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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거진 쓰는 삶

오래간만에 볼 드라마가 생겼다!

이병헌 감독의 드라마 연출작 '멜로가 체질'

by Heloise


요즘 부쩍 방구석에 누워 티브이를 보는 일이 잦아졌다. 이렇게 브런치에 괴발새발이라도 글을 끄적이지 않은지 한참이다. 인생 최대의 관심사가 새롭게 생겨서 그런 걸 수도 있겠으나, 어쨌든 이렇게 한참 동안 아무것도 않다 보면, 나라는 인간은 묘한 불안감에 휩싸인다. 남들이 잘 보지도 않는 누추한 블로그라지만 그래도 뭔가를 써낸 다는 것 자체가 내게는 이상한 위안이 되는데. 뭐 암튼, 정말 티브이만 보며 공기를 축내던 와중에 내 눈에 확 띄는 드라마를 발견했다. 나라는 인간... 드라마 써보겠다고 나름 수업도 꼬박꼬박 듣는 사람이지만, 여태껏 살면서 본방사수를 하며 본 드라마는 손에 꼽힌다. 근데 이 드라마, 예고편부터 나를 사로잡더니 2화를 보고는 '내 마음속에 저-장' 해, 아니 되어버렸다. 그래서, 그 '기념'으로. 오래간만에 브런치에 글을 끄적여 본다.


내가 이 드라마에 꽂힌 이유?

# 이제 드디어, 90년대생에게 공감되는 '서른 살' 이야기가 나왔다

친구들 만나면 항상 하는 이야기가 있다. "야 나는 서른 되면 차도 있고, 집도 있어서 사람 구실하고 살 줄 알았다?" 대답은 항상 정해져 있다. "... 말해 뭐해?" 현실은 빠듯한 월세살이에 언제 밥그릇 빼앗길지 몰라 전전긍긍하는 어른 아이인 것을. 이 드라마 속 주인공 삼인방도 비슷하다. 아, 물론 이 중 한 명은 어린 나이에 성공해 50평대 아파트의 실소유주지만... 뭐 그건 캐릭터를 살리기 위한 설정이라 치고. 뭐 어쨌든 우당탕탕, 좌충우돌, 일에서도 치이고. 사랑에 제대로 실패도 겪어봤고. 서른의 커리어우먼 이미지는 1도 찾아볼 수 없다. 그래서 좋다. 그래, 서른에도 이러고 있는 내가 이상한 게 아니었어라는 묘한 위안. 왠지 이 드라마를 볼 때는 아무 생각 없이 맥주 한 캔 하면서, 깔깔거리며 보게 될 것만 같다. 이 묘한 위안을 안주로 삼아서.


# 살아있는 캐릭터

세 캐릭터 모두 약간은 특이하다. 한 명은 싱글맘, 한 명은 다큐멘터리 감독, 또 한 명은 드라마 작가 지망생(현재 보조작가). 이 중에서도 가장 몰입이 되는 건 천우희가 맡은 드라마 작가 지망생 캐릭터. 나이도, 꿈도, 하는 짓도 비슷해서 괜히 정이 간달까. 실제로 내 친구가 등장인물 소개를 읽더니 이거 네 얘기 아니냐며 캡처까지 보내줬다.


특히 천우희의 연기가 이 캐릭터를 더 돋보이게 해 준다. 앞으로 이 캐릭터가 어떤 역경을 이겨내고, 어떤 사람으로 성장할지 벌써부터 기대된다. 특히 안재홍과의 러브 라인! 하, 이 얼마나 신선하면서도 기대되는 조합인지. 일단 캐릭터의 매력에 사로잡혔기 때문에 웬만큼 말도 안 되는 스토리로 흘러가지 않는 이상은 하차할 일은 없을 것 같다. 적당~히 미친놈, 적당~히 일반적! 내가 가장 좋아하는 캐릭터다.


#대사, 내레이션 찰떡

이병헌 감독의 스물, 극한직업 모두 재밌게 본 1인으로서 그의 대사는 정말 기가 막히게 웃기다는 생각을 많이 했다. 그런데 드라마에서도 이 장점이 고스란히 발휘되다니 한편으론 참 질투가 났다. 내가 웃기려는 부분에 사람들이 실제로 웃어줄 수 있다는 것도 엄청난 복이고 재주다. 이 드라마에는 천우희의 내레이션이 많이 나오는데, 정말 그 대사 하나하나가 주옥같다. 뭔가 시니컬하면서도 결국엔 풉, 푸하하하 웃게 만드는 내레이션. 그렇다고 해서 깊이가 없는 것도 아니다.


대사 또한 마찬가지. 2화에서 박장대소한 부분이 있다. 안재홍이 작가를 불러다 놓고, 작가님 작품 안 하겠다고 하니, 자존심이 상한 작가가 막 쏘아대는 부분이었다. 작가가 "내가 충고 하나 할게"라고 말하자마자 안재홍이 귀를 막으며 고개를 도리질한다. "아, 안 들려, 충고 안 들어~~~ 나 충고 안 들어~~~~~~"


진짜 배가 찢어지라 웃었다. 저 대사를 천연덕스럽게 소화하는 안재홍도 대단하고, 적재적소에 잘 살리는 연출과 작가도 참 대단하다 싶었다. 뭐 사실 하나 꼽기도 민망할 정도로 모든 부분들이 재밌다. 그 와중에 괜히 눈물 나게 만드는 아련한 에피소드도 녹아 있고.



-뭔 지분 더 주겠다는 사람 표정이 그렇게 설레요?
-원래 돈은 설레는 거잖아요
-근데 돈보다 더 설레는 게 있어요
-뭐요?
-있어요 그런 게. 우리, 잘해봐요.



이렇게 아름답게 고백을 해놓고... 세상 다 가진 듯 행복하게 사랑해놓고.

내가 생각하는 이 드라마 최대의 벤츠남! 홍대는 환영 속으로 사라져 버린다.

서로 너무 애틋하게 사랑하는 모습을 보여주다가 갑자기 저 모습을 보여주다니, 너무한 거 아닙니까. 개인적으로 가장 아련하고 슬프다고 생각하는 에피소드.





어쨌든 이 드라마, 이대로만 가면 내 최애 드라마에 리스트를 올릴 수 있을 것만 같다! 이제 금요일 토요일 오후 10시 50분에는 알람 맞춰놓고 본방사수다. 나와 동년배 (정확히 말하면 한 살 위지만 뭐 도긴개긴!)인 이 세 여자들의 아름다운 인생을 응원하며! 그리고 더불어 나의 인생도 두 배로 응원하며! 또 재방송 한번 더 보러 가야겠다.



-이제 겨우 서른인데 감성 타고 과거에 집중하지 말자. 귀찮아. 마흔에 할래.
우리 지금의 위기에 집중하자.
-뭐?
-라면 먹고 싶어.


아, 그녀들과 함께 라면을 먹고싶다. '별 거 아닌 어느 밤에'




https://youtu.be/kdUe1xZh9N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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