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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모로 Mar 14. 2017

엄마들이 문센에 가는 이유

[삐딱한 엄마 일기 2편] 유모차와 문화센터

저렇게 어린 데 가서 뭘 배워?


아기띠를 메고 문화센터를 다니는 엄마들을 보고  라고 '나도' 저렇게 말했다. 반성한다. 뭘 몰라도 너무 몰랐다.


아이를 키워보니 문화센터를 다닌다는 것은 꼭 아이에게 무엇을 가르치고 싶어서가 아니다. 밖에 나갈 핑계를 만드는 것이다. 요즘 같은 핵가족 시대, 단절된 구성원으로 살아가는 우리로써는, 물론 신랑도 있고 도와줄 친정 엄마가 있을지언정 그래도 결국엔 나(주 양육자)와 아이가 긴긴 시간을 함께 하게 된다.


아이는 물론 사랑스러우나 먹고 싸고 놀고, 먹고 싸고 놀고를 무한 반복한다. 그러다 보면 오늘이 월요일인지 화요일인지 헷갈린다. 분명 일어나서 코털 휘날리게 바쁜 시간을 보냈는데도, 고개를 들어보면 아직 점심. '아!' 그 기나긴 하루를 토막 내줄 무언가가 필요하기 때문이다.  



사실 문화센터를 가는 일도 만만치 않다. 일단, 인기 있는 강의는 수강신청을 버금가는 광클릭이 필요하다. 미리 시간표를 받아 시간 맞춰 대기하고 있는데, 가끔 서버가 다운되는 경우가 있어 엄마들은 아예 80년대 귀성길처럼 문화센터 앞에 긴 줄을 늘어선다.


나야 뭐 세상 편한 백성이고 못 들으면 그만이라는 생각으로 뛰어가진 않았지만, 답답한 사이트 사정으로 욱 한 적이 한두 번이 아니었다.


일단 등록해 놓으면 수업시간에 맞춰, 내가 씻고 옷을 입는 것과 동시에, 아이도 준비시키고, 수유 텀을 조절하고, 낮잠 시간까지 고려해서 늦지 않게 도착하는 것은 보통 힘든 일이 아니다.


초반에는 모두들 전투적인 자세로 정원을 꽉 찬 인원으로 수업이 시작된다. 하지만 수업이 진행되면서 모든 엄마들이 나와 비슷한 여러 가지 돌발 상황으로 인해 수업에 참석하지 못한다.


아이들은 꼭 '왜!' 옷을 다 입고 아기띠를 하고 겨우겨우 나서려고 하면 기저귀에 똥을 싸는 것일까. 아이들은 꼭 왜! 부랴부랴 준비해서 헐레벌떡 문화센터에 도착하고 보니 내 품에서 자고 있는 것일까. 아이들은 또 왜! 유행하던 감기에는 코끝만 스쳐도 서로 옮고 옮아서 아픈 것일까.


가지 못할 이유는 가야 하는 이유보다 훨씬 많다. 그래서 나 역시 문화센터 출석률을 반 이상으로 유지하는 것이 꽤나 힘들었는데, 그래도 그렇게 전투 같은 수업을 하고 집에 돌아오면 반나절은 지나간다는 데 위안을 삼곤 했다.


거기에 나는 뚜벅이라 위의 블라블라 한 상황에서 플러스 마이너스 곱하기가 더 추가되었다. 어깨와 팔 힘이 약해 유모차 애용자였지만, 유모차를 밀고 다니면서 수많은 난관에 봉착하게 된다.


유모차는 아이를 키우는 엄마들에게 아주 유용한 이동수단이다. 유모차는 다만 아이를 싣고 다니는 기능뿐 만이 아니라, 지나가다 생각난 반찬거리, 우유, 빵, 가방 등을 잔뜩 실어 나를 수 있는 리어카 같은 역할도 한다. 하지만 이는 유모차를 밀기 편한 곳에 한정되어있는 편리함이다.


유모차를 끌고 다닌 다는 것은 버스를 자유롭게 타지 못한단 말이며, 밥을 먹어도 유모차를 넣을 만한 공간이 있어야 한다는 뜻이기도 하면서, 계단을 올라갈 수 없어 엘리베이터가 구비되어야 한다는 말이다. 이 많은 장애물 중 하나만 어긋나도 유모차는 지긋지긋한 짐 덩이가 되고 만다.


나는 유모차를 밀고 다닐 때마다 뒤늦게도 다리가 불편한 사람들의 고충을 이해하곤 했다. 아무 생각 없이 걸어 다니던 공간들이 유모차의 시각으로 보면 한 없이 불편하고 힘든 고난의 길이 되는 것이다.


그제야 백화점이나 마트에 유모차를 끌고 유령처럼 걸어 다니는 엄마들의 실체를 이해하게 되었다. 냉난방이 구비된 실내, 수유실과 한편에 마련된 기저귀를 갈 수 있는 공간. 반듯한 바닥, 엘리베이터로 이어지는 편리한 구조.


엄마들이 유모차를 끌고 다닐만한 곳은 얼마 되지 않는다.


유모차를 끌고 여기저기 기웃거리며, 그러다 운 좋게 아이가 잠들기라도 하면 삼바춤을 추면서 마시는 커피 한잔이 그렇게 행복할 수가 없었다. 내 상황이 되어서야 다른 사람들을 이해할 수 있게 되는 것이구나.


이렇게 아이는 엄마를 자라게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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