클리셰 같은 제목이지만, 나에게도 이 제목을 쓰는 날이 오는구나.
“첫 책 출판 계약서에 도장을 찍었다.”
브런치 글에서 쉽게 찾을 수 있는 제목이다. 첫 책 계약을 한 작가님들 또는 두 번째 세 번째 책을 계약한 다작 작가님들도 책 계약과 출판에 관한 글들을 많이 쓴다.
그래서 첫 책 출판 계약을 하며 뭔가 좀 특별한 제목이 없을까 생각해봤지만, 구관이 명관이고 고전이 오랫동안 사랑받는 이유가 있듯 더 나은 제목이 잘 떠오르지 않는다. 상투적이지만 가장 직관적이고 사실 그대로를 전달하며 그 안에 담긴 다양한 심경을 덤덤하게 표현하는 제목이 아닐까 싶다.
스위스에서 초고를 마무리 짓고 한국에 돌아와 수정 작업을 계속했던 원고의 계약서에 마침내 오늘 도장을 찍었다.
결혼을 앞두고 우울해지는 신랑 신부의 심경을 표현한 단어인 marriage blue의 기분이 이런 걸까. 기쁘면서도 마음이 복잡하다.
출판사 대표님과 처음 연결된 것은 일 년 전쯤이었다. 이 원고로 처음 만난 것은 아니었고, 자전적 에세이를 메일로 투고했고 회신을 받아 성사된 만남이었다.
200곳 이상의 출판사에 투고한 작가님들도 있다지만 난 성향상 그런 열정이나 의지까지는 없다. 대학입시 때도, 취업준비 때도 관심 있는 몇 군데를 위주로 지원했다.
원고 투고 역시 이 출판사가 처음이었고, 운 좋게도 만남이 성사되었다.
하지만 아직 작가로서 이력이 없는 내게 대표님은 에세이는 다른 책을 먼저 낸 후에 내보는 것이 어떻겠냐고 제안하셨고, 스위스에 가기 전 새로운 책에 대한 기획을 넌지시 물어보셨다.
마침 내가 몇 년 동안이나 생각하고 있었고 언젠가는 꼭 글로 풀어내야지 했던 주제였기에 대표님의 제안에 생각해둔 목차와 대략의 구성을 그 자리에서 설명했다.
그렇게 첫 책의 기획 미팅이 마무리되었고, 스위스에 있는 석 달 동안 틈틈이 원고를 작성했다. 이미 몇 년간이나 내 머릿속과 마음을 어지럽히던 주제였기에 쓰고 싶은 방향도 있었고, 박사논문을 위해 읽었던 참고문헌과 이론들을 대거 사용하게 되었다. (없는 집 곳간 탈탈 털어 잔칫상 차린 모양이랄까… 박사논문은 이제 뭘로 쓰나… 에라 모르겠다 일단 이 책을 먼저 낳고 봐야겠다.)
2쇄 이상 찍지 않으면 손익분기점을 넘기기 어렵다는데 부디 작은 출판사 살림에 손실을 내지 않았으면 좋겠다.
인세 역시 아직은 매우 작고 귀여운 수준이리라 예상된다. 작고 귀엽지만 소듕해.
계약서에 도장까지 찍었지만 마치 “결혼식장 들어가서 신랑 신부 얼굴 보기 전까진 모르는 일이다”라는 말처럼 혹시 다른 변수가 생기진 않을지 괜한 불안감도 있다.
하지만 첫 책 출판 계약서에 도장을 찍은 오늘만큼은 더 맘껏 기뻐하며 때 이른 축배를 들어보련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