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게 내 집이가?
오후 4시 세라젬 6번모드 에너지 코스로 쥐나는 뒷골 멍한 머리가 힐링받길 바라며 TV광고처럼 여유잡고 누웠는데 딱 그때 전화벨이 울렸다.
시골엄마다. 내 사랑하는 엄마다. 나를 보고 내 딸도 참 잘하는데 댁은 왜 내 딸처럼 이렇게 잘해주냐고 감사해하시던 우리 엄마다.
막내동생이 "누님, 엄마가 내 집 맞냐고 하십니다" 그러면 나는 "사랑하는 우리 엄마~"하고 여느 때처럼 말을 꺼낸다.
몇 해 전 아버지께서 돌아가시고 선친 명의의 집을 엄마 명의로 바꾸고 주택연금들어 생활하신다. 바다가 내려다 보이고 황금 태양이 바다를 가르며 떠오르는 장관을 보여주는 그 이층집은 엄마의 자존심이었다. 호탕하신 엄마는 자식들에게 손벌리는 일 생길까봐 궁리하시다가 주택연금을 선택하셨다.
수십 장 되는 주택연금신청서류에 사인을 하시던 손이 바르르 떨리고 있으셨던 것을 나는 기억한다. 그 날부터 당신이 돌아가실 때까지 당신의 생활비 걱정하지 마라 하셔서 참 좋은 제도라고 생각했다.
엄마는 아버지 돌아가실 때도 의연하셨고 주택연금 신청하실 때도 의연하셨다. 그런데 그게 아니었다.
엄마는 아버지 돌아가셔서 이 세상에 혼자 남았다고 충격 받으셨고, 집까지 공단에 잡혔고 이제 내 집이 아니라고 생각하셨던 것이다. 치매는 그렇게 시작되었다. 이어지는 상실의 충격은 내 엄마의 정신적 평화와 안정을 빼앗아 갔고 나는 엄마를 지켜드리지 못했다.
귀국하고 엄마를 찾아 갔을 때 엄마는 이전보다 훨씬 고와지셨다. 얼굴에 가득하던 찡그린 주름이 사라지고 맑은 웃음만이 있었다.
잃어버린 엄마의 정신줄은 무거운 마음고통의 짐을 내려놓게 하였나 보다.
전화기 너머로 그래도 잊지 않고 늘 레파토리로 나오는 말이 더듬더듬 흘러 나온다.
이게 내 집 맞나?
사랑하는 내 딸아,
남편한테 잘 해라,
아이들 잘 봐라,
아프지 마라,
고무줄 바지 이쁜거 사놨다,
오면 주려고 떡 해놨다,
나는 있지도 않은 고무줄 바지와 떡 이지만 엄마의 마음에 존재하고 있는 고무줄 바지와 떡을 통해서 엄마의 나에 대한 사랑과 그리움이 느껴져 울컥한다.
나도 엄마처럼 늙고 싶다.
나도 엄마처럼, 아빠처럼 곱게 늙고 싶다.
죽음 앞에서도 잘 살아라, 고맙다고맙다 하고 말할 수 있는 선친처럼,
그리고 고무줄 바지 사놓고 떡 해놓고 자식 생각하셨던 내 엄마처럼 늙고 싶다.
내가 요즘 기억이 잘 안난다 하시면서도
남편한테 잘 해라, 아이들 잘 봐라, 아프지 마라를 잊지 않으시는 이쁜 치매의 내 엄마처럼 늙고 싶다.
그리움에 한 걸음에 달려가면 날더러 "누구세요" 하시지만 그래도 내 엄마처럼 늙어가면 좋겠다.
그러려면 곱게 살아야겠다.
정신줄 놓아도 바닥이 고운 사람이 되도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