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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Heloise Aug 11. 2019

오래간만에 볼 드라마가 생겼다!

이병헌 감독의 드라마 연출작 '멜로가 체질'


요즘 부쩍 방구석에 누워 티브이를 보는 일이 잦아졌다. 이렇게 브런치에 괴발새발이라도 글을 끄적이지 않은지 한참이다. 인생 최대의 관심사가 새롭게 생겨서 그런 걸 수도 있겠으나, 어쨌든 이렇게 한참 동안 아무것도 않다 보면, 나라는 인간은 묘한 불안감에 휩싸인다. 남들이 잘 보지도 않는 누추한 블로그라지만 그래도 뭔가를 써낸 다는 것 자체가 내게는 이상한 위안이 되는데. 뭐 암튼, 정말 티브이만 보며 공기를 축내던 와중에 내 눈에 확 띄는 드라마를 발견했다. 나라는 인간... 드라마 써보겠다고 나름 수업도 꼬박꼬박 듣는 사람이지만, 여태껏 살면서 본방사수를 하며 본 드라마는 손에 꼽힌다. 근데 이 드라마, 예고편부터 나를 사로잡더니 2화를 보고는 '내 마음속에 저-장' 해, 아니 되어버렸다. 그래서, 그 '기념'으로. 오래간만에 브런치에 글을 끄적여 본다.


내가 이 드라마에 꽂힌 이유?

# 이제 드디어, 90년대생에게 공감되는 '서른 살' 이야기가 나왔다

친구들 만나면 항상 하는 이야기가 있다. "야 나는 서른 되면 차도 있고, 집도 있어서 사람 구실하고 살 줄 알았다?" 대답은 항상 정해져 있다. "... 말해 뭐해?" 현실은 빠듯한 월세살이에 언제 밥그릇 빼앗길지 몰라 전전긍긍하는 어른 아이인 것을. 이 드라마 속 주인공 삼인방도 비슷하다. 아, 물론 이 중 한 명은 어린 나이에 성공해 50평대 아파트의 실소유주지만... 뭐 그건 캐릭터를 살리기 위한 설정이라 치고. 뭐 어쨌든 우당탕탕, 좌충우돌, 일에서도 치이고. 사랑에 제대로 실패도 겪어봤고. 서른의 커리어우먼 이미지는 1도 찾아볼 수 없다. 그래서 좋다. 그래, 서른에도 이러고 있는 내가 이상한 게 아니었어라는 묘한 위안. 왠지 이 드라마를 볼 때는 아무 생각 없이 맥주 한 캔 하면서, 깔깔거리며 보게 될 것만 같다. 이 묘한 위안을 안주로 삼아서.


# 살아있는 캐릭터

세 캐릭터 모두 약간은 특이하다. 한 명은 싱글맘, 한 명은 다큐멘터리 감독, 또 한 명은 드라마 작가 지망생(현재 보조작가). 이 중에서도 가장 몰입이 되는 건 천우희가 맡은 드라마 작가 지망생 캐릭터. 나이도, 꿈도, 하는 짓도 비슷해서 괜히 정이 간달까. 실제로 내 친구가 등장인물 소개를 읽더니 이거 네 얘기 아니냐며 캡처까지 보내줬다.


특히 천우희의 연기가 이 캐릭터를 더 돋보이게 해 준다. 앞으로 이 캐릭터가 어떤 역경을 이겨내고, 어떤 사람으로 성장할지 벌써부터 기대된다. 특히 안재홍과의 러브 라인! 하, 이 얼마나 신선하면서도 기대되는 조합인지. 일단 캐릭터의 매력에 사로잡혔기 때문에 웬만큼 말도 안 되는 스토리로 흘러가지 않는 이상은 하차할 일은 없을 것 같다. 적당~히 미친놈, 적당~히 일반적! 내가 가장 좋아하는 캐릭터다.


#대사, 내레이션 찰떡

이병헌 감독의 스물, 극한직업 모두 재밌게 본 1인으로서 그의 대사는 정말 기가 막히게 웃기다는 생각을 많이 했다. 그런데 드라마에서도 이 장점이 고스란히 발휘되다니 한편으론 참 질투가 났다. 내가 웃기려는 부분에 사람들이 실제로 웃어줄 수 있다는 것도 엄청난 복이고 재주다. 이 드라마에는 천우희의 내레이션이 많이 나오는데, 정말 그 대사 하나하나가 주옥같다. 뭔가 시니컬하면서도 결국엔 풉, 푸하하하 웃게 만드는 내레이션. 그렇다고 해서 깊이가 없는 것도 아니다.


대사 또한 마찬가지. 2화에서 박장대소한 부분이 있다. 안재홍이 작가를 불러다 놓고, 작가님 작품 안 하겠다고 하니, 자존심이 상한 작가가 막 쏘아대는 부분이었다. 작가가 "내가 충고 하나 할게"라고 말하자마자 안재홍이 귀를 막으며 고개를 도리질한다. "아, 안 들려, 충고 안 들어~~~ 나 충고 안 들어~~~~~~"


진짜 배가 찢어지라 웃었다. 저 대사를 천연덕스럽게 소화하는 안재홍도 대단하고, 적재적소에 잘 살리는 연출과 작가도 참 대단하다 싶었다. 뭐 사실 하나 꼽기도 민망할 정도로 모든 부분들이 재밌다. 그 와중에 괜히 눈물 나게 만드는 아련한 에피소드도 녹아 있고.



-뭔 지분 더 주겠다는 사람 표정이 그렇게 설레요?
-원래 돈은 설레는 거잖아요
-근데 돈보다 더 설레는 게 있어요
-뭐요?
-있어요 그런 게. 우리, 잘해봐요.



이렇게 아름답게 고백을 해놓고... 세상 다 가진 듯 행복하게 사랑해놓고.

내가 생각하는 이 드라마 최대의 벤츠남! 홍대는 환영 속으로 사라져 버린다.

서로 너무 애틋하게 사랑하는 모습을 보여주다가 갑자기 저 모습을 보여주다니, 너무한 거 아닙니까. 개인적으로 가장 아련하고 슬프다고 생각하는 에피소드.





어쨌든 이 드라마, 이대로만 가면 내 최애 드라마에 리스트를 올릴 수 있을 것만 같다! 이제 금요일 토요일 오후 10시 50분에는 알람 맞춰놓고 본방사수다. 나와 동년배 (정확히 말하면 한 살 위지만 뭐 도긴개긴!)인 이 세 여자들의 아름다운 인생을 응원하며! 그리고 더불어 나의 인생도 두 배로 응원하며! 또 재방송 한번 더 보러 가야겠다.



-이제 겨우 서른인데 감성 타고 과거에 집중하지 말자. 귀찮아. 마흔에 할래.
 우리 지금의 위기에 집중하자.
-뭐?
-라면 먹고 싶어.


아, 그녀들과 함께 라면을 먹고싶다. '별 거 아닌 어느 밤에'




https://youtu.be/kdUe1xZh9N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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