천수는 내년에 누리자꾸나
귀농 8년차, 작은 집은 짓고 살기로 했습니다. 첫 열흘은 친구들과 함께 지었고, 이후 열 달을 혼자 짓고 있습니다. 5평 집을 짓기 위해 배우고, 느낀 점들을 함께 나누고 싶습니다. 기억에 의지해 적는 탓에 두서도 없고, 정리되지 않은 글이에요. 순서도 섞여있답니다. 이해해주세요^^
빗물 탱크를 설치해야지.
라는 생각은 집 짓기를 계획한 이래, 한치의 오차도 없이, 굳건히 지켜온 생각이었다. 누구라도 내게 '물'은 어떻게 할 건지 묻는 이가 나타나면 나는 즉문즉답으로 빗물(천수)을 쓸 것이라고 말했다. 그리고 나는 그 시점에 당도했다. 이제 물이 나오면 되는 시점이다. 어떤 미션을 해결해가듯, 나는 집 짓기의 과정 과정을 하나씩 깨부수어(?) 왔다. 하지만 막상 물탱크를 설치를 하려고 보니 말이죠. 나의 철두철미하고도 명료했던 개념은 그야말로 그저 탁상의 생각이었다. 그래서 어떻게?라는 질문에 답을 하지 못했다. 샌님은 과연 천수를 누릴 수 있을까...
그러니까 배관 작업은 수도관들의 연결이고, 양수기는 물을 밀어내는 압력을 만드는 펌프이고, 필터가 있어야 물속 이물질을 걸러낼 수 있다. 그래, 감은 감이고 배는 배지. 메주는 팥이 아닌 콩으로 쒀야지. 그런데 감이 어떻게 감이 되는 건지, 콩이 어떻게 메주가 되는 것인지... 나는 저 멀리 산을 한번 쳐다본다.
수도관은 종류가 다양했다. 엑셀관, PB관, PVC관, PE용수관 등... 사용하고자 하는 용도별로 재질이 달라져야 하고, 각각의 장단점도 있다. 부속은 왜 복잡하게 생겼는지. 암놈이 있고, 수놈이 있다. 용어도 일본어와 영어와 한국어가 혼재되어 있다. 작은집은 수도관이 매우 단순함에도 나는 배관 부속의 미로에 빠지게 되었다.
수압은 어떻게 만들어야 할까. 물탱크를 높게 둔다면, 위치 에너지로 물펌프 없이 살 수 있지 않을까? 그런 수압을 만들려면 물탱크가 5미터는 높게 있어야 했다. 양수기를 검색하니 자동과 수동으로도 나뉘고, 인버터 방식, 비인버터 방식, 토출식, 흡압식 등등 알 수 없는 용어가 나온다.
필터는 어느 정도 수준으로 해야 샤워를 할 수 있을까? 활성탄 정수니, 이온 정수니 그게 다 그거인 것만 같다. 공부를 하다 몇 번이고 노트북을 덮었는지 모르겠다. 그대로 덮어두고 며칠을 지낸다. 하지만 누군가 해주는 일이 아니었다. 집은 그 상태 그대로 나를 기다리고 있다. 이대로는 안 되겠다. 겨울이 다가오고 있었다. 급한 대로 지하수를 끌어오기로 했다. 집안의 배관이 제대로 설치되어있는지, 확인하기 위해선 빗물이라는 생소한 시스템을 설치하며 돌아가기에는 마음이 급했다.
(계속)