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모로 Mar 20. 2017

공갈 젖꼭지, 잘라야 끝난다

[삐딱한 엄마 일기 7편] 진짜 못 끊는 건 아이가 아니라 엄마

태어난 지 5~60일쯤 되었을까. 조리원의 순둥이는 사라지고, 시시때때로 울음으로 자기 의사를 표현하기 시작했다. 이유 모를 울음에 지쳐갈 때쯤, 잊고 있었던 무언가가 생각났다.


바로 공갈 젖꼭지! 내 사랑 쭉쭉이다.


사실 뭣도 모르고 사놓은 물건에는 쭉쭉이도 있었다. 끝까지 사이즈가 맞지 않은 청바지와 한 번도 물지 않던 치발기, 각종 출산 용품들 사이에 함께 뒤섞여 있었다. 종류나 취향도 모르고 미니 마우스가 귀여워서 산 그것.


'쭉쭉이를 일찍 쓰면 아이가 젖을 물지 않는다' '치아가 틀어진다' 등의 우려 섞인 걱정도 많았지만, 일단 나 살고 보자는 심정으로 아이에게 물려 보았다. 우와~ 갑자기 찾아온 신세계! 정말 만원의 행복이었다. 아이는 세상 즐거운 표정으로 쭉쭉이를 사용하는 게 아닌가.


그때부터 나는 쭉쭉이 신봉자가 되었다. 외출하기 전에는 제일 먼저 씻어둔 쭉쭉이를 챙겼고, 집에 두고 온 날에는 외출을 포기하고 돌아온 적도 있었다.


배부르고 등 따실 때 두 눈을 끔뻑거리면 잽싸게 쭉쭉이를 물려 재웠고, 아이가 찡얼찡얼 거릴 때도 쭉쭉이를 물렸다. 처음에는 너무 좋았다. 간단한 방식으로 우는 아이를 달랠 수 있었고, 하루에 무는 시간도 그리 많지 않아 양심의 가책도 없었다. 아이는 쭉쭉이를 물고 잠들었고, 잠든 사이 살며시 입에서 뱉어냈다.


같은 조리원의 동기는 우리 아이의 쭉쭉이 사랑을 부러워하며, 종류별로 사다가 물려보았다. 하지만 그 아이는 언제나 퉤퉤 뱉어버리며 물지 않았다. "제발 한 번만 물어다오." 옆에서 보고 있자니, 웃기지만 웃을 수는 없었다. 그 마음이 무엇인지 알기 때문이다.


하지만, 즐거움에는 언제나 악마가 숨어있다. 차츰 문제점이 발견되기 시작했다. 먼저 쭉쭉이의 구조적인 문제 때문인데, 많이 쓰다보다 고무 안에 미세하고 물이 고였다. 끓는 물로 소독도 하고 젖병 세제를 씻기도 하는데, 때론 그 안에 거품이 끼어 빠지지 않았다. 하지만 그 문제는 쭉쭉이를 새로 사면서 해결되었다.



멋모르고 귀엽다고 산 미니마우스 시절이 좋았지, 따지고 들자니 그 쪼그만 공갈젖꼭지의 세계도 무궁무진했다. 이제 치아가 하나둘씩 나기 시작하자 구강 문제도 걱정되고 해서, 이빨 변형이 없는지, 삶을 수 있는지, 인체에 무해한 재료인지, 커버가 있는지 등등에 디자인까지 예뻐야 했다.


인터넷 바다를 헤엄치기를 여러 날. 드디어 내 맘에 꼭 드는 제품을 만났다. 비싸고 해외에서 날아온 물건이었는데, 이런 것 까지 사야 하나 싶은 순간에도 이미 내 손은 구매 버튼을 누르고 있었다.


첫 번째 악마를 물리치고 나자 다시 두 번째 악마가 스멀스멀 기어 왔다. 아이는 모든 것을 입으로 해결하려는 구강기를 지나기 시작한 것이다. 그러면서 이 첫 친구와 헤어짐을 예감이라도 했는지 점점 집착으로 변해가고 있었다.


