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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Heloise Oct 10. 2018

체실 비치에서

결혼의 또 다른 이름, 인내와 이해 

아침 뉴스 특성상, 빨간 날이라도 쉬는 일은 거의 없다. 

대신, 방송이 끝나면 바로 퇴근할 수 있기 때문에, 모두가 휴일의 여유를 만끽하며 단잠을 잘 9시쯤 퇴근한다. 

이렇게 되면 하루가 꽤나 길다. 어떤 날은 피곤해서 집으로 곧장 가지만, 또 어떤 날은 괜히 어딘가 들르고 싶다. <체실 비치에서>를 본 날은, 왠지 극장에서 영화 한 편이 보고 싶은 날이었다. 

오래간만에 혼자 영화관에서 보는 영화라 조금 더 기대됐다. 

<체실 비치에서>는 책이 원작인데, 이 책의 저자인 이언 매큐언의 <어톤먼트>를 매우 감명 깊게 봤었다. 거의 내 인생에서 가장 애절한 영화 탑 쓰리 안에 들 정도의 영화였다. 그래서 이번 <체실 비치에서>도 기대를 했다. 


영화의 줄거리는 간단하다. 플로렌스와 에드워드, 두 남녀가 우연히 사랑에 빠지고, 결혼에 골인한다. 그리고 신혼여행 첫날, 호텔방에서 크게 싸우고, 그날 이후로 '님'에서 '남'이 되어 버린다는 씁쓸한 이야기다. 


신혼여행날 싸우게 된 이유는, '첫날밤' 때문이다. 둘 다 너무나 서투른 데다 꼭 무언가를 '치러야' 한다는 중압감에 질려 있는 상황이다. 서로 극도로 긴장해있으니, 즐거울 리가 없다. 특히 여자는 그 순간이 너무 고통스럽다고 느낀다. 두렵고, 겁나고, 징그럽기도 하고... 상황을 피하고 싶은 생각뿐이다. 

결국 그녀는 울면서 뛰쳐나가고, 체실 비치에서 둘은 이야기한다. 

여자는 말한다. 너를 너무 사랑하지만, 관계는 하고 싶지 않다. 나는 상관없으니, 네가 정 하고 싶다면 다른 여자랑 해도 좋다. 


남자는 폭발한다. 수치심과 모욕감을 느낀 남자는 고래고래 고함을 지르고 제정신이냐고 말한다. 결국 남자는 그녀가 있는 곳에서 반대방향으로 멀어진다. 


표면적인 원인은 '첫날밤'이다. 원인이 이것뿐이라면, 정말 말 같지도 않은 이유로 돌이킬 수 없는 강을 건너게 된 셈이다. 하지만, 영화를 쭉 보다 보면, 이 둘이 얼마나 달랐는지 알 수 있다. 중산층 부유한 집에서 자란 여자와, 정신 이상 엄마와 쌍둥이 동생, 아빠와 함께 너저분한 집에서 사는 남자. 클래식을 좋아하는 여자, 락앤롤을 너무 사랑하는 남자. 




"사랑은 서로의 궤도를 조금씩 이탈할 때 온다" 


어느 그림책에서 본 말인데, 제목이 기억 안 난다. 

남자는 대학을 수석 졸업했고, 그걸 인정받고 싶었다. 하지만 들어줄 사람이 하나도 없었다. 정신 이상 엄마를 돌보느라 지쳐버린 가족들... 가족들에게 그런 이야기를 해봤자, 마음에 여유가 없으니 귓등으로 들리지도 않는다. 결국 남자는 수석 통지서를 들고 닥치는 대로 밖으로 나간다. 


그때 만난 게 바로 여자다. 그를 처음으로 축하해 준 여자. 서로의 궤도를 조금씩 이탈해서 만났던 둘은, 열렬히 사랑했으나... 결국 궤도를 이탈한 데서 오는 차이를 넘지 못했다. 둘은 너무 달랐고, 결혼이라는 것은 끝없는 밸와 인내가 필요하다는 사실을 알기엔 너무 어렸다. 


결국 서로를 평생 가슴에 묻은 채, 남남으로 살아간 둘. 

영화 마지막 장면에서, 노년의 여자가 꿈에 그리던 무대에 올라 공연을 하는 장면이 나온다. 남자는 용기를 내서 그녀를 보러 오고, 연주가 끝나자 가장 크게 박수를 치며 '브라보!'라고 외친다. 




뻔한 결말이라고 생각했지만, 이상하게 이 장면은 참 슬펐다. 두 배우의 섬세한 연기 때문인지, 상투적인 내용이지만 그렇게 슬플 수가 없었다. 


사랑을 하면서, 가장 가슴 아픈 사랑이라고 한다면... 

나는 '후회가 남는 사랑'이라고 생각한다. 후회는 끝도 없는 미련을 낳는다. 

내가 그때 좀 더 잘했더라면, 그때 이해했더라면, 그때 다른 선택을 했더라면. 끝없는 물음표를 만들고, 조금씩 아물어 갈 상처에 딱지를 계속 떼게 된다. 


이 둘이 헤어진 지난 세월, 얼마나 많은 후회의 눈물을 흘렸을까. 

그러나 돌이키기엔 이미 늦어버린.. 절대 돌이킬 수 없다는 데서 오는 절망감. 끔찍하다. 


영화를 본 직후에는 괜히 기분도 찝찝하고, '별로'라는 생각이 들었는데, 희한하게 시간이 지나면 지날수록 곱씹어보게 되는 영화다. 여운이 은근히 길다. 서로 조금만 더 '이해' 했더라면 어땠을까? 역시 불변의 진리, 사랑은 타이밍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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