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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호호동호 Jul 05. 2021

(5)그리고 전화가 왔다

창비입니다

작가 체험기_ <돼지를 부탁해>의 브런치북 수상 소식은 조용했던 내 일상에 파동을 일으켰다. 수상으로부터 출간까지 6개월. 반년 남짓한 기간 동안 '작가 체험'을 했다. 이 기간 동안 일어난 일들을 기록해보고 싶다.


어느 아침, 모르는 번호의 전화가 왔다. 브런치로부터 수상 후보작 메일이 온 지 며칠 되지 않은 때였다. 순간 나는 직감했다. 올 것이 왔군. 지난주 수상 후보작이 되던 순간, 나는 이미 충분히 모든 만족감을 느꼈다. 나는 깊은 강물처럼, 마음을 가다듬는다. 흐흠.


"여보세요?" 

"안녕하세요, 창비 000입니다."

헉! 


예상한 일이라고, 계속 되뇌었지만, 단박에 정신이 떨어져 나갔다. 이런 사건이 막상 현실에서 일어나니 내 마음 가을날 뙤약볕을 피할 길 없는 장독대의 씨간장처럼 졸아들었다. 입이 텁텁해진 나는 아무 말도 꺼내지 못했다. 겨우 대답만 할 뿐, 목소리는 점점 작아지고 낮아졌다. "네... 네... 아..."


출판사 선생님은 글을  인상적으로 읽었다며, 선정을 축하한다는 말과 출판사라면 이런 말을 하지 않을까 싶은, 말들을 이어갔다. 


"그런데 원고 말인데요. 아직 완성이 덜 되었더라고요. 언제쯤 완성이 될까요?" 출판된 책을 기준으로 보았을 때, 그때 원고는 50% 정도도 되지 않았던 것 같다. 하지만 그 당시 나는 20-30%만 더 쓰면 완성될 거라 생각했다. 전화를 받은 것은 12월 초였다. 한 달이면 될 것 같다고 생각했다. 

"12월 안에 될 것 같아요." 결과적으로 원고는 계속 추가되었고, 5월 인쇄를 앞두고서야 완성되었다.


"그런데 작가님. 지금 말씀드릴 단계는 아니지만, 걸리는 부분이 있어요." 편집부에서는 책에는 수정되었지만, 초고에는 더 상세히 적혀있던 '도축'장면을 어떻게 하면 좋을지 논의가 필요할 것 같다고 했다. 다소 자극적이라는 의견이었다. 


"이제부터 편집부에서 검토해봐야 하는데요. 저희가 브런치 텍스트를 복사할 수가 없어요. 초고를 보내주실 수 있을까요?" 

"네네, 물론 보내드려야지요. 오전 중으로 정리해서 보내겠습니다."


다행히 노트북을 갖고 나왔다. 카페에 앉아 노트북을 켰다. 2시간 초집중해서 원고를 정리했다. 원고에 빈 부분이 이렇게 많았다니, 나는 새삼 깨달았다. 하지만 수정하기엔 이미 늦었다. '내가 봐도' 너무나 부끄러운 초고에 얼굴이 벌게졌다. 이걸 내손으로 보내야 하다니. 부들부들.


내가 썼지만, 세상에 있어선 안될 이런 비현실적인(?) 원고를 보고 있자니, 지금 상황이 의심되기 시작했다. 가만, 이거 혹시 신종 보이스피싱 아닌가. 내가 원고를 너무 쉽게 보내고 있는 건 아닐까. 세상 살기가 어렵다는데, 이런 벼룩의 간이라도 빼가는 사람들이 어딘가 있지 않을까.


복잡한 머릿속과 달리 머리 밖에서 일어나고 있는 일들은 현실이었다. 그리고 앞으로 진행되는 과정은 차라리 사기를 당했으면 어땠을까 싶은 생각이 드는 일들이 벌어지는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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