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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모로 Mar 18. 2017

기대는 엄마를 힘들게 한다

[삐딱한 엄마 일기 6편] 백화점 좌절기

아이를 키우면서 얼마나 많은 순간을 기대하고, 또 좌절할까.


거창한 게 아니다. 나오지 않는 똥을 걱정하며, 하루 종일 애 엉덩이만 쳐다보는 것도 기대다. 관장을 해야 하나, 병원을 가야 하나 고민하던 일주일. 하루 뒤 터져 나온 똥을 보는 순간, 얼마나 감동적인지.


아이가 오랜만에 일찍 잠든 날. 콧노래를 부르며 고기를 볶고, 맘에 드는 영화를 골라서 맥주캔을 착! 따는 순간 "으아앙~"하고 일어나는 아이. (캔이라도 따기 전이면 얼마나 좋아. 아까운 내 맥주 김)


버스를 잘 타고 가다가 내리기 두세 정거장 전에 잠들어 버리는 아이. 재우지 않으려고 이야기도 걸고 볼도 꼬집어 보지만 결국 떡 실신이 되어 오징어처럼 늘어져버리는 아이. 가방과 아이와 옷을 어깨에 '둘러업고' 피난민의 심정으로 버스 정류장에서 집으로 걸어간다.


진짜 포기하고 싶은 적이 한두 번이 아니었다. 아이가 10kg 넘어가면서부터 도저히 안고 다닐 만한 여력이 안되었고, 안고 가다가다 지쳐 결국 길거리에 자는 아이를 세워 흔들어 깨우기도 여러 번이었다. 잠결에 비실비실 거리는 아이를 다독여가며 걷는 길이란.


아무것도 내 맘대로 안 되는 현실. 늘 그렇게 기대는 사람을 힘들게 한다.


하루는 친구랑 판교에 나들이를 갔다. 한 여름, 폭염이 지속되는 날이었다. 아기 엄마 둘이서 판교에서 맛있는 거나 먹고, 근처 공원 산책이나 가자고 나선 길이었다. 그때 나름 피크닉 분위기를 낸답시고 지하철에 유모차를 싣고 온 우리는 아무 생각 없이 한산한 거리를 걸어 다녔다.


그런데 아뿔싸 판교는 우리가 생각하는 '아줌마들의 공간'이 아니었다. 공원이라고 찾아간 곳은 아직 만든 기간이 얼마 되지 않아 앙상한 나뭇가지들이라, 뜨거운 태양을 가려주지 못했다. 게다가 정오 12시가 되자, 신데렐라의 마법이 풀리듯 한산한 광장에 직장인들이 점심을 먹으러 쏟아져 나왔다.


우리가 어디도 갈 수 없어서 거리와 거리를 가로질러 걸어다가 보니 순식간에 점심을 먹은 사람들이 이번에는 일제히 커피 한잔과 담배를 입에 물었다.


'아, 나는 어디고 여긴 어딘가' 직장인들 사이에 우리의 모습은 너무 낯설어 이방인 같았으며, 도리어 담배를 피우며 우리 아이들을 보며 슬슬 슬금 피해 걸어가는 사람들에게 죄송한 마음이 들었다. 우리는 그렇게 유모차를 밀고 돌고 돌다가 지쳐갈 때쯤 눈 앞에 판교 현대 백화점이 보였다.


그 당시 새로 오픈한 거대한 건물은 반짝반짝 빛나 보이는 듯했다. 사람이 많다고 소문만 들었지, 한 번도 가보지 않았는데 평일 점심이니 사람도 없이 한산해 보였다.


우리는 유레카를 외치며 하이파이프를 했다. 역시 우리가 갈만한 곳은 백화점 밖에 없구나. 어서 저기로 가서 시원한 아이스커피라도 마시세. 우리의 발걸음은 공원이고 나발이고 시원하고 쾌적한 백화점으로 달려가고 있었다.


땀을 뻘뻘 흘리면서 정신없이 백화점에 도착해서 보니 '아 이런! 이런 경우가!' 아이 둘 다 유모차에서 고이 잠들어 있는 게 아닌가. 재우지 않았는데 자의로.. 그리고 두 아이가 동시에 잠든 다는 것은 기적과도 같은 일이었다.


