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매거진 5cine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Heloise Mar 22. 2017

해피투게더

왕가위 영화의 매력

왕가위 감독의 영화를 본 것은 고등학교 3학년 때였다.

'중경삼림'이라는 영화를 제일 먼저 보았고, 그 다음엔 '화양연화'를 봤는데, 그 매력에 푹 빠지게 됐다.

특유의 쉴새없이 움직이는 화면과, 어딘가 한 차원 붕 뜬것 같아 보이는 주인공들이 신선했고, 영화 장면 하나 하나마다 가슴이 뛰었다.

그가 만든 영화 중 명작으로 불리는 '해피투게더'는 시간이 꽤 지나서야 봤다. 너무나도 유명한 장국영과 양조위가 동성애자로 나오는 영화였다. 첫 시작부터 둘의 강렬한 정사씬이 이어졌다. 홍콩에서 온 그들이 사랑을 나누는 곳은 아르헨티나. 홍콩과 정반대에 위치한 자유의 나라였다.


둘은 이과수 폭포를 보기 위해 차를 타고 길을 나서지만, 결국 헛바퀴만 돌게 된다. 짜증이 난 보영(장국영)은 담배를 물고 한껏 인상을 쓰다가 차 문을 박차고 걸어나가 버린다. 그저 짧은 사랑 싸움이려니 생각헀지만, 아휘(양조위)의 나레이션이 그 둘의 관계가 끝났음을 담담히 말해준다.


하지만 둘의 관계는 매번 제자리 걸음이다. 폭포를 찾으러 가면서 계속 길을 헤맨 것처럼, 둘은 서로 안에서 끝없이 헤매고 방황한다. 그 중 조금 더 묵묵한 쪽은 아휘, 조금 더 도발적인 쪽은 보영이다. 먼저 아휘를 떠났던 보영은 아휘가 일하는 호텔에, 일부러 다른 남자와 찾아가 키스를 한다. 헤어지자고 말해 놓고는 계속 그의 주변을 떠나지 못하고 맴돈다.



아휘는 다시는 그를 받아주지 않겠다고 다짐하지만, 결국 얼굴과 손이 피투성이가 되어서 자신을 찾아온 보영을 조용히 안아주고 만다. 그 날 이후, 아휘의 낡은 집에 함께 살게 된 보영은 아파서 며칠을 끙끙 앓는다. 평소엔 늘 제멋대로인 보영이 잠잠하자, 아휘는 다시 그와의 연애에 대해 '희망'을 갖는다.


사랑은 언제나 희망을 갖게 하지만, 꼭 그만큼의 실망도 함께 갖다준다.

몸이 점점 회복되어가면서, 다시 이기적인 모습을 보이는 보영에게 아휘는 또다시 실망하게 된다. 반면 보영은 늘 같은 모습의 아휘에게서 답답함을 느낀다. 어느 날에는 그가 밖에 나가지 말라며 사온 수십 개의 담배를 다 내팽개쳐 버린다. 여권이 어디있냐며 아휘에게 소리치고, 방을 뒤집곤 아무 말 없이 나가 버린다.


그 뒤엔 혼자 남겨진 아휘의 쓸쓸함이 느껴지는 장면이 많이 나온다. 처연한 그 표정과, 홀로 남겨진 방 안, 이과수 폭포가 그려진 전등, 아무렇게나 널부러져 있는 이불... 모든 장면마다 이별에 찌든 사람의 눈물 냄새가 난다. 겉으로는 덤덤한 듯 행동해도 그의 표정과 몸짓과 분위기 모든 게 슬프다.


유일하게 다가와 준 친구 장(장첸)도, 돈을 다 모았다며 일을 그만둔다고 말한다. 오롯이 혼자 남겨진 아휘는 장의 녹음기에 자신의 슬픔을 조용히 고백한다.


헤어지고, 또 다시 만나기를 끊임없이 반복했던 관계는 완전히 끝이 났다. 아휘는 장에게 자신의 슬픔을 먼 곳에 묻어달라고 말한 후 혼자 이과수 폭포를 보러 간다. 보영에 대한 미련을 버리기 위해, 그는 보영이 꼭 가고싶다고 했던 이과수 폭포에 혼자 간다. 그리고는 홍콩으로 되돌아간다. 보영이 알 수 없는 곳으로, 더이상 보영과 연락이 닿지 않는 곳으로 사라져 버린다. 그리고 보영은, 아휘가 떠난 방에 뒤늦게 찾아가 이불을 부여잡고 엉엉 울어버린다.



동성 간의 연애를 다루지만, 영화는 모든 사람이 공감할 만한 아주 일반적인 연애를 그린다. 서로를 지독하게 사랑하고, 때로는 죽일 듯이 미워하고, 헤어지고 나서도 도저히 안될 것 같아 다시 만나고.. 또 헤어짐을 반복하고... 서로가 아니면 절대 아닐 것 같았지만 결국엔 차갑게 돌아서는 아주 '평범한 연애'다.


특히 두 주인공의 연기 때문에 더 감정에 몰입하게 되는데, 제멋대로 행동해도 도저히 미워할 수는 없는 보영은 장국영이 아니면 그 누가 했을까라는 생각이 들 정도다.


또, 영화에서 보영이 나오는 장면이 많지 않은데, 촬영 당시 장국영이 급성 이질에 걸려 미리 귀국을 해버렸기 때문이라고 한다. 다시 말해 탄탄하게 미리 정해진 시나리오대로 뽑은 영화가 아니고, 상황에 맞춰 즉흥적으로 작업한 영화라는 것. (당시 장국영은 하도 고생해서 살이 몇 키로가 빠졌다고 한다.)아마 이 영화가 이렇게 독특한 색채를 갖게 된 데에는 그런 작업 방식도 한 몫 한 것 같다.


이미 명작이라고 정평이 난 작품을 이제서야 봤지만, 오히려 연애의 쓴 맛을 몇 번 맛본 지금 이 영화를 보게 돼 더 좋았다. 평범한 사랑이야기지만, 이상하게 둘의 슬픈 표정이 눈에 밟힌다.  

https://youtu.be/QU0oeghlCB4




매거진의 이전글 러브 미 이프 유 데어 Jeux d'Enfants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