크림슨 색은 남국의 열정을 타고 와서 내 눈앞 나뭇잎에 빛깔을 벗어놓았다
붉게 타오르는 단풍을 볼 수 없을 것만 같이 더웠다.
10월의 기온이 좀처럼 가을을 몰고 올 생각을 하지 않는 것 같았다.
단풍지도를 보고 머리 써서 10월 말 즈음 설악산 단풍 구경을 갔다.
만족스럽지 못한 설익은 단풍이었다.
초록 끝에 매달린 붉은 단풍이 신입생 같았다.
그렇게 가을단풍에 아쉬움을 남기고 순두부 먹고 산채비빔밥 먹고 돌아왔었다.
동네단풍이 무르익었다.
눈이 요란하게 굴러다니며 화려한 자연의 잔치에 감탄 감동한다.
동네 분들이 은연중에 걷기 운동코스로 서로 암묵적 동의 한
이곳에 단풍이 짙다.
아름다움은 늘 가까이에 있는 것 같다.
내가 지난달 말에 설악산에 다녀오지 않았다면
우리 동네 단풍의 아름다움을 만끽하지 못하고
갖지 못하고 보지 못한 '설악단풍' '내장단풍'하면서
이 아름다움을 홀대했을지도 모른다.
온 동네가 마법에 걸린 것처럼 순식간에 변했다.
카멜레온처럼 색이 변해버렸다.
누군가 세상에 필터를 끼우고 나를 불러낸 것 같다.
단풍은 단풍대로
은행은 은행대로
활엽수는 활엽수대로
자기들만의 고유의 단풍을 즐기고 있다.
단풍놀이는 내가 하는 것이 아니고
그들이 하고 있는 것 같다.
온통 세상이 가을로 가득하다.
계절이 밀리고 있는 것처럼 한 템포씩 더디게 온다.
예전에 멀쩡한 날이 수능날만 되면 영하로 곤두박질치고
떨리는 마음에 손가락까지 더 떨리고 있었던 기억이 있다.
올해 수능날은 가을 같았다.
불붙은 것처럼 타오르는 단풍을 본 지 오래다. 반갑다.
내게 남은 한 조각의 열정이 있는지
있다면 무엇인지 가슴을 후벼 파며 들여다보게 한다.
크림슨 색은 남국의 열정을 타고 와서 내 눈앞 나뭇잎에 빛깔을 벗어놓았다.
백 미터 달리기는 전설의 이야기가 된 노인네의 낡은 걸음을 붙잡고
같은 길을 수백 번 수천번 걸었던 자리에 멈추게 하고 사진버튼을 누르게 한다
곱다. 타오르는 색이 뜨겁다. 경이롭다.
경외하다.
이런 커다란 자연의 변화 앞에서 뭣 좀 한다고 감히 떠벌일 수 있을까.
산을 부수고 강을 막고 하여도 자연 앞에 인간이란 티끌만 하지 않은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