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모로 Mar 24. 2017

아이는 엄마를 자라게 한다

[삐딱한 엄마 일기 9편] 나 운전 하는 여자야

친구가 말했다.


"아무래도 우리 딸은 나 운동시키려고 태어난 것 같아"


나는 맞장구쳤다.


"응 우리 아들은 나 공부시키려고 태어났어."


우리는 아이를 키우면서 누구나 성장한다. 타인의 시점으로 세상을 바라본다는 것, 그것도 어린아이의 관점에서 바라본다는 건 놀랍고도 징글징글한 경험이다.


나는 새로운 것을 좋아하고, 호기심이 많은 편이지만 행동하지는 않는 경향이 있다. 이런 성격에 정점을 찍는 것은 바로 운전이다. 운. 전. 그 사소하고도 대단한 이름이여. 


나도 겁이라면 남부럽지 않게 가진 터라 운전을 생각하면 명치부터 답답해지는 기분이었다. 물론 결혼 안 하고 혼자 자유롭게 살던 시절에는 굳이 차를 가지고 싶은 생각이 한 번도 들지 않았다. 소득에 비해서 과하기도 하거니와 요샌 대중교통이 더 편하지 않나.


대학 졸업 후 서울에 올라왔을 땐, 거미줄처럼 촘촘하게 이어진 대중교통의 매력에 푹 빠진 터라 더더욱이나 그랬다. 사실, 서울에서 운전이란 주차장 문제를 동반한 골치 아픈 문제가 아닌가. 그렇게 운전에 운. 자도 생각하지 않고, 면허 딸 생각도 없었던 나는 아이가 태어나자 생각이 바뀌었다.


아이가 어릴 때라면 누구나 들고 다니는 기저귀 가방에는 기저귀 서너 개, 물티슈 한통, 분유, 젖병, 따뜻한 물을 담은 보온물통, 과자, 음료수 거기에 작은 팝업책이나 삑삑이 장난감 등등등 한 어깨에 매기 빠듯한 정도의 짐이 들어간다.



거기에 지갑과 핸드폰, 립글로스 정도를 넣은 작은 가방도 동반하는데, 거기에 아이 무게가 더해지면 정말이지 어깨가 무너지는 느낌이었다. 가만히 앉아있으면 아이가 아니지. 밖으로 나갈라치면 안겨서 어찌나 팔다리를 마구 휘젓는지.. 체감 몸무게는 물 먹은 솜처럼 점점 무거워졌다.


안 그래도 작은 키. 한걸음 한걸은 내딛을 때마다 작아지는 키를 느끼며 버스를 기다리는데, 버스가 도착하면 앞서 말한 블라블라 등을 한 번에 들고 버스 계단을 올라야 했다. 그 길은 또 얼마나 멀고 험한지, 그 와중에 카드는 왜 안 보이는지.. 겨우 카드를 찍고 나면 자리가 없고, 사람들은 자기도 힘들어서 비껴주기 싫지만, 전쟁 같은 나의 몰골을 보고는 어쩔 수 없이 자리에서 일어난다.


난 또 괜스레 미안해진다. 물론 우리 아이는 대중교통을 좋아하는 터라 버스를 타면 잘 잤고, 혹은 밖을 바라보며 얌전히 앉아서 구경을 했고, 지하철이라도 타는 날이면 신기한지 두리번두리번 탐색하면서 좋아했으나, 너무 힘들었다.


그래서 드디어 결심했다. 나도 운전을 할 거라고!


일단 면허를 따는 과정부터 쉽지 않았다. 마음을 먹고 공부해서 필기시험은 97점이라는 다소 부끄러운(?) 성적으로 통과했는데, 문제는 실기였다. 사실 아이를 낳기 전에 한 차례 기능 시험을 친 적이 있었는데, 과감하게(?) 1종 보통을 선택한 터라, 다리가 짧아 트럭의 크러치를 충분히 밟지 못했다. 결국 출발도 하지 못하고 실격했던 뼈아픈 과거가 있었다.


그 실패의 쓴맛을 보고는 다시 시험을 미루기를 수차례, 결국 필기시험 유효기간 마감이 다가오고 있었다. 진짜 이제는 시험을 쳐야 하는데.. 애를 안고 운전면허를 칠 수는 없는 노릇이었다. 게다가 그 당시에는 제주에 머물고 있던 때였다.


엄마도, 시엄마도 친척도 없는 혈혈단신 홀몸으로 육아를 하던 터라, 잠시라도 아이를 봐줄 사람이 없었던 상황. 그래서 과감히 친정에 짐을 싸고 들어와 몇 날 며칠 연짝으로 운전을 위한 레이스를 시작하였다.


부끄럽지만 나는 MB 면허의 혜택을 받은 자다. 기능 시험은 정말 쉬웠다. 학원도 다니지 않고, 운전대를 잡아보지도 않은 내가, 인터넷 동영상만 보고 가서 시험에 임했다. 가만히 서 있는 차에 몇 가지 조작만 해보면 끝나는 시험이었다.


밤새 동영상으로 숙지한 후 운전면허 시험장 앞에 있는 연습차로 두어 번 연습하고 나니 시험에 덜컥 합격했다. (지금 생각해도 참 문제가 많은 방식이긴 하다.) 하지만 문제는 도로 주행시험. 내가 도로에서 차를 몰다,. 미치고도 환장할 노릇이지 않나.



