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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모로 Mar 22. 2017

기저귀, 언제쯤 뗄 수 있을까

[삐딱한 엄마 일기 8편] 똥 오줌과의 전쟁

요즘은 기저귀를 오래도록 채우는 추세다. 아이에게 억지로 기저귀를 떼게 하는 것이 좋지 않다고 생각해서인지 '기다려 주고 아이의 의견을 충분히 반영해 준단다'라고 합리화를 해봐도 이건 늦어도 너무 늦지 않나 싶다. 


우리 아이, 41개월을 넘어가는데, 이제 기저귀 떼기가 얼추 마무리되어간다면 말 다했지. 물론 '얼추'라는 단어에는 아직도 완벽하지 않다는 이야기가 담겨 있다. 


사실 발달이 빠른 편은 아니었다. 14개월이 되어서야 두 발로 일어서서 걷기 시작했으며, 말도 24개월 때 조금 터져서 세 돌에 어느 정도 의사소통이 되었다. 그렇다고 막 늦다고 하기엔 모호한, 결코 빠르지는 않아서 엄마의 속을 태우는 아이. 좋게 이야기하면 '참 조심성이 많은 아이'다. 


남자아이임에도 불구하고, 위험하거나 돌발적인 행동은 잘 하지 않는다. 밖에 나갈 땐 내 손을 꼭 잡고 다니며, 떼를 쓰기도 하지만 대화가 되면서부터는 어느 정도 딜이 가능해졌다. 하지만 이런 성격이 기저귀에서는 아주, 아주, 너무 신중하게 발현되는 게 문제였다. 


나는 결코 서두를 생각이 없어서 36개월 즈음되어서야 기저귀 떼기를 시작했다. 시기도 시기지만, 키도 크고 어린이집 입소를 앞두고 있어서 이제는 더 미룰 수 없을 것 같았다. 게다가 우리 아이는 밤에는 기저귀에 소변을 거의 싸지 않을 만큼 어느 정도 방광이 튼튼해져 있었고, 낮에도 모아서 소변을 누었다. 이 정도면 시도해도 되지 않나.


기저귀는 단계가 올라갈수록 한 팩에 들어있는 숫자는 줄어들면서, 가격은 점점 비싸지고 있었다. 게다가 마지막 단계인 '점보'에 이르자 마지막까지 남아있는 '호갱님'이 된 양, 쇼핑몰에서는 세일도 해주지 않았다. 


'너 한 번 오줌 쌀 때마다 500원이다. 이 녀석아.' 


이쯤 하면 되겠다 싶은 마음이었다. 그리고 동시에 '늦게 시작했으니 금방 끝나겠지'라는 안일한 마음도 들었다. 사실, "그냥 벗겨놓고 요구르트 병을 대주면 자연스럽게 오줌 싼다"는 어른들의 말이 귀찮아지기도 했다. 


다시 검색이 시작되었다. 인터넷의 조언으로는 일단 기저귀를 벗겨 보란다. 처음에는 따라다니면서 닦아대야 하지만, 그런 과정을 거치다 보면 자연스럽게 축축함을 느끼게 되며, 배변을 가리게 된다는 거다. 그 말에 용기를 얻어 바닥에 쪼그려 싸는 변기, 서서 싸는 남아 변기, 어른 변기 위에 올리는 커버, 발판, 남아 팬티 등등을 구비했다. 그리고 아이에게 화내지 않으리라, 마음의 준비도 끝났다. 이제 준비 끝. 전쟁이 시작되었다.


팬티를 벗겨 놓는 순간. '어랍쇼 잘 하는데?' 펭귄 모양 변기가 귀여운지, 아이는 변기 앞에 딱 서서 바지를 내렸다. 나는 "잘한다~ 잘한다 잘한~다~" 하며 우쭈쭈 의욕을 고취시켰다. 이렇게 쉽게 끝나는구나. 감동을 하기도 잠시, 그래 호락호락할 리가 없지. 


