초에 글쓰기 모임이 있었으니

2020년 새해였다. 새해에는 역시 새로운 태양이 떠올랐고, 언제나처럼 새로운 일을 도모해보기 좋은 때였다. 나는 무작정 동네 형에게 전화를 걸었다. 때가 이르렀다고 생각했다. 형에게 나는 다짜고짜 글쓰기 모임을 하자고 했다. 글. 이 애증의 녀석. 누군가 함께라면 쓸 수 있을 것 같았다. 그렇지만  막연히 생각해왔을 뿐 모임에 대해 생각해본 모습도, 형식도 없었다. 우린 일단 만났다.


오랫동안 언론인으로 살아온 형이다. 귀촌 선배인 형은 지역에서도 언론 일을 하면서 꾸준히 글을 써왔다. 근래에는 미디어 회사를 창업한 콘텐츠 '전문가'였다. (전문가! 내가 경외해 마지않는 이들) 내가 제안한 글쓰기 모임에 형식이 없다는 것에 형은 응한 것 같다. 모임이래봤자 우리 두 사람뿐이고, 각자 쓰고 싶은 내용을 각자 쓰고 싶은 만큼 써오기였다. 모임에 누군가 새로 오게 돼도 좋고 안 와도 좋은 모임. 우린 일주일에 한 번, 두 시간 만나기로 했다.


겨울이었다. 농한기(농사를 쉬는 기간, 11월~2월)였다. 손바닥만한 땅이지만 나름 농사를 짓는 나에게도 농번기(농사가 바쁜 시기, 4월~9월)는 왔다. 글도 좋지만, 농사의 즐거움을 뺏기고 싶지는 않았다. 세 달 정도 모이면 책 한 권 분량을 쓸 수 있을 것 같았다. 일주일에 한 챕터씩, 15 챕터 정도 쓰면 좋겠다고 나름의 계산이었다.


돼지 세 마리를 키운 이야기를 쓸 요량이었다. 하지만 주제를 정하지는 못했다. 돼지를 키운 이유는 어찌어찌 말할 수 있었지만, '그래서 결론이 뭔데?'라는 질문에는 답할 수 없었다. 이 정해지지 않았다는 애매함이 그동안의 글쓰기를 방해해 왔다.


글쓰기는 많은 기력이 필요한 일이었다. 절대적인 시간도 필요로 한다. 그렇게 쓴 글을 주제에 따라 뒤집어야 한다는 생각이 나를 머뭇거리게 했다. 신중한 소비자적 태도가 글쓰기에도 나타났다. 그런 머뭇거림을 '일단 쓰자'로 바꿀 힘을 준 것은 모임이었다. 형은 '글쓰기'에 대해 썼고, 나는 돼지를 키운 이야기를 일단_썼다. (형이 써오는 작문법에 대한 따끈따끈한 글을 읽으니 더 쓰고 싶어 졌다)


새해의 불꽃은 맹렬했다. 누군가 약속이 생겼다고 하면 다음날로 미뤄서라도 모임을 이어갔다. 급기야 일주일에 두 번 모이기도 했다. 매일 글에 대해서 생각했다. 무엇을 쓸지, 공책을 들고 다니며 적었다. 돼지와 있었던 에피소드를 긁어 적았다. 그렇게  써둔  문장을 모아 문단을 만들었다. 맥락을 만들기 위해 다음 문장을 썼다. 내친김에 나는 그림 그리는 모임까지 만들었다. 글에 돼지 그림을 넣고 싶었다. 바로 옆집에 무려 만화가가 살고 있었다. 모임의 형식은 같았다.


하지만 삼신할매가 나를 세상에 보낼 때, 끈기는 없는 사람으로 보낸 것이었다.(지금도 이 이야기의 다음 부분 쓰기가 힘들다) 불꽃은 금방 사그라들었다. 글쓰기 모임은 이내 각자 쓴 글을 읽는 모임에서 쓰기라도 하는 모임으로, 순한 맛 모임이 되었다. 두 번 모이던 횟수가 다시 한번으로 줄었다. 그림 모임과 글 모임을 합병시키는 지경에 이르렀다. 그래도 글쓰기 모임원이 두 명에서 세 명으로 늘었다고 해야 할까.


지금은 다시 보기 민망한 초고 수준의 글이었지만, 우린 서로 비평이 아닌 응원을 했다. 그 덕인지 모임은 지속되었다.(21년  5월인 지금도 이 글을 모임에서 쓰고 있다. 두 사람 옆에서) 지속된 덕에 결과는 쌓였다.


그러다 '브런치북 출판 프로젝트'를 알게 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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