보통 어린아이 몇 명이 모인다는 건 전쟁이다. 한 명이 자면, 다른 한 명이 울어 깨우고, 그렇게 또 다른 아이는 다른 아이를 깨운다. 서로가 서로를 깨우고, 밥을 먹고 시간차로 똥을 싸며 정신 줄을 빼놓기 마련인 것이다.


친구와 나는 얼굴에 만연한 웃음을 띄우고 수신호를 나눴다. "우리의 커피 타~임!" 백화점 자동문이 쫙~열리자 쾌적하고 시원한 바람이 불어와 끈적한 우리 등줄기를 식혀 주었다.


'어디를 한 번 가볼까요~' 기대감에 들떠서 엘리베이터를 타는데, 아! 아!! 아!!! 엘리베이터에서는 정화되지 않은 쩌렁쩌렁한 목소리가 흘러나왔다. "5층입니다. 4층입니다 10층입니다."마구잡이로 눌러지는 버튼과 여닫는 소리!


개관한 지 얼마 되지 않아, 소리조절이 되어있지 않았던 모양이다. 카랑카랑한 엘리베이터걸은 음향조절을 하지 못하고 또박또박 이야기를 이어가고 있었다. 우리의 즐거움은 5,4,3,2,1. 땡! 두 아이는 동시에 으앙 하고 울음을 터트렸다.


망했어. 그냥 아무 데나 커피숍에 갈 걸. 아니 길거리에 편의점이라도 갈걸. 하다못해 그냥 버스정류장에라도 앉아 있을걸. 아아아 이게 뭐야. 당장 고객센터에 가서 항의하고 싶은 마음이 굴뚝같았지만, 일단 우는 아이들을 달래야만 했다.


그날, 우리는 징징거리는 아이들을 어르고 달래며 터덜터덜 백화점을 돌았다. 살 것도 없고, 보고 싶은 거도 없고 단지 시원한 것에 위안 삼으며 그렇게 하루를 보내고, 저녁이 되자 지하에 사람이 너무 많아져 저녁을 먹으러 가기 두려웠다.


그래서 백화점 앞에서 김밥 한 줄 만두 몇 개를 사서 먹는데, 웃음이 나왔다. 그래도 뭔가 즐거워졌기 때문이다. 날은 저물어 어둑해지니, 백화점 외부 조명이 약간 로맨틱한 분위를 연출했다. 그래 이런 날도 있지. 미칠 정도로 힘들었지만, 그래도 김밥은 맛있네. 우리는 깔깔 웃으면서 우리의 운빨을 자축(?)했다.


하지만 이날의 악몽은 여기에서 끝나지 않았다. 우리는 감동한 나머지 그 앞에서 너무 서성거리느라 또다시 직장인 퇴근 시간과 만나버렸다. 수차례 콜을 부르고 손을 흔들어도 매정하게 지나가 버리는 택시들. 몇십 분을 그렇게 택시와 사투를 벌이다가 보니, 이대로 집에 가지 못하는 건가 두려움이 들었다.


그때 멀리서 택시 한 대가 사람을 내리고 있었다. 유모차를 미는 손이 떨렸다. 저 택시를 꼭 타야만 해. 나는 할 수 있다. 부끄러움을 무릅쓰고 유모차를 밀며 달렸다. 그래서 탔냐고? 탔다. 그런데 마지막까지 호락호락하지 않은 내 인생은, 카드 결제기가 고장 나는 바람에 한참을 택시 안에 갇혀있었어야 했다.


인생은 내 맘대로 흘러가지 않고, 아이도 내 마음대로 안 된다. 상황이 힘들고 꼬이는 하루를 만나면 정말 그대로 주저앉고 싶을 때도 있다.


그럴 때면 우리나라에 전쟁이 일어나면 어떻게 될까를 생각한다. 전쟁이 나서 정말 아무 운송수단도 없고, 먹을 것도 부족하고, 짐도 산더미인데 걸어서 피난을 가야 하면, 정말 나는 이 아이를 끝까지 안고 갈 수 있을까.


피난 갈 때, 다른 건 몰라도 유모차는 꼭 챙겨야 하겠다며. 죽는 힘을 다해 아이를 안고 한발 한발 걸어가는 내 모습을 상상하곤 했다.


그냥 가끔 나는 아이의 무게를 느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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