아이는 잘 나가다가 갑자기 숨어서 오줌을 싸기 시작했다. 더군다나 숨어서 싼 정체가 똥이라면, 바닥에 여기저기 흩뿌려 놓는 '똥 스키'를 보면 머리끝까지 화가 치밀어 올랐다. 그래도 화를 꾹 참으면서 하루에 팬티 빨기를 한 장, 두 장. 세장.. 여덟 장이 되어가면 정말 튀쳐 나가고 싶은 마음이 들었다. 


"야! 너! 일로와!" 드디어 폭발했다. 아이와의 줄다리기에서 완패한 나는 폭주했다. 그 결과 아이는 더 내면으로 들어가 버렸다. 아이는 내가 잠시 설거지를 한다던지, 화장실에 간다던지 하면 오줌을 몰래 싸버렸다. 심지어 갈등이 극으로 치닫자 내 앞에서 오줌을 싸는 지경에 이르렀다. 남들은 다 쉽게 쉽게 넘어가는 거 같은데, 나는 늘 왜, 나만 왜,  한고비 한고비가 이토록 힘든 것일까.


다 포기하고 싶었다. 진짜 엄마고 뭐고 다 떼려 치우고 싶었다. 똥 묻은 팬티를 빨면서 눈물을 훔쳤다. 다시 기저귀를 채우고 싶었지만, 이제까지 지나온 세월이 아까워졌다. 나는 이를 악다물고 부들부들 떨면서 웃었다. 


"다.. 시 해보자.. 처음..부터"



아이와 함께 기저귀 떼기 판을 만들었다. 그리고 아이가 좋아하는 스마일 스티커도 샀다. 오줌은 스티커 한 개, 똥은 스티커 5개를 붙여주었다. 아이는 그 조그만 스티커에 열광하면서 쭉쭉 따라왔다. 그리고 재미가 떨어지자 다시 처음으로 돌아왔다. 실패.


이번에는 뽀로로 사탕을 샀다. 잘 성공하면 귀여운 뽀로로 하나씩을 입에 물려주었다. 이제 기나긴 터널의 끝을 나오는 느낌이었다. 그러나 마음을 놓는 순간, 스르륵 다시 처음으로 돌아왔다. 


뭐가 문제일까? 아이의 마음은 무엇일까? 몰래 싸는 기간이 지나자, 이제 오줌을 참기에 이르렀다. 불현듯 아이에 대한 오줌 요구가 너무 빠르지 않았나라는 생각이 들었다. 아이가 누고 싶기도 전에 자꾸 먼저 물어보니까 자조를 상실한 느낌이랄까. 나는 '딩' 하고 얻어맞은 느낌이었다. 


이제야 알았다. 뭐든 자기 스스로 느끼고, 생각해야 행동해야 하는 아이라는 걸. 한 단계 한 단계 자기가 받아들일 수 있을 만큼 성장하는 아이라는 걸. 사실, 내가 해줄 수 있는 건 아무것도 없다는 것을..


다시 생각해보면 둘이서 그렇게 힘들게 힘겨루기를 하기보다, 남 눈을 의식하지 않고 기저귀를 더 채웠어야 했나. 싶다. 그냥 놔뒀으면 다른 것들처럼 자연스럽게 해결될 문제였을까. 내가 너무 의식한 나머지 중요한 것을 놓쳐버린 것은 아닐까.


라고 쓰는 사이 아이는 똥을 누고 싶다고 달려왔다. 이미 엉덩이엔 똥 꼬리를 길게 달고 말이다. 휴.. 그래 말해줘서 고맙다만, 팬티에 묻기 전에 말해주면 안 되겠니? 칭찬을 해야 할지, 뭐라고 해야 할지 애매한 상황이 되면서 나는 글을 마무리한다. (아직 기저귀도 완벽하게 못 뗐는데 글은 무슨 글이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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