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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Heloise Oct 26. 2019

버티기와 '버리기' 사이

밥벌이를 잃는다는 것에 대한 두려움과 이별하기 


영화 <루비스팍스> 중 한 장면_ 출처:네이버 블로그 


“내가 생각해봤는데 말이야, 하는 일에 비해서 페이가 너무 많은 것 같아. 그렇게 생각하지 않아? “      


아무도 없는 빈 회의실, 모나미 펜을 신경질적으로 툭, 툭 튕기는 소리와 함께, 나는 그 자리에서 듣지 말았어야 할 소리를 듣고 말았다.  내가 하는 일에 비해서 너무 많은 돈을 가져간다. 바꿔 말하면, 그깟 20분짜리 원고를 쓰는 게 뭐 대단한 일이냐는 일종의 ‘공격’이었다. 순간 팀장의 서늘한 표정 뒤로, 미세먼지 하나 없이 맑고 높은 하늘이 눈에 들어왔다.      


‘개소리를 듣기엔, 너무 화창한 날씨다...’      


뜻밖의 공격에 정신이 아득해진 그 무렵, 쐐기를 박는 한 마디가 그의 입에서 튀어나왔다.      


“그래서 말이야, 고료를 줄여야겠어.”      


순간, 화창한 날씨는 온데간데없고 폼페이 최후의 날이 내 머릿속에 펼쳐진다. 내 머리의 뚜껑이 열리고, 격한 경상도 사투리가 섞인, 지성인이라면 회사에서 절대 내뱉지 말아야 할 욕설과, 뜨거운 울분, 이마에는 내 천자가 마그마처럼 울푹 솟았다.  당신이 뭔데 남의 일을, 남의 밥벌이를 그렇게 평가하냐고. 그렇게 쉬우면 당신이 쓰지 그랬냐며 패악을 부리고 싶었다. 그러나 나는 참았다. 내가 착해서? 팀장으로서의 그의 면모를 조금이나마 존경하고 있어서? 아니면 내가 하는 일보다 페이를 더 많이 받는다고 생각해서?      


나는 비참하게도 그 순간, 나름 안정적이던 이 프로그램을 당장 때려치웠을 때의 손실을 계산하고 있었다. 지금 당장 그만둘 경우, 수중에는 겨우 100만 원 남짓이 있을 거고, 월세를 한번 내고 남은 돈으로 한 달을 근근이 버티기에도 모자라다.  그렇다면 나는? 일단 억지로 그 말을 참아내야 했다. 자존심을 안고 한껏 웅크려야 했다. 그렇다. 나는 ‘버티는 것’을 선택했다. 그래도 한 마디는 해야겠다 싶어 최대한 일그러진 표정을 숨긴 채 말을 꺼냈다.      


“그래도, 자료조사랑 원고 구성, 섭외까지 다 하는데요. 원래 받던 고료를 줄인다는 게...” 

“내 생각엔 말이야, 솔 작가가 너무 글을 못 써.”      


내 말이 채 끝나기도 전에 들어온 두 번째 공격. 뜬금없는 어퍼컷에 또 한 번 정신이 아득해질 무렵, 솔 작가가 사람 좋은 미소를 띠며 회의실 안으로 걸어 들어온다. 우리 팀의 막내작가이자, 나와 함께 20분짜리 원고를 격주로 맡아 진행하는 친구다. 그러다 내 표정을 보더니 멈칫하고 눈치를 살핀다. 그 이후로는 팀장의 신경질적인 목소리와 유난히 선명한 창 밖 하늘의 모습만 기억난다.      




