물건에도 사랑을 주고받는 관계가 있다
양말을 버려야겠다고 결심하는 날은 살면서 몇 안 되는 날이다.
오늘은 버려야 할 양말이 생겼다.
발바닥 특히 엄지발가락 아래 널찍한 부분이 닳아서
해지기 직전이다. 살이 훤히 들여다 보인다.
내 양말은 엄지발가락 쪽이 특히나 빵꾸가 잘 났다.
그렇다고 버릴 대상이 되지 않는다.
발가락 쪽 구멍은 바느질 몇 땀으로 다시 씩씩한 양말이 된다.
가끔 등산 양말에서 오른쪽(R) 왼쪽(L) 표시되어 좌우구분되는 양말을 보았으나
대부분 양말은 오른쪽 왼쪽 구별이 없는지라 가능한 일이다.
내가 국민학교 다니던 시절
그러니까 70년대에는 여기저기 빵꾸 난 양말을 신고 다니던 머슴애들이 있었고
누구 하나 그것에 뭐라 하거나 눈길이 가거나 하지 않는 자연스러운 모습이었다.
그런 시간 속에서 살아온 나도 양말을 꿰매어 신는 것은 삶의 일부인 것 같다.
남편은
내가 양말을 꿰매고 있으면 청승맞게 살지 말고 버리라고 했다.
길거리에서 만원에 열 켤레씩 묶어 파는 것도 있고
이천 원에 세 개씩 파는 양말도 있다고 하면서 얼마 한다고 그러냐 했다.
그 후로 남편은 무슨 기념일이면 양말을 사 왔다.
편안하고 기능적인 좋은 양말도 참 많다.
내 양말통에는 내놓으라는 브랜드의 기능성 양말들이 차곡차곡 쌓였다.
죽기 전에 다 신지도 못할 양말들이다.
마치 줄 서서 차례를 기다리는 긴 행렬 같기도 한 양말들을 바라보며
누구를 줘야 하나 생각했다.
이미 오래전부터 길거리에서 산 양말들도 자기 차례를 기다리고 있는데
그런 잘난 양말들은 눈에 들어오지 않는다.
물건에도 사랑을 주고받는 관계가 있다.
내 주머니에서 천 원짜리 몇 장 비상금 털어
이리 보고 저리 보고 고른 양말 몇 켤레든 검정봉지를 들고 오는 길에서
가득했던 행복을 잃고 싶지 않은 것이다.
그 행복은 곧 애정으로 피어오른다.
내 것의 소중함이란 이렇게 만들어지나 보다.
남의 것을 탐내는 자들, 남의 것이 탐나는 마음은
이러한 소중한 선택의 기회를 상실했기 때문이 아닐까.
유 씨 부인의 "조침문"에서처럼 오호통재라 하는 마음보다
밑바닥 해져 헤어지는 나의 양말에 진심으로 감사함을 담고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