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본 회퍼가 우리에게 던지는 질문-

by Helping Hands

보고 싶던 영화 ‘본 회퍼’를 마침 볼 수 있는 기회가 생겨 기대되는 마음으로 관람했다.


그의 말이나 생각을 인용하는 설교문은 이따금 들었지만 사실 그의 사상이나 삶을 자세히 알진 못했다.


그런데 이 영화를 통해 그의 삶과 신앙관, 그가 추구하고자 했던 영성, ‘종교‘를 거부하고 삶에서 실천하고자 했던 행동하는 믿음을 잘 들여다볼 수 있었다.


나치 독일에 의해 ‘내부로부터(from within)’ 무너져가는 독일과 독일교회를 보며 그가 느꼈던 위기의식과 책임감, 나치에 부역하며 히틀러를 우상화한 변질된 독일교회(제국교회)를 보며 느꼈던 의분과 다급함-


진실을 말하던 날, 오늘부터는 더 이상 어제 그가 서있던 땅과는 전혀 다른 곳에 서있게 될 거라던 누군가의 충고, 조언, 혹은 걱정에도 그는 그 말을 뱉어야만 하는 숙명, 혹은 사명을 갖고 있었던 걸 테다.


처음에는 그의 경고를 대수롭지 않게 여겼던 니뮐러 목사가 나치가 잠식한 독일과 교회를 보며 비로소 자신의 잘못을 뉘우쳤을 때(when he said “I was completely wrong”), 회퍼는 아버지가 농담인 듯 중요하게 전해주었던 메시지 “잘못된 방향으로 가는 기차 안에서 아무리 반대방향으로 뛰어봐야 소용없다”는 말을 그에게 해주었고, 니뮐러는 “잘못된 기차에서 뛰어내려 옳은 방향으로 가는 기차에 다시 탈 수는 있지 않나”라고 했다.


그렇게 그들은 대의를 위해 다시 힘을 합쳤고, 니뮐러 역시 자신이 진실 혹은 진리를 선포하면 어떻게 되리라는 것을 알면서도 말하지 않을 수 없었다.


흡사 구약시대의 혼란기에 잘못된 왕들을 꾸짖고 돌이키도록 목소리를 높였던 선지자들처럼, 그들은 시대의 선지자로서 사명을 감당하고 있었다.


마음만 먹었다면 안락한 삶을 선택할 수 있었고, 굳이 이야기하지 않고 침묵하길, 아무것도 하지 않길 선택할 수도 있었다.


그러나 회퍼는 침묵하지 않는 것 역시 말하는 것이며, 행동하지 않는 것 역시 행동하는 것이라는 사실을 잘 알고 있었다.


그리고 그의 영적 멘토가 해준 말처럼, 어떤 말은 비로소 내뱉는 순간 그 의미를 더 정확하게 깨닫게 되듯, 그 역시 자신이 선포하는 말들의 의미와 무게, 파장을 말을 하는 순간과 그 이후 다가오는 시간을 통해 비로소 온전히 체감할 수 있었다.


진실, 진리를 말한 대가를 치러야 하는 그들의 운명을 지켜보며 감내해야 했던 니뮐러 가족들의 고통과, 안전한 곳에 머무르길 원했던 회퍼 가족들의 만류에도 불구하고, 그들은 자신이 져야 할 십자가, 고난의 길 비아 돌로로사를 그렇게 걸어갔다.


영화를 보는 내내 1930~40년대 독일과 독일교회의 상황이 작금의 우리 현실과 너무나도 닮아있고 겹쳐 보여 마음이 너무 무거웠다.


극우화되어가는 기독교는 진리의 말씀이 아닌 광장의 논리를 선동하며 확대 재생산하고, 사랑과 관용, 평화 대신 혐오와 차별, 분열을 조장하고 있다. 그리고 그들은 그것을 ‘신’을 위해, ‘종교’를 위한다는 명목으로 열심을 다해 실천하고 있다.


