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의 글쓰기 성애적 취향의 기원을 찾아서-
작년부터 코로나의 시작과 함께 논문을 써야 한다는 생각이 맞물려 읽고, 쓰는 데 많은 시간을 할애해왔다.
그런데 아주 요상하고 신기하게도, 아니 어쩌면 당연한 귀결인지 모르겠지만 정작 써야 하는 논문을 제외하고 이것저것 다양한 주제에 대해 틈나는 대로 혹은 틈을 내어 글을 쓰고 있다. 한마디로 '잡식성 글쓰기'를 실천 중이다.
글쓰기를 언제부터 이렇게 좋아하게 되었는고 하니, 그 역사가 꽤 오래전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나는 어릴 때부터 책 읽기와 글쓰기를 유난히 좋아했다. 지금과는 달리(?) 무척이나 내성적이고 수줍음이 많았던, 친구들과 쉽게 어울리지 못했던 어린 시절에 외로움을 달래기 위함이었는지 선천적인 기질에 의한 것이었는지 몰라도 책을 참 즐겨 읽었다.
부모님이 사주신 어린이용 만화 세계사를 밤마다 자기 전 읽는 것이 유년기의 낙이었다. 그 덕분에 초등학교 저학년 무렵부터 1차 세계대전이라든지 보스턴 차 사건, 아편 전쟁 등에 대해서 자연스럽게 접할 수 있었다.
그 후로도 책은 줄곧 좋은 친구였고, 초등학교 고학년 무렵부터는 각종 논설문 대회나 글짓기 대회에서 상을 꽤 많이 받았다. 글쓰기를 왜 이렇게 좋아할까 언제부터 이렇게 글쓰기를 좋아했을까 돌아보며 성인기부터였다고 생각한 적이 많았는데, 얼마 전 아빠가 고이 간직해두신 학창 시절 글짓기 상장들이 수북이 쌓여있는 걸 보곤 그게 아니었음을 깨달았다.
참 신기한 것이, 살면서 접하는 다양한 자극과 경험이 있음에도 불구하고 본능적으로 끌리고 결국은 그 길로 가게 되는 영역이 있는 것 같다. 심리학을 공부하고 관련 분야에서 일하다가 지금은 생각지 못하게 통일학이라는 분야를 공부하며 나도 참 럭비공 같은 이력을 가진 별난 흥미 코드의 인간이라고 생각했는데, 분야는 달라지고 있을지언정 글쓰기라는 것은 그 모든 소제를 관통하는 하나의 주제와 같다는 생각이 든다.
심리연구소에서 일할 때 가장 즐겁게 했던 업무 중 하나가 바로 '책'을 만드는 일이었다. 심리검사 매뉴얼이나 심리적 스트레스를 예방하고 대처하는 것에 관한 책자를 기획하고 글을 쓰고, 디자이너에게 표지 제작을 의뢰하고, 인쇄소 사장님과 연락해서 종이는 어떤 재질로 할지, 어느 정도의 사이즈로 몇 부나 찍어낼지 등을 모두 맡아서 진행했다. 책 목차부터 각 장의 내용을 쓰고, 완성된 책이 내 손안에 들어왔을 때의 그 뿌듯함과 성취감에 참 오랫동안 행복했다.
그리고 만학도로 다시 학교로 돌아와 강의에서 제출해야 하는 페이퍼를 쓰거나 학술지에 게재할 소논문들을 쓰며, 업무용 ppt의 간결하고 건조한 문체에서 다시 만연체의 세계로 돌아왔다. 이러다 강박증이 생기지 않을까 싶을 정도로 사소한 표현 하나가 주는 뉘앙스에도 신경 쓰고, 내가 알고 쓰는 말인지 모르고 쓰는 말인지, 각주로 인용표기를 해야 하는 것인지 내 머릿속에서 나온 생각인지를 끊임없이 검열하는 글쓰기를 이어가며, 왠지 모를 희열이 있었다.
그리고 작년, 코로나로 많은 시간이 생기고 논문도 마음먹은 대로 진행되지 않으면서 나는 '그래 뭐라도 써보자.' 하는 생각으로 전부터 머릿속에만 담아두었던 글감들을 차례대로 풀어내기로 했다. 주제도, 글의 종류도 다 다르지만 내가 살면서 경험한 것들, 느낀 것들, 배운 것들을 쓰기로 마음먹었고, 그 어떤 글이든 공통적으로 나 자신과 누군가의 치유와 회복에 도움이 되는 것들을 쓰기로 다짐했다.
아직 작가도 아니고(그 길에 조금씩 다가가려고 노력하고 있는 중이기는 한 것 같다), 내가 쓴 글이 '잘 팔리는' 글이 될지는 모르겠지만, 하루하루 나는 나만의 습관처럼, 누에가 고치를 뽑아내듯 내 마음과 머릿속에 있는 말들을 엮어서 씨실과 날실로 풀어낸다.
매일 노트북 키보드 위에서 춤추듯 움직이는 내 손가락과 타자칠 때의 경쾌한 리듬감을 느끼며, 타이핑하는 이 행위가 흡사 피아니스트가 피아노 건반을 두드리며 연주하는 행위와 비슷하다는 생각을 한다. 기실 음악가든, 요리사든, 글 쓰는 사람이든 모두 예술가임에는 틀림없다. 음악가는 선율과 리듬으로, 요리사는 재료와 레시피로, 작가는 어휘와 구절들로 자신의 세계를 창조적으로 표현해낸다는 사실은 모두 공통적이기 때문이다.
그래서 전문 연주자 수준의 예술가는 결코 아니겠지만, 나도 예술 언저리 정도에라도 닿기를 소망하는 사람으로서 팔릴지 안 팔릴지 모를 자작곡들을 잔뜩 써놓는 싱어송라이터의 마음으로 나만의 글감들을 매일 잡식성으로 내어놓는다. 그 아이들이 창고 속 해묵은 먼지를 털어내고 언젠가 세상 밖으로 나갈 날이 오기를 기다리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