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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Heloise Sep 01. 2018

빌리지(The Village, 2004)

M. 나이트 샤말란 감독의 '걸작' 

비가 오고 흐린 날이면, 왠지 음산한 분위기의 공포영화가 보고싶다. 찌르고, 피 튀기고, 주인공이 쫓기는 모습에 침이 꼴딱 넘어가는 영화보단 분위기 자체가 압도적인 영화, 그런 영화가 좋다. 비가 오면 괜히 라면을 끓여먹고싶은 것처럼, 나에겐 음산한 공포영화 한 편이 비오는 날의 소소한 행복이다. 



이 영화 역시 비가 억수같이 쏟아지던 날 봤다. M. 나이트 샤말란 감독의 영화는 다 봤지만, 딱 이 영화 <빌리지> 만은 보지 않았다. 마침 내가 좋아하는 호아킨 피닉스와, 브라이스 달라스 하워드가 주인공으로 나왔다. 


영화 속 배경은 마치 18세기 정도 되는 중세시대 마을같다. 그곳에서 마을 사람들끼리 어울리고, 결혼을 해서 대대손손 살아간다. 농사도 다 함께 짓고, 밥도 모두가 함께 먹고, 굉장히 이상적인 '사회주의'를 실현하는 곳이다. 그들만의 유토피아 같은 곳... 그러나 이곳엔 금기가 있다. 빨간색은 불길한 색이라 보이는 즉시 숨겨야 하며, 한번씩 마을 밖의 '괴물'이 쳐들어와 평화를 깨트린다. 


*아래부터 스포주의*

기이한 긴장감이 감도는 마을이지만 전쟁통에도 사랑은 꽃핀다고, 눈이 안보이지만, 사람의 영혼을 어렴풋이 색으로 구분할 수 있는 순수한  여인 '아이비' 와 과묵한 남자 '루시우스'가 사랑에 빠진다. 둘의 사랑이 모두의 축복을 받고 결실을 맺기 하루 전날, 사건이 발생한다. 아이비를 짝사랑했던 '노아'가 질투에 못 이겨 '루시우스'를 찔러 버린 것. 

마을 안에는 주치의 한명이 전부. 사랑하는 남자가 생명이 위독한 것을 보고, '아이비'는 괴물이 득실대는 마을 밖으로 직접 나가겠다고 말한다. 사랑하는 사람을 위해서 자신의 목숨까지 내놓은 것이다. 평범한 사람이어도 너무나 두려울 '미지의 세계'를, 앞조차 안보이는 여인이 직접 나서겠다고 한 것이다. 


그런 그녀를 모두가 반대하지만, 유일한 한 명, 아버지만이 응원해준다. 그리고 여기서 놀라운 비밀이 밝혀진다.미지의 '괴물'이 알고보니 마을 원로들의 자작극이었던 것. 


사실 마을 원로들은 모두 과거의 끔찍한 사건으로 인해 소중한 사람을 잃은 경험이 있던 사람들이었다. 사랑하는 언니가 남자들에게 성폭행 당해, 쓰레기차에 버려져 있었다던지... 밤중에 괴한이 찾아와, 아버지의 머리에 총을 겨눴다던지 말이다. 씻을 수 없는 상처에, 인간에 대한 증오, 사회에 대한 불신이 생긴 그들은 결국 비슷한 상처를 입은 사람들끼리 모여 그들만의 '유토피아'를 만든 것이다. 


그러나 결국, 상처받은 인간들이 모여 만든 천국에도 비극이 찾아온 셈이다. 인생에 '절대'란 말은 어울리지 않듯. 그들이 바라던 평화와 안전은 결국 무너지고 말았다. 


아이러니 한 건, 마을 밖으로 나가려는 젊은이들을 붙잡기 위해  원로들이 직접 괴물 탈을 쓰고, 사이렌을 울리고, 염소를 죽여 내장을 파놓는다던지, 뭐 그런 공포감을 조성했다는 거다. 참 처절하다. 이렇게까지 연극을 하면서 외부와 모든 걸 단절한다는 게, 그들의 상처가 얼마나 깊은지 보여준다. 


결국 온갖 고난과 역경을 뛰어넘고, '아이비'는 밖에서 무사히 약과 쓸만한 것들을 구해온다. 노란 망토를 뒤집어 쓰고, 지팡이로 더듬 더듬, 울퉁불퉁한 길을 넘어지며 깨지며 걷는다. 온 몸이 흙투성이가 되어 돌아온 그녀는, 곧장 사랑하는 '루시우스' 앞으로 가 울면서 구해온 약을 풀어놓는다. 


마치 그리스 로마 신화에 나오는 '프시케' 같다. 잃어버린 연인 '에로스'를 찾기 위해, 온갖 힘든 일을 다 해내고, 심지어 저승까지 다녀오는 프시케의 숭고한 사랑이 '아이비'가 가진 힘이다. 그녀의 눈물겨운 노력에, 결국 '루시우스'도 다시 생명을 찾는다. 


공포영화지만, 한 편의 아름답고 슬픈 동화, 아니 신화를 보는 것 같았다. 사랑하는 사람을 위해 엄청난 용기를 보여준 아이비가 돋보였다. 또 한편으론, 소중한 사람을 잃어본 경험이 씁쓸하게 떠오르기도 했다. 저렇게까지 사회와 단절되어, 모든 욕망을 내려놓고 살지만서도... 결국 인생에 '비극'은 찾아오나보다. 그리고 그 비극을 이겨내는 힘은, 결국 소중한 사람을 생각하는 '사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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