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런데 그들은 왜 반란을 일으키지 않을까-
어느덧 4번째 이론그룹에 참여하며, 이론그룹도 다음 주면 마무리된다.
쉴 틈 없이 미싱을 돌리느라 정신없는 요즘이지만, 이렇게 누군가의 강의를 듣고 새로운 지적 자극을 받는 것은 필요하고 중요한 일이다. 그렇기에 아직 잠이 덜 깨 피곤한 몸을 이끌고 하품을 연거푸 할지언정 오늘도 모니터 앞에 앉았다.
사실 이 강의를 진행하는 교수님의 생각 중 동의할 수 없는 부분도 있고, 환대와 연대, 정의를 이야기하는 그의 태도에도 어쩔 수 없이 반대편 사람들에 대한 비판(비난은 아니다, 그저 비판일 뿐-)과 자신의 의견에 대한 도덕적 정당성 같은 것들이 내포되어 있는 듯해 한편으로는 불편한 마음도 있다. 그것은 아마도 PC주의(정치적 올바름, political correctness)가 하나의 신념이자 종교화되고 있는 최근의 미국 상황을 바라보며 드는 복잡한 마음과도 같은 것일지 모르겠다.
그러면서 트럼프 초선 때 느꼈던 감정과 바이든 당선 시 느꼈던 감정, 트럼프의 지지세력이 의회를 불법 점거했던 초유의 사태가 일어났을 때 느꼈던 기분을 떠올려보았다. 트럼프가 다시 미국을 위대하게 만들겠다(Make America Great Again, MAGA)"라고 외쳤을 때, 아마 많은 사람이 콧방귀를 뀌거나 그저 '미친 정치가'의 다분히 포퓰리즘적인 선동구호라고 느꼈을지도 모른다. 그리고 또 한편에서는, 보수 복음주의 기독교계(개신교)와 노동자 계층을 중심으로 이에 대한 열렬한 지지가 쏟아졌다.
이 시기 나의 페이스북에서도 국내외에 있는 한국인과 외국인 지인들이 각자 자신의 정치적 색깔과 함께 본인의 지지 진영의 정당성을 표명하는 글들을 찾아볼 수 있었다. 그러면서 한편으로는 혼란스럽기도, 또 흥미롭기도 했다. 내 지인들 중 상당수는 기독교인이었는데, 공화당 지지자 역시 열렬한 기독교인이었고, 민주당 지지자 역시 신실한 기독교인이었다. 같은 종교 아래서도 두 개의 정치진영은 서로의 정당성을 주장하며 마치 반대편이 당선된다면 곧 세상에 종말이 올 것 같은 위기감을 드러냈다.
이번 트럼프의 재선을 두고 진보적 성향의 많은 이들이 좌절감과 함께 미국 시민성의 몰락, 국가주의적, 보신주의적 경향성으로의 변화를 우려한다. 하지만 이들이 간과하는 것은 왜 그토록 많은 사람들이 트럼프를 지지하는가에 관한 문제가 아닐까 싶다. 아니, 어쩌면 이들은 간과하고 있지 않는지도 모른다.
일각에서는 미국의 진보가 엘리트 지식인들 사이에서만 향유되는 한계로 인해 대중성을 확보하는 데 실패했다는 지적도 나온다. 그런 만큼 이들은 보수층의 결집 이유에 대해 누구보다 분명하게 인식하고 있는지도 모른다. 하지만 문제는 이들이 자신들의 도덕적 우월성과 정당성에 대한 절대적 믿음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는 것이다. PC주의에 대한 지나친 강조는 많은 사람들에게 반발심과 거부감을 불러일으킨 측면이 없지 않다. 가장 대표적인 예로 디즈니의 '인어공주', '백설공주' 캐스팅을 놓고 벌어진 논란이다.
히스패닉이나 흑인에 대한 인정, 다양성에 대한 존중이라는 보편적이고 가치 있는 권리가 일종의 '도덕적 훈계'가 되었을 때, 사람들은 불편감을 느꼈다. 특정한 가치관에 대한 설득이나 제안이 아닌 강요로 받아들여졌던 것이다.
이번 대선을 통해 미국에서 나타난 트럼프에 대한 지지 역시 이런 현상과 무관하지 않다는 생각이 든다. 성소수자를 무조건 인정해야 한다는 것이 하나의 교리화되면서 기독교계 내의 위기감에 불을 지폈다. 그리고 이는 얼마 전 광화문에서 일어난 10.27 집회와도 연결지점이 있다. 동성애, 동성혼에 대해 먼저 문을 열었던 미국, 유럽의 교회지도자, 보수적 정치지도자 등은 이미 돌이킬 수 없어진 미국과 유럽의 상황을 한국의 기독교인(개신교인)들에게 경고했다.
이러한 복잡한 일련의 상황을 보며, 나 역시 예전처럼 트럼프를 그저 '미치광이 정치가', '예측불가능한 인물', '쇼맨십이 탁월한 인물' 정도로만 볼 수가 없게 되었다. 진보와 보수를 떠나, 우리는 항상 현상 이면에 숨어있는 원인에 대한 의문을 가져야 하며, 그 배경을 이해하기 위해 노력해야 한다. 그래야 왜 나와 다른 입장의 사람들이 그런 선택을 했는지 비로소 이해할 수 있게 되기 때문이다. 그리고 이를 통해 나와 다른 사람들이 그저 '아무 생각 없는 대중'일뿐이라는 지적, 도덕적, 정치적, 영적 오만함에서 벗어날 수 있다.
진보를 주장하는 크리스천, 보수를 주장하는 크리스천을 보며 그 어느 쪽이 정치적 주도권을 잡든 완전한 선도, 완전한 악도, 완전한 평화도, 완전한 폭력도 아니지 않을까 하는 생각을 해본다. 49:51처럼 우리는 늘 그 어딘가의 지점을 왔다 갔다 하며 무게추를 이쪽저쪽으로 옮겨갈 뿐이다. 완전한 균형도, 완전한 불균형도 없는 채로 말이다.
물론 진영을 떠나서, 생각하지 않는 것, 질문하지 않는 것, 회의하지 않는 것이 문제라는 교수님의 말에는 동의한다. 그러나 설사 우매해 보이는 대중에 대한 밴드웨건 효과처럼 여기지는 작금의 현실이라도, 그 안에는 각자 나름의 논리와 이유가 있다는 사실을 기억할 필요가 있다. 이러한 정치적 현상이 왜 일어났는가, 그 이면에는 어떤 문제가 있었는가, 그렇다면 우리는 무엇을 바꾸고 시대정신에 어떻게 부합할 것인가를 고민해야 하는 것이다.
그렇지 않은 상태에서 그저 우매한 대중이 일을 그르쳤다고, 우리의 순수성과 고결성은 여전히 변함이 없다고, 우리는 절대적 진리라고만 외쳐서는 궁극적 변화가 일어날 수 없다. 그것은 그저 지금처럼 일부 엘리트 지식인들만이 향유하는 또 하나의 정치적 기호품이 되고 말뿐이다. PC주의에서 주장하는 그 모든 것이 다 타당한지에 대한 근본적 물음과 함께, 연대와 환대, 다양성을 주장하는 이들 역시 '정치적 올바름'이라는 이유로 타인을 억압하고 구속하려고 하는 우를 범하지는 않았는지 돌아볼 필요가 있다.
p.s: 요즘 읽고 있는 조지오웰의 <1984>의 내용과 함께 여러 생각이 아직 정리되지 않은 채 머릿속에 얽혀 있다. 인상 깊었던 몇 구절을 공유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