불행하고 안타깝게도, 이런 현상은 미국에서도 나타나고 있다. 트럼프 지지자의 상당수가 보수 복음주의 기독교인들이란 사실은 부정할 수 없다.


누군가는 한국교회가 영적 성장을 멈춘 시점이 세습을 이후부터라고 하던데, 사실 그전부터 이미 영적 성장은 멈춰 있었다고 볼 수 있지 않을까 싶다.


영화 속에서 회퍼가 니뮐러에게 “나치를 지지하며 독일 교회의 사람은 많아졌지만, 중요한 것은 ‘얼마나 많은’ 사람이 교회에 있는지가 아니라, ‘누가’, ‘어떤 사람들이’ 교회에 있는지”라고 힘주어 말하던 장면이 떠오른다.


영적, 양적 성장을 멈춘 교회 안에서 종교 지도자들이 찾은 출구 전략은 공격적이고 혐오적인 메시지, 끊임없이 외부의 침략자를 만들어내며 공포를 조장하는 것이었다. 2차 세계대전 무렵 독일에서 그 침략자는 ‘유대인’이었고, 한국전쟁 이후 한국에서는 ‘공산주의 빨갱이’였으며, 오늘날 한국에서는 ‘동성애자’와 ‘중국’, 여전한 ‘좌빨 빨갱이’, 미국에서는 ‘이민자’와 ‘외국인’, ‘동성애자’, 이스라엘(과 유대인들의 입김이 강한 미국)에서는 ‘팔레스타인’으로 그 대상이 옮겨가고 있다.


2차 세계대전 시기 홀로코스트의 희생자로서 약자였던 유대인은 이제 강자의 위치에서 팔레스타인을 향해 총구를 겨누고 있다. 한국전쟁 시기 공산주의자들에 의한 희생자였던 교회와 우익은 그 후로 오랜 기간 빨갱이들을 척결하자는 역사적 임무를 수행하고 있다. 자신들이 당했던 폭력과 차별, 억압을 이제는 역전된 위치 속에서 누군가에게 고스란히 재현하고 있다.

이런 희생자가 가해자가 되고, 희생자와 가해자를 명확하게 구분할 수 없는 혼란 속에서 인간성과 존엄성은 말살되고, 용서와 화해, 사랑은 설 자리를 잃는다. 대신 끝없이 이어지는 혐오와 폭력의 악순환, 사회적, 국가적 갈등과 극우화가 그 자리를 차지한다.


독일의 패전을 수개월 앞두고 결국 교수형에 처해진 회퍼의 마지막 모습에 나도 모르게 눈물이 났던 까닭은 아마 그 때문이었으리라.


선한 일을 하는 의인들은 일찍 희생되거나 너무나 힘든 삶을 이어가고, 반면 악인들은 천수를 누리다 처벌도 받지 않고 편안하게 눈 감는 일들이 우리 현실 속에는 너무도 많이 일어난다.


물론 히틀러가 그러했듯, 성경 속 이세벨과 가룟 유다가 그러했듯, 언젠가는 형통한 듯 보였던 악인들이 비참한 말로를 맞이하기도 한다. 그러나 그럼에도 여전히 현실 속에서 해결되지 않은 많은 불의를 떠올릴 때 회퍼의 죽음이 더욱 슬프게 다가오는 것은 어쩔 수 없었다.


그럼에도 영화 속에서 회퍼만큼이나 내게 희망을 주었던 인물은-


이미 언급했듯 자신의 과오를 인정하고 잘못된 기차에서 내렸던 니뮐러와, 회퍼가 나치 친위대에게 잡혀있을 때 그가 놓친 성경책을 주워서 전해주며 함께 마지막 성찬에 참여했던 친위대원이었다.


친위대원은 비록 가해자의 편에 있었으나 뒤늦게나마 양심의 소리에 귀 기울였고, 회퍼의 마지막 순간에 슬픔의 눈물을 흘렸다.


