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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Heloise May 01. 2017

나의 사랑 그리스

브런치 시사회

브런치 시사회로 보게 된 영화 <나의 사랑 그리스>는 기대 이상이었다.

사실, 등장인물부터 줄거리까지 아무런 사전 지식 없이 보게 된 영화라 기대치가 낮았던 것도 있었지만, 캐릭터 하나하나가 살아있고, 영화 속 세 가지 내용을 관통하는 깊은 메시지가 있다는 점이 좋았다.


영화의 포스터만 보면, 우디 앨런의 <로마 위드 러브>가 떠올랐다. 아름다운 그리스의 풍경과, 그 속에서 꽃피는 찬란한 사랑 이야기가 나오겠거니, 막연히 생각했으나 막상 뚜껑을 열어보니 웬걸, 전혀 다른 내용이 들어 있었다.


#1. 정치학과 대학생 다프네와 시리아 난민 출신의 파리스 이야기

총 세 가지 내용으로 펼쳐지는 이 영화의 첫 번째 이야기다. 대학교에서 정치학을 전공하는 여대생 다프네가 어는 날 괴한들에게 몹쓸 짓을 당할 뻔하고, 그때 파리스라는 한 청년이 도와주면서 둘의 인연이 시작된다. 둘은 어눌한 영어로 서로 이야기를 나누면서 결국 사랑에 빠진다. 사실 뻔한 내용이긴 하지만 그 속에 그리스의 현재 상황이 아주 제대로 반영되어 있다는 점에서 의미가 깊다. 몰려드는 난민, 끊임없이 발생하는 강도 등의 범죄, '이방인'을 향한 적대적인 시선과 차별 등.. 물론 그 안에서도 그들의 사랑은 순수하고 아름답다. 동시에 언제 꺼질지 모르는 모닥불처럼, 위태롭다.


사실 이 스토리에서 나는 과거의 내 경험이 많이 떠올랐다.

대학생 때 말레이시아에 두 달 정도 간 적이 있는데, 그곳에서 시리아 친구들을 많이 만났고, 또 자주 어울렸었다. 친구들을 만나면서 그들의 도시가 어떻게 파괴됐는지, 가족들은 어디로 뿔뿔이 흩어졌는지, 끝이 보이지 않는 내전이 왜 시작됐는지, 그들이 왜 쉽사리 다른 나라에 입국하기 힘든지 등 많은 이야기들을 들었고, 느꼈다.

다행히 부유한 집안 출신이던 친구들은 이곳에서 전공 공부를 하고, 가족들 또한 안전한 곳에 다른 거처를 마련했다는 게 영화 속 파리스와 다른 점이랄까.


아무튼, 이 젊은 커플이 그저 사랑할 수 있게 세상이 내버려두면 좋겠지만, 절대 그렇지 않다. 가장 큰 문제는 바로, 다프네의 아버지가 파시스트라는 것이다. 점점 기울어져만 가는 그리스의 상황을 모두 이민자 탓, 이방인 탓으로 돌려버린 그는 매일 밤마다 작당을 하고, 이민자들에게 총구를 겨눈다. 한마디로 아버지와 딸이 전혀 반대되는 행동을 하고 있는 것이다. 결국 작게는 가족 간의 균열, 크게는 그리스 사회 전체의 균열이 영화 마지막 부분에서 비극을 불러온다.


#2. 능청스러운 미남 지오르고와 스웨덴에서 온 '차도녀' 엘리제 이야기

영화의 두 번째 이야기로, 초반에는 아주 재밌고 센스 있는 장면이 종종 나오지만 후반부에 갈수록 영화의 중심을 제대로 잡아주는 역할을 한다. 한 가정의 가장이자, 극도의 스트레스로 매일 밤 '로세프트 50mg'을 복용하는 지오르고. 그는 어느 날 바에서 스웨덴 출신의 여인 엘리제를 만나고 둘은 결국 원나잇으로 하룻밤을 불태운다. 찔러도 피 한 방울 안 나올 것 같은 엘리제와 매일 밤마다 밀회를 하던 지오르고. 그런데 어느 날, 그가 몸담고 있는 회사의 직원을 '뭉텅이'로 해고시킬 상사가 등장하는데... 바로 그녀다.


