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리오 형제도 본캐는 배관공이었다.
귀농 8년차, 작은 집은 짓고 살기로 했습니다. 첫 열흘은 친구들과 함께 지었고, 이후 열 달을 혼자 짓고 있습니다. 5평 집을 짓기 위해 배우고, 느낀 점들을 함께 나누고 싶습니다. 기억에 의지해 적는 탓에 두서도 없고, 정리되지 않은 글이에요. 순서도 섞여있답니다. 이해해주세요^^
물이 떨어졌다.
저녁이었다. 일을 마치고 와 샤워를 하는 중이었다. 짧게 끝나는 샤워에도 나름의 순서가 정해져 있다. 보통은 머리부터 감고 내려간다. 하지만 나는 오늘따라 손빨래를 했고, 늦장을 부렸다. 이제 슬슬 씻어볼까. 평소와 다르게 발부터 씻으며 머리를 향해 갔다. 클라이맥스이자, 제일 중요한 머리를 감는데 물이 나오지 않았다. 손빨래를 나중에 할걸 그랬다. 아니다 속옷이 떨어질 때가 되었다. 포기할 수 없긴 했다. 차라리 샤워를 시작하기 전에 물이 떨어졌더라면 낫지 않았을까? 어느 쪽이 나은 선택인지 모르겠다.
"푸흐흐흡!"
생각을 이어갈 수 없었다. 나는 홀딱 벗은 상태였고, 물에 젖은 몸은 빠르게 식었다. 물을 못 뱉을 바에야 공기라도 뱉겠다는 애처로운 공기 소리가 수도꼭지에서 계속됐다. 우선 샤워를 중단한다. 물이 나오지 않는 이유는 두 가지로 예상됐다. 하나는 물탱크의 물이 떨어진 경우. 또 다른 하나는 물 배관의 연결 불량. 조금이라도 느슨하게 연결된 부위는 터지기 마련이다. 사실 나는 이즈음 물이 떨어질 것 같다고, 어느 정도 예상했다. 물탱크에 받아둔 물이 떨어질 때가 되긴 되었다. 물탱크에 물을 채우면 다시 샤워를 이어갈 수 있지만 밤이 늦어 물을 채울 수 없었다.
작은집에 어떻게 물을 가져올 것인가는 중요한 문제였다. 아니, 어느 집이든 물은 필수 요소다. 보통의 경우 물은 문제가 되지 않는다. 수도사업소에 신청해서 상수도를 연결하면 된다. (내가 사는 동네는 시골 동네임에도 상수도가 들어왔다. 농촌에 상수도가 있는 경우는 모든 농촌에 해당하는 것은 아니다. 이런 혜택이 생긴 이유는 우리 지역은 2011년 구제역 때 수많은 동물을 매장했기 때문이다. 매장된 동물의 침출수가 지하수를 오염시켰다. 축산 동네의 슬픈 혜택이랄까.) 그런 혜택에도 불구하고, 세계적 품질을 자랑하는 상수도로부터 나는 독립해야 했다. 혹은 지하수(관정)를 파야 한다. 지하수는 허가 업체를 통해 개발할 수 있다. 70여 미터의 구멍을 뚫고 양수기를 넣는다. 하지만 이 땅에 또 하나의 구멍을 만들고 싶지 않았다. 난개발 된(사후 관리가 되지 않는다) 관정 구멍을 통해 오염물이 지하수로 유입되는 문제가 있기 때문이다.
사실 작은집에 어떤 물을 끌어올 것인지 고민은 없었다. 하늘에서 나만을 위해 준비해준 물이 있기 때문이다. 천수라고 들어보셨는지... 농담입니다. 집을 짓기로 생각했을 때부터 나는 빗물을 쓸 생각이었다. 빗물은 우리 인식과 다르게 매우 깨끗하다고 한다. 공기 중 먼지와 지붕 이물질과 만나는 첫 빗물만 분리할 수 있다면, 이후의 빗물은 마실 수도 있는 정도라고 한다. 물론 나도 아직은 빗물을 마시는 믿음까지는 없다. 설거지나 빨래, 샤워에 쓰는 생활용 수로 쓰고, 마시는 물은 생수를 사다 먹기로 했다.
