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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Heloise Aug 14. 2018

밤의 해변에서 혼자

지독하게 고독한 영화

한동안 홍상수 감독과 배우 김민희의 불륜이 인터넷 검색어 1위에, 온 방송 프로그램까지 도배된 적이 있다. 당시 같이 일하던 언니는 나에게 '천하의 몹쓸 것들, 저런 쓰레기들은 좀 없어져버렸으면 좋겠어'라며 울분을 토했다. 바로 전 남자친구가 바람을 펴 아주 난장판으로 헤어졌던 탓이다. 어디 그 언니 뿐이겠나, 거의 대부분의 사람들이 둘을 싸잡아 욕했다.


아직도 기억나는 건, mbc 모 프로그램에서 직접 카메라를 들이대며 홍상수 감독의 자택, 강의실까지 찾아가 집요하게 취재 하는 장면이었다. '저렇게까지?' 라는 생각이 얼핏 스쳤지만 별 신경을 쓰지 않았다. 단, <밤의 해변에서 혼자>가 개봉했을 때에는 나도 욕을 좀 했다. 뭐가 자랑이라고 그들의 이야기를 고스란히 담은 영화를 개봉할까. 떳떳할까? 하는 생각에서였다.


개봉 당시엔 이 영화를 보지 않았다. 하지만, 어느 날 갑자기 포스터에 우두커니 서 있는 김민희의 얼굴이 눈에 밟혀, 시간이 꽤 지난 지금에서야 영화를 보게 되었다. 우선 결론부터 말하면, 이 영화는 정말 '혼을 갈아 넣은 작품' 이었다.

이야기는 세 챕터로 나눠져 진행된다. 1부에선 아는 언니가 있는 해외로 여행을 간 영희, 2부에서는 한국으로 돌아와 영화계 선배들을 만나 수다 떠는 이야기, 마지막 3부는 감독과 함께 술자리를 하며 앓던 말을 뱉어내는 이야기다.


영화에서 김민희가 곧 영희고, 영희가 김민희다. 유부남과 사랑에 빠진 그녀는 낯선 도시에 가서도 그를 기다린다. 그가 정말 오냐는 언니의 물음에, 모르지 뭐. 쿨하게 대답한다. 하지만 그가 보고싶다고 이야기한다. 자기는 그저 나답게 살고싶다고, 잘생긴 남자들 많이 만나봤고 많이 놀아봤다고. 심드렁하게 이야기하는 그 모습이 차가운 겨울바다같다.


2부에서 그녀는 오랜만에 만난 선배에게 이렇게 말한다.

"남자들 다 병신같아요. 병신 같아."

사랑에 한번쯤 데여본 사람이라면, 이 말에 담긴 감정을 오롯이 이해하리라. 물론 나도 그랬다.


선배들과의 술자리에서 그녀는 취기 어린 목소리로 날카롭게 이야기한다. 사랑 받을 자격도 없는 사람들이 사랑을 한다고. 모르면, 모르면 그냥 입 좀 닫고 조용히 있으라고. 그리고 사랑, 그거 눈에 보이지도 않는데 어떻게 믿냐고.


3부에서 감독은 영희 앞에서 울어버린다. 너무나 후회되고, 하루하루가 후회라고. 거기에 영희는 말한다. 후회하지 말라고. 그런 영희에게 감독은 안톤 체홉의 한 단편을 읽어준다. 자세히 기억은 나지 않지만, 기차에서 마주친 남녀가 그러지 않아야 할 것을 알면서도 사랑을 해버렸다는 내용. 그리고 사랑이라는 건 선과 악의 잣대로 어떻게 구분짓기 너무 힘들다는...대충 이런 내용이었던 것 같다.


그래, 어쩌면 사랑이라는 감정 자체는 좋은 것도 나쁜 것도 없을 거다. 결혼이라는 족쇄가 그 사이에 자리잡는 순간, 세상에서 가장 고결하고 축복받아야 마땅할 사랑은 질타를 받게 되는 것이다.


또 어쩌면 사랑은 아무 죄가 없다. 인간이 만들어 낸 결혼이라는 제도 자체가, 말도 안되는 '객기' 였을 수도 있다. 감히 순수한 감정에 법의 잣대를 들이미는 인간들의 모습이, 신은 고까운게다. 그래서 이렇게 세상에 수많은 미혼남녀가 있을지라도, 하필 사랑하는 사람이 유부남, 유부녀여서 지독한 고통을 받게끔 장난을 치는걸지도 모른다.


영화를 보고 나니 이런 생각이 들었다. 영희는 정말 사랑에 온 몸을 내던졌구나. 눈에 보이지도 않는 사랑이라는 것에 자신의 모든 것을 던진 그녀가 한편으로는 대단해 보였고, 끝도 없이 고독해 보였다. 그녀의 모습에서, 진정 사랑하면 맛볼 수 있는 고독의 절정이 느껴졌다. 겨울 바다처럼, 처연하게 부서지는 모습에 괜히 나도 눈물이 다 났다.


이쯤 되면, 사랑이고 뭐고... 그냥 우리 인간에게는 사는 게 벌이라는 생각이 더 또렷이 든다.

그리고 또 하나. 나는 그 둘을 욕하고 싶은 마음은 없다. 껍데기, 허상을 붙잡고 사느냐, 아니면 순수한 마음을 따라 가느냐에 대해, 지독하게 이기적으로 결론을 내린 것 뿐. 누가 사랑에 돌을 던지랴.


안톤 체호프-사랑에 관하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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