출판사에 가다
작가 체험기_ 책 <돼지를 키운 채식주의자>의 '브런치북 출판 프로젝트' 수상은 조용했던 내 일상에 파동을 일으켰다. 수상으로부터 출간까지 6개월. 반년 남짓한 기간 동안 '작가 체험'을 했다. 이 기간 동안 일어난 일들을 기록해보고 싶다.
출판사 선생님들과 만난 것은 2월 초. 수상은 12월초 작가에게 미리 알려주었고, 발표는 21일에 했다. 그러니까, 첫만남은 수상되고 3개월 후였다. 그 동안 세 번 정도의 수정고를 주고받은 후였다. 수정고를 주고받으며 메일상에서 인사를 나눠왔는데, 실제로 만난 것은 처음. 출판사 1층에 있는 카페에서 만났다. 부장님과 편집자님 두 분이 나오셨다. <슬기로운 출판 생활> 같은 드라마가 나온다면 출연할법한 인상이었다. 부장님은 내게 수상 소식을 전해주신 분이었고, 담당 편집자님은 수정고를 주고받은 분이었다.
농촌에 살면서 매일 비슷한 사람들만 만나왔다. 같은 일이 무한 반복으로 이루어지는 생활. 무슨 말을 꺼내야 하나 고민해본지가 너무 오래됐다. 게다가 '내가 쓸 책'을 놓고 편집자와 이야기를 나누는 일도 처음이었다. 세 사람 사이에는 음료가 놓였고, 두 사람의 큰 눈이 나를 쳐다보고 있었다. 아이스 아메리카노에는 송골송골 땀이 맺혔고, 나는 무슨 말이든 해야 할 것 같았다. 깜깜한 머릿속을 더듬거려 집히는 대로 말을 꺼냈다. 선생님들은 내 말에 집중해주셨다. "맞아요.", "저희도 그렇게 생각합니다." 정도의 맞장구만 있을 뿐이었다. 이랬으면 좋겠다거나, 그건 별로라는 부정적 의견을 표하지 않았다. 진짜 작가를 이야기를 듣고 있는 것처럼.
나도 보통은 듣는 편에 속한다고 생각해왔는데. 어디서 말을 많이 하는 편이 아닌데. 오늘 여기 서울 서교동의 어느 카페에서 나 같은 건 비교가 안 되는 언어의 블랙홀을 만나게 된 것이다. 작은 뉘앙스조차 빠져나갈 수 없는 인력 앞에 나는 준비된 말, 준비하지 않은 말을 줄줄이 실토했다. 물론, 이 자리에서 책에 대한 모든 의도를 말해두어야 나중에 서로 오해가 없을 것 같기도 했다. "이렇게 쓰겠습니다.", "이것도 써볼게요." 같은 결심의 무한궤도
초고에 아직 담지 못한 부분(가축전염병이 심각해지고 있는 문제), 원고에 꼭 쓰고 싶은 내용(기후변화와 축산업의 관계), 오해를 살 수 있는 부분을 어떻게 하면 좋을지 이야기했다. 도축이라는 것이 누군가를 불편하게 할 수도 있었고, 쉽게 오해를 살 수 있을 것 같았다.
책은 1부와 2부로 나뉘었다. 돼지를 키운 이야기가 1부이고, 돼지를 잡은 내용이 2부다. 돼지를 키운 기간이 훨씬 길지만, 뒷이야기 분량이 비슷한 이유는 2부가 중요한 내용이었기 때문이다. 물론, 도축이 내겐 그만큼 강렬한 기억이었다는 이유도 있다. 돼지를 키운 이야기가 먼저 나오지만, 도축을 빼면, 1부에 나오는 고생의 이유는 없었다. 그러니까 2부가 책을 읽는 분들에게 책을 통해 전하고 싶었던 내용이었다. 편집자 선생님은 솔직한 게 항상 정답은 아니지만, 정답이 없을 때는 최선의 전략이라는 말을 해주셨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