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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호호동호 Aug 27. 2021

(3) 쥐구멍막다 눈앞 막힌 사연

단독주택인 줄알았쥐

집 안에서도 보이는 구멍만 잘 막으면 될 줄 알았지. 쥐는 바깥 구멍만 잘 막으면 될 줄 알았다. 혹시나 방의 도배지를 뜯어보았다. 그 속엔 숨겨졌던 공간이 있었다. 여러 번의 도배에 의해 막혀있던 옛날식 이불장. 그곳은...


쥐가 사는 집은 단독 주택이 아니라 저택이었다. 그러니까 지금 이 자리에서 쥐와 인간의 지위고하를 논하자는 건 아닌데 그게 아닌데... 나는 낡은 시골집에서 곰팡내 맡아가며 살고 있는데 이것들은  벽 뒤에서 펜트하우스 생활을 하고 있던 것이다. 서생원들은 바깥 벽을 뚫고 들어온 게 아니었다. 집의 나무 기둥을 뚫고 밑에서 올라온 것이다. 바깥에서 내가 막던 구멍들은 진짜를 숨기기 위한 연막이었다. 


꼬리가 길면 잡히고, 방귀가 잦으면 똥이 나오기 마련(이건 아닌가). 방에 스멀스멀 나던 쥐똥 오줌은 결국 꼬리를 잡히고 말았다. 꼬리 너머의 펜트하우스는 쥐똥으로 가득 차 있었다. 이 끔찍한 광경에 하던 작업을 멈추고 나와 잠시 바람을 쐰다.


늦가을의 하늘은 쨍하다. 그대로 벽지를 덮을까 잠깐(백 번) 고민. 나만 눈감으면 될 일 아닐까. 이대로 두면 쥐 놈들은 똥과 함께 죽지 않을까.. 말 같지도 않은 지푸라기라를 잡고 싶다. 아니지 그건 아니 될 말이지. 날씨가 점점 차가워지는 게 곧 겨울이다. 쥐들이 다시 활개 치겠지. 남겨둔 구멍 하나로 모든 일을 허사로 만들 순 없다. 이 집엔 나 혼자. 내가 처리해야 하는 것이다...


잠시 울고 오겠습니다. (엉엉)


십여 년이 지났지만 군대에서 받은 화생방 훈련을 나는 잊지 않는다. 매캐한 가스는 눈물 콧물 정수기를 여는 것이었다. 내겐 많은 수분이 있었다. 무서운 훈련이었지. 하지만 대부분의 공포는 상상 속에 있었다. 막상 현실도 한번 받아들이기 시작하면 그 이후는 쉬운 것이다. 받아들이면 쉽다. 동원 예비군도 종료되었건만, 오늘 나만의 진돗개가 발령되었다. 군모를 뒤집어쓰고 쥐방으로 돌격.  


애석하게도 준비된 방독면이 없으니 호흡은 삼가도록 한다. 숨을 크게 들이쉬고 이를 참을 수 있을 때까지 작전에 임한다. 작전 종료는 쥐똥이 모두 없어질 때까지. 신문지를 가져와서 포대에 무조건 쓸어 담는다.

흡ㅡ 하_, 흡ㅡ 하_

'아, 이 새ㄲ들은 먹고 똥만 싸나.' 그래, 우리 엄마가 날 보며 이런 생각을 했겠지. 하지만 이런 사사로운 감정에 사로잡히면 안 된다. 인간적인 마음이 이 작전의 약점. 나는 청소봇이 되어 똥만을 치운다. 오직 똥.


오염된 신문지를 교체해가며 임무를 진척한다. 

흡ㅡ 하_, 흡ㅡ 하_

비산 먼지를 줄이려 분무기로 물을 뿌린다. 먼지는 날리지 않는데 습도가 높아지면서 휘발성 오줌 내가 난다. 정신이 아득해진다. 숨을 쉬지 않고 있는데도 불구하고 느껴지는 이 인간적인 감각은 사고를 작동시키고, 혐오감이 발동하려 한다. 청소봇은 긴급히 '긍정-모드'를 발동한다.


호호야, 농촌에 살며 많은 것을 이루어왔지. 다양한 경험을 했고, 이 중엔 성장이라고 할 만한 것들도 있단다. 목장에 일하는 덕에 우리는 온갖 똥에 익숙해졌지. 소똥, 개똥, 염소 똥, 돼지 똥, 내 똥. 그래 똥은 더럽지 않아. 흙일뿐이야. 우리도 모두 흙으로 돌아갈 거야. 침착하렴.


그 순간, 모자가 흙 위로 떨어졌다. 모자에 묶여있던 머리들이 풀어헤쳐졌고, 눈을 가렸다. 이에 오른손이의 자동 운전 기능이 작동된다. 오른손이가 앞머리를 올리려 이마로 돌진. 흙만진 오른손이가... 오른손이가...


오른손이야 우리 지금까지 잘 지내왔잖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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