비용으로 보자면, 빗물은 매력이 없다. 상수도는 정말 저렴하다. 가정용 상수도는 1톤 당 1천 원 꼴이다. 그에 비해 빗물을 생활용수로 쓰려고 한다면 물탱크 값 외에도 여과장치가 필요하다. 또 양수기(물펌프)까지 필요하다. 동절기에도 쓰려면 얼지 않기 위한 기능이 필요하다. 음, 이 모든 기능이 추가될 때마다 비용이 추가되었다.
물론 처음부터 '오프-그리드'를 생각하고 시작했기 때문에 슬프지는 않았다. 오프-그리드는 외부의 인프라에 의지 하지 않는, 생활 자원을 자급하는 것이라고 해야 할까나... 오프-그리드는 내게도 생소한 개념이지만, 작은집에 필요해 보였다.
살 수 있는 '터전'은 갖고 싶지만, '땅'을 사고 싶지는 않았다. 땅을 빌릴 수 있는 곳으로 집 터를 정하기로 했다. 그런 곳이 지금의 자리였다. 상수도나 전기, 도로 같은 생활 인프라가 갖춰진 땅이었더라면 '빌리기' 어려웠을 것이다. 그러니까 앞으로도 '땅 없이 짓는 집'이 맞닥트릴 요건이 바로 '오프-그리드'라고 생각했다. 어쨌든 살기 위해 물과 전기는 필요하다.
그렇게 결심은 하고 있었지만, 겨울이 다가올수록 초조해졌다. 겨울에는 비가 내리지 않는다. 강우량이 강설량으로 바뀐다. 빗물 시스템은 물을 미리 저장하는 저수지였다. 하지만 집이 제자리를 잡은 후에야 물탱크 위치를 잡을 수 있었다. 는 말은 사실 핑계다...
집안의 수도시설이 완성되지 않았던 탓에 물탱크 설치를 뒤로 미뤄도 되지 않을까, 하고 안일하게 생각했다. 지금 샤워장이 없으니까 물도 나중에 받을 거야.라고 안일함이 달콤하게 말했다. 내가 똑똑했다면, 물탱크를 먼저 설치해서 빗물을 받아두었어야 했다. 언제까지고 지금이 계속될 것 같았는데 어느새 겨울이 되었다. 제일 먼저 해결했어야 할 문제였는데, 가장 나중에 처리했다. 결국 올해 내내 많은 비가 (징하게) 내렸음에도 그저 흘려보내고 말았다.
안일이의 말은 들었지만, 마음은 급했다. 어서 빨리 물탱크를 설치해야 한다는 마음을 계속 짊어지고 다녔다. 하지만 마음과 달리 손은 느렸다. 세월, 네월 해도 과제들은 마무리되지 않았다. 전문가가 따로 있는 이유가 있었다. 타일이던, 욕실이건 사람을 썼어야 했을까. 하지만 그러질 못했다. 일의 늪지대에 한번 빠지고 나니, 우선 빠져나가야겠다는 생각뿐. 다른 생각은 들지 않았다. 안일함에 미련함이 더해졌다. 그리고 까먹을까봐 다시 적어두지만. 나는 내가 뭘 모르는지 모르는, 그래서 누구에게 무엇을 어떻게 일을 맡겨야 할지 모르는 초보였다.
(계속)
드디어 물탱크 작업. 물탱크 작업은 작업자가 혹시 탈출을 못하는 사고를 예방하기 위해 2인 1조로 작업해야 한다. 배관공이었던 마리오 형제를 떠올리며 물탱크로 입장.... 했으나. 파이프렌치를 두고 간 것이다.
탈출을 돕기 위해 밖에 있던 반쪽에 의해 흑역사가 남겨졌다. 적은 가까이에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