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매거진 5cine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Heloise Oct 16. 2018

진짜로 일어날지도 몰라 기적

철이 든다는 건 '체념'을 알게 되는 것   

요즘 날씨가 좋아 종종 가까운 체육센터 운동장을 돌곤 한다. 매일 음악 듣기도 지겨워, 하루는 팟캐스트에서 '지대넓얕' 옛 방송을 찾아들었는데, 거기서 <진짜로 일어날지도 몰라 기적>에 대한 이야기가 나왔다. 한 패널이 영활 보고 펑펑 울었다기에 얼마나 슬프길래?  불쑥 호기심이 생겼다.



이 영화에는 아이들이 많이 나온다. 그 중심에는 형 코이치, 동생 류노스케가 있다. 코이치는 통통하니 귀엽게 생겼지만 속 깊은 아이다. 엄마와 함께 가고시마에 있는 외할머니댁에 살고 있다.


동생 류는 개구쟁이 같은 웃음에, 타코야끼를 무진장 좋아하는 철부지 꼬맹이 소년이다. 인디음악을 하는 '평생 청춘' 아빠와 함께, 정리정돈이라곤 도통 되지 않은 집에서 살고 있다.


네가 아빠를 맡아. 그러라고 아빠 옆에 보낸 거야

두 형제는 엄마 아빠의 이혼과 동시에 떨어져 살게 됐고, 형 코이치는 어떻게든 네 가족이 다시 행복하게 함께 살기를 바라고 있다. 동생에게 늘 아빠에게 여자친구가 생기진 않을지 잘 감시하라고 이른다. 코이치에게 가장 큰 소원은, 제발 가고시마에 있는 화산이 터져서 아빠와 류가 있는 집으로 돌아가 넷이 살고 싶다는 것.


그러던 어느 날, 지루한 과학 시간, 코이치는 옆 친구에게 '기적'에 대한 이야기를 듣는다.


"열차가 서로 반대편에서 달려오다가 스칠 때, 기적이 일어난대"

그거 진짜야?


그 말을 들은 코이치는 그때부터 단짝 친구 두 명과 '기적을 이룰 계획'을 세운다. 한 친구는 사서 선생님이랑 결혼하고 싶어 하고, 다른 친구는 멋진 야구선수가 되고 싶어 한다. 저마다 기적을 이룰 생각에 한껏 부푼 아이들은 자판기 아래에서 동전을 찾고, 장난감을 팔고, 수영 강습비까지 삥땅 치면서 기차비를 마련한다. 그리고 결전의 날,  할아버지에게까지 은밀한 부탁을 하며 조퇴에 성공한다.


류 또한 여배우가 꿈인 친구, 미술을 잘 그리고 싶은 친구, 빨리 뛰고 싶은 친구를 데리고 형을 만나러 간다. 이렇게 모인 여덟 명의 꼬마들은, 우연히 마음씨 좋은 마을 어르신네 집에서 하루를 보낸다.




모두가 잠든 밤, 코이치와 류는 나란히 러닝 바람으로 앉아 과자를 나눠 먹는다. 가장 좋아하는 과자 부스러기를 동생 류에게 양보하는 코이치. 옛날에는 이것 때문에 참 많이 싸웠는데....라고 말한다. 이제 과자 부스러기 정도는 동생에게 아낌없이 양보할 만큼 철이 든 코이치. 할아버지가 직접 만든 백설기 떡을 먹고, 아무 맛이 안 난다는 말에 피식 웃는 코이치가 훌쩍 다 큰 형 같다.


다음 날, 드디어 기차가 마주치는 게 보이는 높은 언덕에 오른 아이들.

드디어 기차가 마주치는 순간, 저마다 소리치며 말한다.


여배우가 되게 해 주세요!
미술을 잘 하게 해 주세요!
강아지 마블이 다시 살아나게 해 주세요!
우리 아빠가 하는 일이 다 잘되게 해 주세요...!


하지만 웬일인지, 이 '기적 프로젝트'를 진행했던 코이치만은 입을 꾹 다문다. 아무런 소원도 빌지 않는다. 화산이 폭발하길 바란다고, 네 가족이 다시 모여 살길 원한다고 목청껏 외치는 대신 가만히 기차를 응시하는 코이치. 이미 작은 소년은 이 하루의 여행을 통해 몇 뼘 더 성장했다.


여행을 마치고 돌아온 코이치는, 하늘을 가만히 응시하다 말한다.


"오늘은 재가 안 쌓이겠어"






철이 든다는 건 한편으로는 참 슬프다. 뭐든지 간절하기만 하면 진짜로 기적이 일어날 것 같은 기분을 더 이상 느낄 수 없는 것.. 세상에는 내 힘으로 절대 안 되는 일도 많다는 걸 깨닫게 되는 것. 죽었던 강아지는 다시 살아 돌아올 수 없으며, 아무리 다시 화목한 가족으로 돌아가고 싶어도 그럴 수 없다는 걸 알고 '체념'하는 것.


영화에선 눈물샘을 자극하는 그 어떤 자극적인 요소도 없지만, 나는 바로 이 부분이 참 슬펐다. 작은 소년이 철 들어가는 모습을 옆에서 가만히 구경하는 기분이었달까. 이혼으로 인한 상처, 체념과 포기를 배우며 커가는 과정.. 그 모든 게 우리네 어린 시절과 닮았고, 지금은 느낄 수 없는 그 기분을 다시 떠올리게 했다.


참 눈물이 안 날 것 같지만, 어른이라면 눈물이 날 수밖에 없는 영화. 밍밍한 듯 하지만, 진한 맛이 배어 나오는 영화였다.









매거진의 이전글 체실 비치에서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