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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Heloise Jan 23. 2019

필경사 바틀비

실소를 터트리며 읽다가, 마지막 장을 넘기면 생기는 '물음표'

첫 책 모임을 앞두고, 내가 해치워야 할 책은 <필경사 바틀비>라는 책이었다. 얇은 두께 덕에 내심 안도했던 게, 이 책에 대한 솔직한 첫인상이었다. 가벼운 마음으로 읽었고, 날카로운 캐릭터 묘사에 몇 번씩 실소를 터트렸다. 하지만 막상 책을 덮고 나자, 내용이 그렇게 가볍지만은 않단 생각이 들었다. 책 초반, 뜬금없이 "하지 않는 편을 택하겠습니다"라고 얘기하는 바틀비를 보고, '거절'에 대한 메시지를 전하는 인물이라 생각했다. '그래, 나도 한 번 대놓고 거절해보자' 라며 나름의 교훈을 찾았다. 그런데... 조금 더 읽다 보니 생각이 바뀐다. 도대체 바틀비가 거절하는 이유가 뭐지? 머릿속에 물음표가 둥둥 떠다니기 시작한다. 바틀비 이야기를 전하는 화자도 나와 같은 마음이다. 끊임없이 그 이유를 탐색하다, 바틀비가 과거 '죽은 편지'를 배달하는 우체부 노릇을 했으며, 그로 인해 '이 지경' 이 되었다고 나름의 결론을 내린다. 사실 잘 모르겠다. 바틀비가 꾸준히 하지 않겠다고 말하는 이유가, 정말 그것 때문일까? 


출처_네이버 이미지 검색


책을 읽는 내내, 월스트리트 사무실의 잿빛 벽과 무료한 분위기가 느껴졌다. 게다가 바틀비를 포함해 묘사되는 인물의 직업은 '필경사'다. 끊임없이 반복해서 글을 베껴 쓰는, 단순노동으로 하루를 채우는 일이다. 상상만 해도 지겹고 숨이 막힌다. 사실 나 또한 직장에서 '필경사'와 같은 역할을 하고 있는지도 모른다. 내가 아니어도 언제나 대체할 수 있는 '소모품'이라는 생각을 하게 될 때가 있다. 일상이 쳇바퀴 같다. 하지만 그만둘 수는 없다. 자본주의 사회에서는 일한 만큼 돈을 벌고, 돈을 벌어야 내 삶을 영위할 수 있으니까.. 성실한 척 가면을 쓰고 있긴 하지만, 때로는 참을 수 없을 정도로 지루한 나머지, 바틀비처럼 '하지 않는 편을 택하겠다'라고 말하고 싶기도 하다. 



바틀비도 처음부터 거절하진 않았다. 누구보다 성실하게 베껴쓰기를 했으나, 뜬금없이 원문과 대조해보자는 화자의 말에서부터 거절 의사를 표시했다. 어느 순간, 내가 이렇게 살아서 뭐하나 싶은 생각이 스친 건 아닐까? 아니면, 마치 기계가 고장 나는 것처럼 갑자기 뇌에서 오류가 난 건? 단지 남들은 생각만 하고 꺼내지 않는 그 말을 한번 꺼내기 시작함으로써 걷잡을 수 없게 돼버린 건 아닐까? 아무튼 확실한 건, 바틀비가 일하던, 마천루가 빽빽한 월가의 그곳이나, 지금 내가 발버둥 치고 있는 이곳이나 살기 참 팍팍하단 건 매한가지라는 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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