하지만 몸을 섞은 정이 어디 쉽게 사라지겠는가. 때로는 장난스럽게, 또 때로는 진지하게 서로를 알아가던 둘 사이에 균열이 일어난다. 매일매일 내 옆에 있던 동료가 짐을 싸고, 십수 년을 바쳐 일했던 회사에서 내동댕이쳐져 억울함을 눈물로 쏟아내는 장면이 끊임없이 나오고. 그러던 중 지오르고의 오랜 친구마저 회사에서 잘려, 자살을 하고 만다. 찔러도 피 한 방울 안 날 것 같던 엘리제도 이쯤 되니 미칠 노릇이다.


결국 지오르고는 엘리제에게 이별을 고하고, 엘리제 또한 직원들을 자르는 일 때문에 극도의 스트레스를 받은 나머지, 임무를 포기하고 스웨덴으로 돌아간다.


#3. 귀여운 여인 마리아와 젠틀한 독일 남자 세바스찬 이야기

마트 앞에서 우연히 만나게 된 마리아와 세바스찬. 첫 장면부터 괜히 퉁명스러우면서도 왠지 모르게 귀여운 마리아의 매력에 흠뻑 빠지게 되는 이 이야기는, 각기 다른 커플들의 이야기를 하나로 모아줌과 동시에 뭉클한 감동을 주는 클라이맥스다.


어릴 적 결혼을 한 후 하고 싶던 공부도 하지 못한 채 가정 주부로만 살아왔던 마리아는, 그리스의 문화에 반해 아예 그리스에 눌러 살기로 한 독일 남자, 세바스찬을 만나면서 인생에 새로운 활력을 찾는다. 그녀에게 있어서 그는 매주마다 새로운 이야기를 들려주고, 그녀를 누구의 엄마가 아닌 한 여인으로 봐주는 존재다. 꽉 닫혀 있던 마리아의 마음에 세바스찬은 매번 문을 두드린다. 열릴 듯 말듯한 마리아의 마음. 하지만 비극적인 사건 이후, 세바스찬은 더 이상 마리아를 만날 수 없게 된다. 무려 1년 동안.


*영화를 보지 않았다면, 아래 글은 스쳐 주세요. 스포가 될 수 있습니다.


# 비극, 혹은 희망

결국 마리아와 세바스찬의 이야기에서, 이 영화의 스토리 3개가 모두 이어진다.

마리아의 딸은 다프네, 아들은 지오르고, 그녀의 남편은 지독한 파시스트다. 결국 이 모든 이야기가 한 가족의 이야기로 연결되면서 가장 큰 비극이 몰아닥친다.


파시스트 아버지가 이민자들을 위협하기 위해 폭동을 일으키고, 그 과정에서 파리스와 함께 있던 다프네가 총을 맞고 만다. 아버지의 눈앞에서 총을 맞고 쓰러진 다프네. 그렇게 그녀는 다시는 눈을 뜨지 못한다. 딸의 죽음에 충격을 받은 마리아는 그래서 더 이상 세바스찬을 만나러 갈 수 없었던 것이다.


하지만, 결국 세바스찬의 끝없는 기다림이 통했던 것일까. 둘은 한 과일가게 앞에서 다시 재회하고, 마리아는 세바스찬의 품에 안겨 눈물을 흘린다. 이 장면과 함께, 세바스찬의 잔잔한 목소리로 내레이션이 이어진다.

어찌 보면 약간 뜬금없어 보이기도 하지만, 그의 내레이션이 던지는 메시지는 '사랑'이다.


위대한 그리스 인들은 과거, 사랑으로 위기를 이기는 힘을 이미 알고 있었고, 이제 우리도 선조의 지혜를 발휘해야 할 때다. 전 세계인들에게 큰 영향을 미친 우리나라에 자긍심을 가져라. 그리고 두 번째 기회는 반드시 올 테니, 실패해도 다시 일어나라.


결국 감독이 이야기하고자 하는 것은, 겉으로 보기엔 커플 간의 사랑일지 모르나, 크게 보면 인류애적인 사랑인 셈이다. 에로스의 몸에 촛농을 떨어트려도, 금단의 보석 상자를 열어보아도 기회는 있고, 언젠가는 에로스, 즉 사랑의 품에 안기리라. 그것이 이 영화가 가진 깊디깊은 메시지다.


개인적으로, 영화 속 캐릭터가 하나하나 살아있는 데다가, 어렵고 무거울 수 있는 내용을 매우 센스 있게 다룬 작품이라고 생각한다. 한편으로는, 우리나라에도 시국이 혼란할 때 이런 멋진 영화가 나와 우리에게 희망의 메시지를 전달해줄 수 있었으면 좋겠다고 생각했다. 오래간만에 아주 값진 영화를 본 시간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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