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삐딱한 엄마 일기 5편] 잠투정
아이를 키우면서 여러 가지 의문이 생기기 마련이다. 하지만 그중에서 가장 이해가 안 되는 부분은 바로 '잠투정'이다.
잠이 오면 자면 된다. 이건 '배가 고프면 먹으면 된다', '봄이 오면 꽃이 핀다' 만큼 당연한 삶의 진리 아니던가. 그런데 많은 아이들이, 특히 우리 아이는 잠에 유독 민감했다
신생아 시절에는 '먹고-자고-싸고를 반복한다. 하지만 조금 자라기 시작하면 낮잠이 줄어든다. 3시간마다 한 번 자던 것이. 하루에 3번이 되고, 2번이 되고 한 번이 되면 엄마는 혼란스럽고 받아들이기 힘들다.
잠이라도 자야 잠시 숨 돌릴 틈이 있는데, 그래야 밥도 먹고 세수도 좀 하고, 커피라도 한 잔 마시는데. 안 자다니! 처음 낮잠을 한 번도 자지 않던 날 나는 충격에 빠졌다.
믿을 수 없는 현실을 부정해보아도, 역시나 잠에 예민한 우리 아이는 24개월 정도 가 지나자 특별한 경우를 제외하고는 낮잠을 뚝 끊어버렸다.
처음엔 낮잠을 안 자도 밤잠을 일찍 자서 괜찮았다. 하지만 아이의 체력과 비례해 자는 시간은 점점 줄어갔다, 41개월을 넘어가는 지금, 낮잠을 안 자고도 11시까지는 거뜬하게 버티는 강철 인간이 되었다.
잘 거 같은데 진짜 툭하면 잠들 거 같은데... 같으면서도... 같을 거라고 믿고 있는데! 잠들지 않는 오뚝이 같은 아이. 오죽했으면 동영상 찍어놓고는 나중에 고3 되면 보여준다고, 넌 이렇게 잠을 이기는 사나이 었다고, 말해 줄 거라 협박까지 했겠는가.
평소엔 순둥이 같던 녀석이, 재우려는 낌새는 어찌나 그렇게 귀신같이 알아채는지. 재우려고 '생각'만 해도 벗어나려고 발버둥 치는 게 아닌가. 아이고 이놈아. 엄마는 못 자서 안달이란다.
자기 전엔 늘 달콤한 말로 시작한다. "아가야~ 너는 지금 자는 게 아니야. 잠시 누워서 '쉬는'거야 쉬는 거!" 일단 눕힐 수 있으면 반은 해결된 거다. 우리 아이는 의지가 있는 한 잠시도 눕지 않으니깐.
누워서 이야기도 해주고, 손이랑 발이랑 마사지도 해준다. 쪼끄만 게 마사지는 얼마나 좋아하는지. 요샌 누워 있다가도 발을 턱 내 쪽으로 올리고는 "주물러줘" 이런다. 네에네에 분부대로 합죠.
수면 교육도 생각해봤다. 밤중 수유를 끊으면서 베이비 위스퍼 같은 수면 교육 방법을 고민했지만, 그 무엇도 나랑은 맞지 않았다. 물론, 아이가 원할 때마다 우유를 줄 수는 없는 노릇이지만, 그렇다고 무한정 아이를 울릴 수도 없었다.
아이 낳기 전에 사놓았던 '프랑스 아이처럼'과 '잠들면 천사'를 읽으며 감탄했던 나는, 아이가 태어나자 우리나라에선 아니 적어도 나에겐 전혀 해당되지 않는 책의 내용임을 알아챘다.
프랑스 아이들은 외출 시 자기 자리에 반듯하게 앉아서 밥을 먹고, 신생아부터 자기 방에서 혼자 잠이 들며, 9시가 넘어도 잠이 오지 않으면 '조용히' 자기 방에서 혼자 논단다.
아이에게 휘둘리고, 사랑이 넘치는(?) 나로서는 도저히 실행할 수 없는 '단호박'이다. 허리가 아파 안아 재우는 건 진즉에 끊었지만, 나는 쭉쭉이 물리기, 이야기해주기, 노래 불러주기, 손 잡아주기, 눈썹 만져 주기 등 여러 가지 혼자만의 노하우를 터득해 가며 아이와 함께 적응해 갔다.
도대체 왜 우는지, 원하는 게 무엇인지, 알지 못해 답답하고 힘든 날이었다. 하지만 그 시간들이 지나고 조금씩 말을 하게 되자, 아이는 자다가 일어나 "엄마가 보고 싶어"랄지 "목이 마르다" 랄지 "배가 아프다"며 자기의 의사를 표현했다.
작은 아이가 그저 떼를 쓰는 것이 아니었구나. 원하는 것이 있었는데 몰랐던 거구나. 가끔 밤에 깨서 하는 의사표현을 보며, 새삼 커져버린 아이를 느낀다. 여전히 어린이집에서 거의 자지 않아 선생님께 죄송하지만, 그래도 요새는 말한다. "엄마 책 여기까지만 읽고 잘게"라고.
밥도 가리는 것 없이 잘 먹고, 잘 웃고, 애교 많고, 똑똑한 우리 아이가 왜 잠만은 그렇게 거부하는 것일까.
아이들에게 잠은 죽음만큼 두려운 것이란다. 우리는 내일이 있음을 알고 있지만, 아이들은 오늘 자면 끝이라는 생각을 하기 때문에 힘든 거라는 말을 들었다.
오늘만 사는 우리 아이!
너무나 너무나 너무나 사랑스럽지만,
역시 잠잘 때가 가장 예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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