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삐딱한 엄마 일기 10편] 아기 키우며 제주도 살기
어디 제주도라도 가서 한 달 푹 쉬고 오면 어떨까? 한 때 제주도 한 달 살기 바람이 분 적이 있었다. 많은 사람들이 제주도를 동경하던 그때 나는 운 좋게도(?) 그곳에 있었다.
신랑을 따라 결혼을 하면서 제주도로 내려갔다. 물론, 제주도에는 친구도, 가족도, 일도 없었다. 마냥 새로운 곳을 좋아하는 나로 써는 재미있는 경험이 되겠다 싶었고, 선뜻 따라나선 길이었다.
하지만 처음 도착한 제주도는 호락호락하지 않았다. 환경도 다르고, 사람들의 성격도 다르고, 할 수 있는 일도 다른 곳이었다. 아름다운 자연 속에서 나는 프리마켓도 참여하고, 올레 걷기 행사에 자원 활동도 했으며, 재미있고 소소한 것들을 찾아 방황했다. 하지만 딱 거기까지, 신생아를 키우기에는 적합한 곳이 아니었다.
임신했을 때, 부푼 배를 안고 마지막 열정을 불사를 곳이 없었다. 워낙 내가 문화적인 것을 좋아하는 성향이라 그렇겠지만, 제주도에는 공연이나 미술전시 같은 것들이 서울에 비해 상대적으로 적었다. 물론, 제주도에 재미있는 예술가들이 많이 내려와 다양한 것들이 생겼지만, 비정기적이고, 산발적이었다.
그리고 제일 큰 문제는 쇼핑할 공간이 절대적으로 부족하다는 것이다. 아이가 태어나고, 살 것은 산더미인데 어디 눈으로 보고 살만한 곳이 마땅치 않았다. 백화점도 없고, 상가도 적은 이 곳에서 아이 물건을 고르기는 여간 어려운 것이 아니었다.
그때부터 인터넷 쇼핑에 빠졌다. 제주도의 가장 큰 단점인 추가 배송비를 무는 리스크가 있었지만, 매일매일 인터넷 바다를 돌아다니면서 쿠폰 받기에 심취했다. 특가는 쿠폰을 물고, 쿠폰은 충동구매를 물고, 물고, 물었다. 그러다 보니 나는 점점 집 안으로 고립되어갔다.
집에서 매일 울고 부는 신생아를 어르면서 한 손으로는 쇼핑을 했다. 아이는 계속 크고 기저귀니 분유니, 아이 용품들은 끊임없이 필요했다. 신문물에 느린 내가 해외직구까지 해대면서 '집착'했다.
다행히도 옆 아파트에 같은 동지를 발견하여, 매일 걔네 집과 우리 집을 반복하며 오갔다. 우리는 집에서 커피를 내려먹고 한 달에 한 번 정도는 큰맘 먹고(?) 택시를 타고 맛있는 것을 먹으러 갔다. 따뜻했던 시간이었지만, 그게 다였다.
제주도의 자연환경은 훌륭하지만 그건, 날씨가 좋을 때만 한정된다. 바람도 워낙 매섭고, 대중교통이 발달되어 있지 않아서 신생아랑 함께 갈 곳은 별로 없었다. 나는 내 안의 답답함과 외로움 속에서 무너져갔다.
물론, 아름다운 시절도 있었다. 제주도의 아름다운 바다에서 우리는 여름 내내 놀았다. 돗자리, 텐트, 튜브 등을 들고 주말이면 주말마다 흑인이 될 정도로 돌아다녔다. 아이는 어릴 때부터 물을 좋아해서 맑고 깨끗한 물에서 파닥파닥 물장구를 쳤으며, 뜨끈한 모래에 앉혀놓으면 30분이고 1시간이고 심취해서 놀았다.
바닷가 앞의 '엣지 있는' 가게들에게선 새로운 음식들을 팔고 있었고, 맥주 한 캔이나 커피 한 잔을 테이크 아웃해서 '느낌 있게' 먹을 수도 있었다. 아이는 따뜻한 햇살 아래서 놀다 자다를 반복했다. 그때만큼은 지상낙원에 있는 것 같았다.
하지만 뭐니 뭐니 해도 가장 큰 장점은, 몸을 대충 말려서 그대로 집으로 돌아올 수 있다는 것이었다. 바닷가의 물놀이 후엔 어찌하던 찝찝함이 남기 마련인데, 게다가 코딱지만 한 아이를 차디찬 샤워장 물로 씻길 수는 없었다.
우리는 삼다수 병에 깨끗한 수돗물을 받아서, 모래사장에서 아이를 대충 씻겼다. 그리고 잠시 간이 의자에 앉아서 작렬하는 태양에 몸을 말린 뒤, 그대로 차에 돌진했다. 우비를 입고 한여름에 차에 올라타는 두 남녀. 기네스에 오를 일이었지만, 너무나 편리한 일이었다. 그리고 집으로 돌아와선 그대로 화장실로 직행. 집에서 아이와 2차 물놀이를 시작했다.
그리고 겨울에는 더 끝내준다. 제주도에 사는 사람이라면 누구나(?) 집에 썰매 한 대 쯤은 있기 마련이다. 눈이 적절하게 왔다 싶으면 썰매를 끌고 한라산 중턱으로 갔다. 한라산을 따라 길을 달리다 보면, 어느 시점에 길게 차가 주차되어있는 곳이 있다. 바로 그곳이 제주 도민들만 안다는 '핫스팟'이다.
거기에 주차를 해놓고, 자연 눈썰매장에서 썰매를 타고 주~욱 내려오면, 그렇게 재미날 수가 없었다. 아이도 아빠 앞에 앉아서 신나게 눈썰매를 탔다. 그리고 얼얼해진 두 손을 비비며 트럭에서 먹는 어묵의 맛이란! 일단 국물부터 뜨끈하게 들이켜고 나면 얼었던 속이 쏴하~하고 녹으며, 이만한 곳은 없다 싶었다.
사실, 조금 큰 아이들에게 제주도는 너무 좋은 공간이다. 여름이면 언제든지 밖으로 나갈 수 있기 때문이다. 하지만 겨울은 길고도 길며, 나는 뭣도 모르는 초보 엄마였다.
조금 자라서 아이가 돌이 지나자, 이제 좀 재미있게 놀 수 있겠구나 싶었는데 갑자기 다시 '육지'로 올라와야만 했다. '콰쾅!' 내 인생아, 좀 예고하고 흘러가 주면 안 되겠니?
나의 첫 육아가 힘들었던 건지, 나의 첫 결혼생활이 힘들었던 건지 나는 제주도에 대해서 달콤 쌉싸름한 기억을 가지고 있다. 자연을 자연 그대로 느끼지 못했던 시절, 지금 생각해보면 아쉽다.
하지만 나는 지금 사는 이 곳이 너무 좋다. 제주도에 적응하는 덴, 3년이 걸렸는데 다시 육지에 올라와서 적응하는 덴 단 3일이 걸렸다.
몰랐는데, 난 도시 사람인가 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