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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Heloise Nov 03. 2019

압박감이 나를 누를 때

나를 괴롭히는 '바위'와 이별하기 

꽤 오랜 시간, 나의 아침 일과는 다이어리에 계획을 쓰는 것이었다. 돌이켜보면 내 삶에서 몇 안 되는 ‘꾸준히 해오던 일’ 중 하나였던 것 같다. 어릴 때는 '명지와 놀이터 접선' 이라던지, '다빈이 생일파티_궁전 노래방' 따위를 적었다. 엄마 서랍 속에 들어 있던 검은색 PD수첩을 몰래 가져다가 나만의 일정을 쓸 때면 꼭 뭐라도 된 것 같았다.  



점점 나이가 찰수록 내용이 바뀌었다. 나는 매년 마음에 드는 색의 다이어리를 골랐고, 혹시 날짜를 밀려 쓰거나 글자를 잘못 쓰지 않을까 노심초사했다. 그리고는 ‘꼭 해야만 한다’고 생각하는 일들을 적었다.      


영단어 외우기 (1/2 완수) 

정석 풀기 ( 10페이지까지만 함 ㅠ.ㅠ) 

줄넘기 100개 (겨우 다 함)      


이를테면 정석 20페이지 풀기, 오전 10시부터 12시까지 영단어 외우기 같은 것들이었다. 내가 해야 한다고 생각하는 것뿐만 아니라, 남이 봤을 때 그럴듯한 것들. 선생님이나 부모님이 보면 좋아할 것 같은 일들. 문제는, 그렇다고 해서 이것들을 다 지켜내지는 못한다는 것이었다. 나는 나만의 기준을 세워, 모든 완성도를 ‘숫자’로 표시했다. 왠지 이런 것들을 써야만 내 하루가 온전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정말 아주 가끔, 모든 걸 해내고 10점 만점을 매길 때, 그 순간만큼은 나 자신이 사랑스러웠다. 하지만 그렇지 않은 날이 더 많았다. 그럴 때는 불안했고, 아무것도 한 것 없이 허송세월을 보냈다는 생각이 들었다.      


시시포스_네이버 이미지 검색

문제는, 이 모든 행위가 오히려 나에게 스트레스를 주고 있다는 것이었다. 나는 마치 매일 바위를 굴려 올리는 시시포스처럼, 스스로에게 감당하지 못할 형벌을 내렸다. 나는 매일 허공에서 부서지는 계획을 세우고, 지켜내지 못했다는 죄책감과 자기혐오로 내 하루를 미워했다. 아니 어쩌면, 나를 미워하기 위해 계획을 세우는 건 아닐까 싶을 정도였다.       


"꾸준하지 못하고, 늘 계획만 세우는 '불성실 주의자'"


나에게 실망하고, 미워하는 일이 하루 일과가 되었을 때 즈음, 나는 스스로에게 형편없는 점수를 매겼다. 꾸준하지 못하고, 늘 계획만 세우는 ‘불성실 주의자’. 이것이 내가 스스로에게 붙인 꼬리표였다. 어느새 나는, 나 자신에게까지 점수를 매기며 스스로를 몰아붙이는, 쉴 줄 모르는 바보가 돼 있었다.      




그러던 어느 날이었다. 엄마와 4박 5일간의 동남아 휴가를 즐기고 한국으로 돌아가는 날이었다. 밤 비행기 특유의 정적이 감돌았고, 눈앞에 선 승무원들이 저마다 짐칸을 체크하는 모습이 보였다. 피곤함에 압도돼 늘어져 있던 내게 이상한 신호가 울린 것은 그때였다. 짐칸이 탁 하고 닫히는 소리가 들리자마자 귀에서 이명 소리가 들렸다. 심장이 쿵쿵 뛰기 시작했고, 누군가 내 목을 조르는 듯한 느낌이 들었다. 왠지 여기서 ‘탈출’ 하지 못하면 죽을 것 같다는 불안감이 강하게 나를 덮쳤고, 그 순간 비행기는 이륙했다. 

