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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호호동호 Jun 04. 2021

(3) 브런치에서메일이 왔다.

메일이 왔다. 


브런치북 출간 프로젝트의 마감을 해내고 나니 긴장이 풀렸다. '10개월 가까이 붙잡고 있던 원고인데, 어느 부분이 부족한지를 알게 된 기회였다'고 스스로 평했다. 마감의 반작용을 추스른다는 핑계로 한 달이 지났다.  공모전에 지원했다는 사실 조차 잊게 되었다. 출근과 퇴근, 반복되는 일상이었다. 어느 날이다. 메일함에 못 보던 양식의 메일이 떴다. 메일 쓸 일이 없는 나였다. 대부분 광고 메일인데, 그래서 가끔 하는 메일 확인을 마침 그날 한 것이다. 발신자는 브런치!!! 브런치 공모전에 대해 다시 생각해보지 않았다. '브런치'라는 단어를 보는 순간 어떤 스위치가 켜졌다. 0.1초. 지금 이게 어떤 상황인지 모두 이해되었다. 심장이 빠르게 뛰기 시작했다. 메일은 ‘수상 후보작… 어쩌고’라고 시작되었다. 으악, 터치, 터치, 터치. 


오늘따라 느린 핸드폰을 탓해본다. 그래서인지 로딩은 더 느리게 이어진다. 평화롭고 잔잔하게 완성을 향해 가는 김동률의 노래처럼 말이다. 로딩이 임박할수록 맥박이 빨라진다. '참여해주셔서 고맙'다고, '수상 후보작이 되신 걸 축하한’다고 쓰여있다. 우와 대박이야. 어쩌지 이 소식을 누구한테 먼저 말해야 하지.라고 생각을 해보려는 때에… 어랏, 편지에 적혀있는 책 제목이 다르다. <대체로 가난해서>라는 책이다. 내 책 이름은 이게 아니다. 순식간에 흥분이 가신다. 이게 무슨 상황이지. 


시크한척했지만, 마음이라는 것이 이렇게 가벼웠다. 마감에 의미를 둔다고 했으나, 내 얄팍한 무의식은 그 정도로 깊은 친구가 아니었다. 그제야 메일함이 보였다.


메일이 하나 더 있었다. 


(다른 작가님의) 후보작 선정을 축하한다는 메일 위로 메일이 하나 더 와있었다. 순서상 나중에 보낸 메일이었다. 보낸 메일 중 처음 메일은 실수라는 내용. 죄송하다는 말과 발표전까지는 공개하지 말아 달라는 담당자의 부탁. 그러니까 내가 아니라 <대체로 가난해서>의 윤준가 작가님께 가야 할 메일이 내게 온 것이다. 상황을 제대로 알고 나니, 김 빠졌다.


아쉬운 마음에 메일을 다시 읽어 본다. 희망과 이별할 준비가 되지 않았던 나는 문장을 하나하나 뜯어본다. 읽을수록 '처음 메일은 실수'라는 말이 계속 걸린다. 처음이 실수라면 다른 메일이 있다는 말 아닌가… 내가 받은 메일은 두 개인데, 굳이 '처음' 메일이라고 쓴 이유가 뭘까.


그때 어떤 생각이 스쳤다. '혹시, 메일이 포개진 건 아닐까?’ 구글 메일은 내용이 중복된다고 판단되면 메일을 겹쳐주었다. 다시 떨리는 마음으로 수신함을 열어본다. 정말 숨겨진 메일이 있다. 내 책, <돼지를 부탁해>가 수상 후보작에 올랐다. 하지만 이쯤에는 이미 내 몸에는 냉철한 피가 돌고 있었다. 냉혈한인 나는, 담당자가 실수를 만회하기 위해 나를 후보작에 끼워준 것이라고 생각했다. 내가 괜히 나쁜 마음을 먹고 예비 수상 작가를 미리 공개시키면 곤란하니 말이다. 몇 배수로 후보작을 뽑는데, 하나 더 들어가는 게 크게 어려운 일은 아니지 않겠는가. 홀로 이런 추잡스러운 시나리오를 구상해보았다. 그게 조금 더 일리 있다고 여긴 나는 잠자코 상황을 지켜보기로 했다. 아직 기뻐하긴 이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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