정신을 차리고 솔 작가와 함께 이야기해 본 결과, 요점은 명확했다. 막내작가가 생각만큼 글을 못 쓰니, 페이를 줄이겠다. 둘이서 한 회씩 나눠서 쓰던 걸 한 명이 맡고, 두 번치의 페이를 가져가면 오히려 원래 페이보다 더 많은 셈이 아니겠느냐. 정말 다시 생각해도 무릎을 탁 치게 만드는 개소리였다. 엄마가 맨날 내게 하는 말이, 남의 주머니에서 돈 타 먹는 일이 제일 치사하고 더러운 일이라고 했는데, 역시 어른들 말 틀린 게 하나 없구나. 고료가 고작 얼마나 된다고, 이걸 깎겠다고 엄포를 놓는 그의 모습이 참으로 어이없었고, 그 소리를 온몸으로 받아낸 채 아무 말도 하지 못한 나 스스로도 참으로 웃겼다.      


그대로 집으로 돌아온 나는 밤을 꼬박 새웠다. 충혈된 눈으로 내 작은 방을 둘러보았다. 빼곡히 걸린 옷가지들과 유난히 더 휑한 내 방이 보였다. 7평짜리 방에 꼬박 들어가는 월세와, 내 나름의 품위유지비,,, 과연 이것들을 위해 내 자존심을 굽힐 수 있을 것인가. 몇 분 뒤 결론이 났다. ‘그래, 버티지 말자. 몸 상하고 맘 상한다.’      

      



다음 날, 나는 출근하자마자 팀장이 있는 4층으로 올라갔다.      


“팀장님, 제가 곰곰이 생각해봤는데요. 저 이제 못할 것 같아요. 그만두겠습니다.”      


뜻밖의 이야기에 놀라 휘둥그레지는 팀장의 눈동자에서 나는 작은 희열을 느꼈다.      


“아니 그걸 그렇게 받아들일 게 아니라...” 

“아무리 생각해도요. 제가 그래도 여기서 2년을 넘게 일했는데, 원래 받던 페이를 올리진 못할망정 깎는다는 게 이해가 안 돼서요. (너무 이해가 안 돼서 몸이 막 여기저기 쑤시고 아파요.)”      


역시 방귀나 화나 트는 건 똑같다. 한번 트인 입이 좀체 다물어지질 않았다. 나는 세상에서 가장 논리적인 사람인 척, 조목조목 부당하다는 의견을 냈고, 그는 나에게 “여기서 그만두면 이 회사로 다시 올 일은 없을 거야 ”라는 말까지 덧붙였다.      


“네, 저도 여기에 다시 올 일은 없을 것 같네요.”      


그 길로 짐을 쌌다..라고 쓰고 싶지만, 도의적으로 후임이 구해질 때까지는 철면피로 일관하며 일을 했다. 부당한 건 부당한 거고, 일은 일이니까. 그 전에는 그렇게 불안하고, 놓치기 싫었던 이 자리, 그저 버티고 싶던 이 자리를 버리길 참 잘했다는 생각이 들었다. 무언가 한 단계 성장한 것만 같았다. 머저리 같은 말을 듣고 참느니, 때로는 버리는 것도 방법이라는 걸 이제야 깨달은 게 아쉬울 지경이었다.      




버티기와 버리기는 한 끝 차이다. 어떤 상황에서는 정말 ‘존버는 승리한다’가 될 수도 있지만, 정말 못 참겠다 싶은 상황에서의 버티기는 나 스스로를 힘들게 할 뿐이란 걸, 나는 그곳에서 배웠다. <내 인생 최고의 개소리 베스트 3> 안에 들 말이었고, 지금 생각해도 실소가 터지지만 어쨌든, 이십 대 중반의 나는 잘 몰랐었던, ‘버리는 방법’을 그 안에서 터득한 것이다.      


그로부터 3년이 지났다. 이제는 그때의 경험이 그저 감사해질 정도의 시간이 흘렀다. 

여전히 나는 버티기와 버리기 사이에서 고군분투 중이다. 하루에도 열댓 번씩 두 선택지 사이에서 딜레마에 빠진다. 그러나 한 가지는 확실하다. 그 날의 버리기 이후로, 나는 좀 더 현명하게 버릴 수 있는 사람이 됐다는 것. 그리고 새로운 인생의 모토도 생겼다. 


"아무쪼록, 잘 버리면서 살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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