쭉쭉이를 물리면, 잘 자고 자연스럽게 쭉쭉이를 뱉어내던 아이가, 이젠 쭉쭉이가 있어도 잠을 잘 들지 못했다. 겨우 잠들었다가도 물고 있던 쭉쭉이가 입에서 떨어지면 귀신같이 다시 깨서 울어대기 시작했다. 놀이 시간에도 쭉쭉이를 물고 있고 싶어 했으며, 이제는 쭉쭉이로도 달래지지 않는 울음 떼들이 점점 늘어가고 있었다.


나는 두려웠다. 과연 쭉쭉이 없는 삶을 살 수 있을까. 쭉쭉이와 동거하며 보낸 아름다웠던 지난 시절을 떠올렸다. 그리고는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면서 포기했다. 아직은 쭉쭉이가 필요해. 난 할 수 없을 거야.


고민하는 사이 아이는 밤마다 칭얼대며 깨기를 반복했다. 매일 밤마다 내일은 버려야지, 내일은 과감하게 끊어버려야지 다짐하다가도, 아침이 되어 아이가 칭얼거리면 자연스럽게 입에 물리고 있었다.


'악순환의 연결고리' 아이도 나도 지쳐가고 있었다. 과감하게 쓰레기통에 버렸다가도, 다시 주워와 소독하는 모습이 반복되었다. 이건 아이가 쭉쭉이를 못 끊는 것인지, 내가 못 끊는 것인지 혼란스러워질 지경이었다.


그리고, 어느 날 갑자기. 지나간 첫사랑 같은 이 애물단지를 잘라버려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더 고민하지 않고 과감하게 가위를 꺼내 들었다.


"쭉쭉이가 가야 할 시간이래. 이제 쭉쭉이는 엄마 만나러 멀리 가는 거야~ 안녕!"


아이가 보는 앞에서 과감하게 쭉쭉이의 고무 부분을 반으로 잘랐다.


아이는 어리둥절한 표정으로 보고 있더니, 이윽고 울음을 터트렸다. 나는 끝이 잘린 쭉쭉이를 입에 물려주었다. "퉤! 이 느낌이 아니잖아! 내 쭉쭉이 내 쭉쭉이~" 아이는 세상을 잃은 듯 울어댔다. 아! 순간 후회가 파도처럼 밀려왔다. 그냥 자르지 말걸 그랬나. 난 왜 이렇게 즉흥적인 걸까. 결국은 파국이다. 난 망했어. 끝이야.  


하지만 우리의 쭉쭉이는 고르고 골라서 산, 외국에서 건너온 것이지 않았느냐. 다시 산다 해도 배송까지 며칠이나 걸릴 것이다. 그 점이 얼마나 다행이었는지 모른다. 당장이라도 마트에 달려가고 싶은 심정이었기 때문이다.


그 후로 딱 3일, 밤낮을 울어대더니 쭉쭉이를 잊었다. 나는 밤마다 우는 아이를 안고 윗집 아랫집 옆집 사람들에게 죄송한 마음으로 밤을 지새웠다. 내가 가진 총에너지를 발휘해서 달래고 어르고 업고, 안고를 반복하며 이렇게 아이를 울려도 되는지, 아이가 안쓰러워서 처음 쭉쭉이를 물렸던 날을 저주했다.


하지만 아이는 생각보다 훨씬 똑똑했고 지난한 과정을 거치자 3일 만에 자신의 상황을 받아들였다. 아이에게는 첫 상실이었으리라.


아이가 쭉쭉이를 잊는 시간에, 나도 함께 쭉쭉이의 편리함에 대한 안녕을 받아들여야 했다. 이렇게 모든 것은 지나갔다. 그리고 그것을 끊는 날, 둘은 같이 성장했다.


다시 돌아가도 아마, 쭉쭉이를 물렸을 것이다. 조금 예민하고 겁이 많은 우리 아이에게 꼭 필요했던 안정감이었다. 그리고 아무것도 모르는 초보 엄마한테 너무나도 큰 위안을 주는 물건이었으니까.


치아가 잘못되지도 않았고, 성격이 삐뚤어지지도 않았으며, 밤에 깨던 잠 습관도 자연스럽게 줄어들었다. 그리고 어느 날에서 부턴가가 한 번도 깨지 않고 통잠을 자기 시작했다.


결국 모든 고통은 끝이 나고,
아름다운 순간만 남았다.



매거진의 이전글 기대는 엄마를 힘들게 한다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