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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Heloise Oct 03. 2019

나의 첫 드라마 보조작가 면접 후기

뜻밖의 연락에 설레었고 잠시나마 뿌듯했다

한국방송작가협회 교육원 홈페이지가 새롭게 리뉴얼됐다. 여느 때처럼 월급 루팡을 하며 빈둥거리던 나, 뜬금없이 취업게시판이나 볼까 하고 들어갔다가 눈에 띄는 공고를 발견했다. 보통 보조작가 면접은 작가의 이름을 명시해 놓지 않은 경우가 많은데, 척 보기에도 네임드인 작가님의 이름과, 기간이 적혀 있었다. 


나의 몇 안 되는 장점 중 하나, 막무가내로 밀어붙이기. 공고를 보는 순간 삘이 꽂혔고 그대로 자기소개서와 지원서를 첨부해 발송까지 완료. 우선은 내 첫 보조작가 지원이라는 데에 심장이 뛰었고, 두 번째로는 평소 굉장히 좋아하던 작가님의 공고라는 점에서 기분 좋은 긴장감을 느꼈다. 


지원서를 낸 직후, 나는 태풍을 무릅쓰고 여수와 순천에 휴가를 다녀왔다. 구경하고, 비 맞고, 자느라 정신이 없었으며, 내 지원서는 화요일에 보냈지만 연락이 없었기에 '그럼 그렇지. 뭘 바랬어, 요행이야 요행.' 이라며 슬픈 자기 합리화를 하던 와중, 서울로 돌아오던 KTX 안에서 연락을 받았다.  


면접은 바로 이틀 후이자, 내가 휴가를 끝내고 일상으로 복귀하는 날에 잡혔다. 도대체 무얼 준비해야 할지 감이 잡히지 않았다. 그래도 작가님이 여태까지 했던 드라마도 다시 복기해보고, 나에게 이런 질문을 하겠지 하는 예상 질문도 머릿속으로 조금 생각했다. 




그리고 대망의 면접일, 대기실에서 기다리다 들어갔더니 정말 TV로만 보던 작가님이 눈 앞에 앉아 계셨다. 뜨악! 심장이 터질 것 같이 뛰겠다고 생각했지만, 작가님이 워낙 소탈하게 대화하듯 이야기해주신 덕분에 마음이 편안했다. 


작가님은 날카로운 질문보다는, 이 사람이 어떤 사람인지, 성격은 어떤지 등을 보려고 하신 것 같다. 수다를 떨 듯 이야기를 이어가셨고 그 속에서 나라는 사람을 파악하시려는 듯했다. 가장 좋아하는 드라마 장르라던지, 왜 드라마 작가가 되고 싶은지는 당연히 물어보셨고, 그 외로 음주를 좋아하는지, 스트레스는 어떻게 푸는지 등 일상적이지만 절대 무시할 수 없는, 취향과 성격에 관련된 부분도 많이 물어보셨다. 




나름 면접을 잘 보았다고 생각했다. 분위기가 좋았기 때문에 내심 기대도 했다. 하지만 아쉽게도 이틀 뒤 불합격 문자를 받았고, 함께 대기하던 친구 중 한 명이 행운의 주인공이 됐다는 소식을 들었다. 인생을 참 열심히, 멋지게 사는 친구였기에 그녀의 창창한 앞날을 기원하며 마음을 내려놓았다. 


이렇게 나의 첫 보조작가 면접은, 비록 약간은 아쉬운 결말이었으나 많은 것들을 남기며 막을 내렸다. 한동안 무기력과 반복되는 일상에 지쳤다는 '핑계'로, 글도 안 쓰고 책도 안 읽었다. 심지어 영화도 안 보고, 유일하게 하는 게 왓챠 플레이로 '킬링 이브' 보는 정도였다. 그런 일상에 나름 큰 파장을 일으켜 주었다. 기분 좋은 충격을 안겨 주었다. 이것 하나 만으로도 충분한 가치가 있다. 


역시,,, 나라는 인간, 무언가 자극이 있고 강제성이 있어야만 움직인다. 제발 이번에 받은 충격이 좀 오래가서, 엉덩이 붙이고 진득-하게 무언가 써 내려갈 수 있길! 


영화 <루비 스팍스> 중 한 장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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