그의 모습을 보며 “I once was lost but now I’m found, was blind but now I see.”라는 Amazing Grace의 가사가 문득 떠올랐다.


보지 못했다가 보게 되었고, 잃어버렸다가 찾게 된 것이, 길을 잃었다가 길을 찾은 이가 비단 그 혼자만일까. 나 역시 보지 못했었고, 잃어버린 자였고, 길을 잃은 자가 아니었던가. 아니 어쩌면 지금도 여전히 보지 못하고, 잃어버렸고, 헤매고 있는지도 모른다.


그렇기에 나는 회퍼보다 어쩌면 니뮐러나 친위대에 더 가까운 사람일 수도 있겠다. 사실 우리 중 대부분이 그런지도 모르겠다.


하지만 뒤늦게나마 회심한 그들이 있었기에 잔인한 역사의 현장 속에서 일말의 인간성과 존엄성이 남아있을 수 있었고, 회퍼가 떠난 후에도 남아있는 자들로서 그들이 가져올 변화를 꿈꿀 수 있었다.


니뮐러와 나치 친위대를 보며 12.3 계엄 때 소극적이었던 군인들과 양심선언을 한 이들의 모습이 겹쳐 보이기도 했다.


다른 한 편으론 회퍼 역시 보지 못했다가 보게 된 인물이기도 했다. 미국 유학 시절 그는 자신이 겪어보지 않은 인종차별의 현실을 믿지 않았고, 그의 흑인 친구 프랭크가 현실을 보여주었을 때 납득하기 어려워하며 분개했다. 그러면서 미국과 달리 독일에선 이런 차별이 없어서 다행이라 했다. 하지만 프랭크는 과연 독일엔 차별이 없을지 반문했다. 자신이 겪어보지 않은 차별은 마치 ’존재하지 않는 듯‘ 여기는 우리의 인지적 오류와 인식적 한계가 회퍼의 모습 속에도 있었다. 그러나 그런 그 역시 차츰 현실에 눈을 뜨고 시야가 넓어진 것을 보면, 결국 우리 모두는 눈 먼자이자, 눈 떠야 하는 자, 눈 뜰 수 있는 자라고 해아 할 수도 있겠다. 단지 중요한 것은 그럴 용기와 의지가 있는가일 뿐이다.


회퍼를 보며, 또 반대로 제국교회에서 나치에 부역하는 종교인의 모습을 보면서도 각각 떠오르는 얼굴들이 있었다.


1930~40년대의 이야기지만 역사는 돌고 돈다는 말처럼, 그 시기 교회가 마주했던 위기가 그 어느 때보다 더 가깝게 느껴지는 현실 속에서, 많은 메시지와 생각거리를 던져주는 영화가 아닐 수 없다.


p.s: 니뮐러 목사의 설교문 중 다음의 말은 극우화되고 있는, 혹은 침묵하고 있는 기독교인들에게 경종을 울린다.


“처음에 나치는 공산당원을 찾아왔다.

그때 나는 침묵했다.

나는 공산당원이 아니었으므로

다음에 나치는 사회주의자들을 덮쳤다.

그때 나는 침묵했다.

나는 사회주의자가 아니었으므로

그다음에 나치는 노동조합원을 잡아갔다.

그때 나는 침묵했다.

나는 노동조합원이 아니었으므로

어느 날 나치는 유대인들을 끌고 갔다.

그때 나는 침묵했다.

나는 유대인이 아니었으므로

그리고 나치는 가톨릭 신자들에게 다가왔다.

그때 나는 침묵했다.

나는 가톨릭 신자가 아니었으므로

마침내 나치가 나에게 찾아왔을 때

나를 위해 나서 줄 사람은 아무도 남아있지 않았다.”

keyword
매거진의 이전글세상에서 가장 무서운 말, “몰랐다”는 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