     

지옥의 비행이었다. 모두가 고요히 잠을 청했고, 옆에 있던 엄마도 얼마 안 가 아기처럼 새근새근 잠이 들었다. 외로운 싸움이었다. 눈앞에 있는 책자를 닥치는 대로 꺼내, 오키나와 따위의 섬 이름이 적힌 지도를 읊으며 시간이 가기만을 기다렸다. 쿵쿵 뛰는 심장과 식은땀은 얼마 안 가 가라앉았지만, 혹시 또 이상한 질식감이 덮쳐올지도 모른다는 생각에, 여덟 시간의 비행을 시뻘건 눈으로 버텼다.      




그날 이후 난생처음으로 병원엘 갔고, 이것저것 검사를 거친 결과 나는 공황장애라는 진단을 받았다.      


“성격적으로도 영향이 있을 수 있어요. 본인 스스로 완벽주의가 좀 있다고 생각하세요?”      

“아니요. 딱히 그렇진 않은 것 같은데...”      


집에 돌아온 나는, 내 오랜 친구인 명지에게 전화를 걸어, 아무 일도 아닌데 호들갑이라는 듯 수다를 떨었다.      


“몰라 그렇대. 근데 요즘 세상에 이런 거 하나 없는 사람 어딨겠어. 

아마 너도 가면 증상 나올걸? “      


별 시답지 않다는 듯, 무던하게 통화를 하고, 샤워를 하고 나왔다. 괜히 병원에 가서 뻔한 소리를 들은 것 같았다. 그저 다음번 비행기를 탈 때는 이런 불상사가 일어나지 않았으면 좋겠다는 생각만 들뿐이었다. 커피 한 잔을 마시면서, 문득 다음 주 병원 방문 일정을 적어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리고 다이어리를 펼쳤다. 그 순간 내 눈에 들어온 것이 있었다. 병원에 가느라 완수하지 못한 나의 ‘To Do list'였다.  

    

마음이 쿵 하고 내려앉았다. 다이어리를 맨 앞장서부터 다시 천천히 훑어보았다. 수많은 계획들과, 내가 매긴 점수들이 빼곡했다. 한 장, 한 장 넘길수록 ‘자중하자’, ‘정신 차리자’ 따위의 말들이 자주 보였다. 남한테는 싫은 소리 한번 못하면서, 스스로를 이렇게 엄하게 다그치는 내 모습이 ‘놀라웠다’. 다이어리를 덮고, 침대 맡 스탠드를 껐다. 그 길로 이불속에 들어가 웅크리고 펑펑 울었다. 너무 울어서 머리가 지끈거렸다. 




그날의 눈물은, 나 자신에 대한 ‘섭섭함’과 ‘미안함’ 때문이었다. 왜 그토록 스스로를 못살게 굴었을까. 늘 채찍질을 했고, 성취에 따라 나 스스로를 사랑할지 말지를 결정했다. 내가 아무것도 하지 않는다고 해서, 누군가가 나를 미워할까. 내가 아무것도 안 하고 쉰다고 해서, 나는 잘못된 인간일까. 만약 내 친구가 나에게 이런 고민을 털어놓았다면, 단연코 잘못된 생각이라고 했을 그 행동을, 내가 나한테 하고 있었다. 마음이 아팠다. 나를 짓누르던 바위를 스스로 만들어냈다는 사실이, 스스로에게 너무나 미안했다. 나는 나를 사랑할 줄 모르는 사람이었다.      


그날 이후로 나는 나만의 형벌을 쓰레기통에 버렸다. 현대판 시시포스를 때려치우기로 마음먹었다. ‘정신적 노가다’에서 해방되기 위해, 아무것도 쓰지 않았다. 꼭 목표 달성을 해야 제대로 된 인간이라는 생각을 버리려고 노력했다. 대신, 아무것도 하지 않아도 나 자체로 사랑받기 충분한 사람이라는 생각을 가지려고 노력했다. 나 자신을 있는 그대로 사랑하려고 마음먹었다.      




이제 매 해 나와 함께했던 다이어리와 작별을 고하기로 했다. 그간 나의 수많은 형벌이 적혀있던, 나만의 바위. 나는 그것을 내려놓기로 했다. 가뜩이나 남들로부터 강요받고. 수도 없이 재단당하는 인생이거늘, 나 스스로에게 조금의 여유쯤은 주어도 되지 않을까.  그렇게 나는 나만의 바위를 과감히 버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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