어찌어찌 열몇 시간인가 스무 시간인가 벌써 가물가물한 강사와의 주행을 마치고 덜덜 거리면서 청심환까지 챙겨 먹고 시험장에 갔다. 하지만 몇 시간을 기다리고 시작된 도로주행 시험에서 우회전시 중앙선을 넘어버리는 과오를 저지르면서 처참하게 실격당했다.


도로 중간에서 내리라고 말하는 감독관의 말이 왜 이렇게 야속한지.. 출발한 지 몇 분 만에 허무하게 실격해 버린 나는 안 해! 면허 안다! 하고 돌아서서 운전면허를 포기해버렸다.


하지만 아이 무게는 나날이 늘어나고, 택시 잡기도 힘든 지루한 나날을 반복하면서 다시금 고민의 시간이 왔다. 게다가 아이는 어린이집을 다녀야 할 시간이 다가오고 있었고, 내가 생각하는 어린이집은 셔틀버스가 없어서 내가 직접 매일 데려다주고 오기를 반복해야 했다.


이제 더 이상 미룰 수 없어! 4시간 정도 추가 주행 수업을 듣고 차 뒤에 임시면허 종이를 붙이고 아빠랑 틈틈이 운전을 연습했다. 시험은 4가지 길 중에서 랜덤으로 걸린 한 길을 달리는 것인데, 운전 미숙에 길눈까지 어두운 나는 길 외우느라 아주 죽는 줄 알았다.


그렇게 꾸역꾸역 운전면허 시험에 합격한 나는 감격한 마음으로 사진을 찍고 면허증을 발급받고 한동안을 엄마 미소로 바라보다가 그렇게 지갑 안에서 잊혀 갔다.


내 마음에 돌덩이처럼 내려앉은 운전. 나는 왜 바보인가. 나는 왜 이토록 겁이 많은가. 나는 왜 나는 왜... 수도 없이 밤잠을 설쳐가며 용기를 내어도, 막상 운전대를 보면 무섭고, 꼬라박을 것 같고, TV에는 교통사고가 왜 이렇게 많이 보도가 되는지..


그렇게 시간은 흘러 흘러 아이가 어린이집에 갈 시기가 되었다. 아! 어떻게 찾아온 자유시간에 대한 갈망인데! 꼭 이번에는 어린이집에 보내야만 했다. 이번이 마지막 기회다. 용기를 내자. 난 할 수 있다. 나는 전에 10시간 운전 연수를 받았던 것에도 모자라 다시 10시간 자차 연수를 받았다.


연수 선생님은 마지막 수업에 말했다. 어떤 일이 있어도 포기하지 말고 운전하라고. 할 수 있다고. 다소 영화의 마지막 장면처럼 비장하게 헤어진 후. 한 2주, 나는 여전히 혼자 운전대를 잡지 못했다.


"너한테 들어간 돈이 얼마냐"라고 추궁하는 신랑의 한심한 눈빛을 견디면서 와신상담 칼을 갈아봤자 두려움만 커질 뿐이었다. 그리고 그 날이 왔다. 나랑 비슷하게 운전을 시작한 친구가 있었는데, 걔는 연수도 받지 않고 혼자 어떻게 저떻게 차를 끌고 다녔다.


어느 날 만나기로 해서 커피숍에 먼저와 기다리고 있는데 저 멀리서 한눈에 알아본 내 친구의 차 (그날 처음 보았는데, 저 차가 내 친구 차겠구나.. 알 수 있는 건 왜지?). 그 차는 시간을 거스르는 듯이 슬로모션으로 천천히 나에게 다가왔다. 그리곤 버벅거리면서 조수석의 문을 열어줬고, 내가 앉자 급출발하면서 나아갔다.


좌회전할 때 줄도 잘 서지 못해서 꼬리 물기로 겨우 돌았다. 어찌어찌 지하주차장에 들어가는 데, 그게 너무 대단해 보이는 거다. 지하 주차장은 2층부터 5층까지 있었다. 지하 2층이 만석이었다. 하지만 경차인 내 친구가 내려가자 주차 요원은 '너희 참 운 좋다'라는 표정으로 고깔을 들어 올리며 들어오라고 손짓했다.


하지만 내 친구는 안에서 죽어라 손을 흔들었다. "아닙니다. 아니에요 괜찮아요. 우리는 더 지하로 내려갈 거예요. 경차 자리는 좁아서 못 대요." 결국 지하 5층까지 내려가서 여유로운 자리에 주차를 했다.


그래, 이렇게 더듬거려도 운전을 하면 되는구나. 천천히 달리기만 하면 다른 차들이 다 비켜 가는구나. 주차 못하면 제일 밑에 지하까지 내려가서 한산한 곳에 주차하면 되는구나. 친구를 통해 거룩하고도 큰 가르침을 얻은 나는 그다음 날부터 운전을 시작하였다.



그리고 2주 후 혼자 지하주차장 기둥에 '꼴아박아' 앞 범퍼를 박살내고, 정비소 들어갔다 나오고 일주일 정도 지나서였나. 골목에서 타이어 펑크 내고 휠까지 해 먹어서, 긴급 출동까지 부르고 난 뒤 지금은 잘 운전하고 있다. (급반전)


그래 봤자 왕 초보 운전자지만 매일매일 왔다 갔다 왔다 갔다 2번 왕복하다 보니 운전실력이 나름 쑥쑥 늘고 있다. 이제는 용기 내서 처음 가보는데 네비 찍고 가서 중고 물품도 사 온다고! 나는 내가 너무나도 자랑스럽다.


나도 이제 운전할 줄 아는 여자야!


매거진의 이전글 기저귀, 언제쯤 뗄 수 있을까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