알랭 들롱과 <Me before you>
1960년대 영화계를 주름잡았던 프랑스의 대표적 미남 배우 알랭 들롱이 존엄사 의사를 밝혔다는 뉴스 기사를 접했다. 2019년 뇌졸중 수술을 받고 현재는 스위스, 프랑스 이중국적으로 안락사가 합법인 스위스에 거주 중이며, 병세가 악화될 경우 안락사하는 데 본인과 아들 모두 동의했다고 한다.
안락사에 대해 조금 찾아보니 약물 투여 등을 통해 죽음을 앞당기는 적극적 안락사와 영양 공급 등을 중단하는 방식의 소극적 안락사로 다시 나뉘며, 불치병 환자들을 대상으로 불필요한 연명치료를 하지 않고 환자가 인간으로서의 존엄성을 지킬 수 있도록 하는 존엄사가 있다고 한다(안락사와 존엄사 사이의 구분이 다소 모호하거나 중첩되는 면도 있는듯하다).
개념 정의는 이 정도로 해두고, 어쨌든 이 기사를 보며 ‘삶의 의미와 질’, ‘죽음을 준비하고 받아들이는 태도’에 대한 사회의 시각이 예전보다는 많이 바뀌고 있구나 하는 생각을 새삼 해본다.
‘웰 다잉(well-dying)’이나 ‘웰 바이(well-bye)’라는 용어가 일상적으로 사용되고 있고, 죽음을 단순히 피하고 싶은 것, 두려움의 대상이 아닌 언젠가 찾아올 것, 자연스럽게 맞이해야 할 것으로 바라보게 된 것 같다.
안락사나 존엄사를 생각할 때마다 항상 떠오르는 작품이 있다. 바로 소설 원작으로 영화화되기도 한 <Me before you>다. 소설로 먼저 읽고, 후에 영화로도 보았다.
작품의 남주인공 윌(윌리엄)은 훈남에 성공적 커리어, 좋은 집안 배경, 아름다운 금발의 애인 등 모든 것을 다 가진 소위 금수저 엄친아 같은 캐릭터였지만, 사고로 인해 하반신을 움직일 수 없는 상태가 되었고 그 후로 사람들과 단절된 삶을 살며 성격 역시 매우 괴팍하고 예민한 사람이 되었다. 스스로 할 수 없는 일상의 많은 일들에 있어 도움을 받기 위해 간병인(‘생활보조자’라고 표현하는 게 더 맞는지 모르겠다)을 계속 두지만, 그의 까탈스러운 성격 탓에 오래 버티지 못하고 계속 바뀌기 일수다.
여주인공 루이자는 그런 윌리엄의 새로운 보조자로 고용되고, 그녀의 특이한 취향과 유머 코드, 쉽게 굽히지 않는 성격 등으로 처음에는 윌리엄과 삐그덕 대기도 한다. 그러나 진심으로 그를 케어하는 루이자에게 윌리엄은 차츰 마음을 열고, 둘은 많은 교감을 나누며 마침내는 사랑하는 사이가 된다.
그러나 윌리엄은 평생 장애를 안고 살 수밖에 없는 자신의 삶이 사고 이전과는 결코 같을 수 없으리라 생각하고, 스위스의 안락사 기관에서 생을 마감하리라 다짐한다. 이를 알고 있던 그의 부모와 루이자, 재활치료사는 그의 생각을 바꾸기 위해 많은 노력을 기울인다.
그러나 루이자를 통해 실로 오랜만에 행복과 사랑이라는 감정을 느끼고 난 후에도 그는 여전히 죽음에 대한 의지를 꺾지 않으며, 결국 스위스의 안락사 기관에서 루이자를 마지막으로 만난 후 영원한 여행을 떠난다.
처음 이 소설을 읽었을 때는 엄마가 암으로 세상을 떠난 지 1~2년 정도 되었을 무렵이었다. 소설을 읽고 난 후, 윌에게 왠지 모를 원망이 들었다. 그 당시에는 윌보다 루이자와 가족들에게 더 감정이입이 되었던 것 같다.
그의 죽음을 막으려고 그렇게 애썼는데… 불편한 몸이지만 루이자와 가족들의 도움을 받으며 새로운 삶의 희망과 행복을 찾을 수도 있었을 텐데 정녕 그것이 가장 좋은 선택이었을까 하는 아쉬움이 들었고, 미련 없이 떠난 그가 야속하기도 했다.
하지만 시간이 조금 더 지나고 나니, 관점이 조금씩 바뀌었다. 이제는 윌의 입장에서 더 생각해보게 된 것이다.
결코 이전의 삶과 같을 수 없는 삶, 살아있는 동안 항상 가족과 사랑하는 사람에게 부담과 짐을 줄 수밖에 없다는 무거운 마음, 단순히 양적인 시간으로서가 아닌 존엄하고 온전한 것으로서 삶을 지키고 싶었을지 모를 그의 마음들.
대학원 석사 시절 <건강심리학> 수업을 들을 때 교수님은 학생들에게 안락사(존엄사)에 대한 찬반 의견과 이유를 물어보았다. 정확하게 기억은 나지 않지만, 당시 내 대답은 ‘반대’였던 것 같다. 아마 이유는 ‘생명 존중’이 아니었을까 싶다.
그런데 그 당시에는 그렇게 묵직하게 느껴지지 않았던 이 질문의 무게가 시간이 흐른 후, 엄마의 죽음을 경험한 이후 오히려 더 크고 무겁고, 가깝게 느껴지기 시작했다.
엄마가 처음 혈액암 진단을 받았을 때는 이미 뇌에서 두 개의 종양이 발견된 후였고, 암세포가 상당히 많이 전이된 상태였다. 악성이었기에 치료 예후도 좋지 않았고, 평균 기대수명도 길지 않았다.
정확한 진단이 나오던 날, 의사는 엄마를 제외한 가족들을 불러놓고 검사 결과를 알려주었다. 아마 엄마가 받을 충격을 생각해서 그런 것이 아니었을까 짐작해본다.
진단 후, 항암치료를 시작하기 전 엄마는 치료를 하고 싶지 않다고, 기도하며 주어진 시간을 집에서 가족들과 보내고 싶다는 의사를 밝혔다.
하지만 가족들로서는 치료를 통해 나아질 수 있으리란 기대를 버릴 수 없었기에, 또 아무것도 하지 않고 손 놓을 수 없다는 생각에 치료를 진행했다.
여러 번의 항암치료와 방사선 치료를 진행하는 동안 엄마의 상태는 호전되었다 악화되기를 반복했지만, 전체적으로 봤을 때 병세는 계속 악화되었고, 방사선 치료를 받는 동안 (부작용 또는 의료사고라고 생각한다) 하반신이 마비되어 세상을 떠나기 전 일 년 정도를 누워서만 생활해야 했다.
의사는 그 사이에도 몇 번이나 엄마가 길어야 한 두 달 버틸 수 있을 거라고 했지만, 엄마는 생각보다 긴 기간인 일 년 반을 우리 곁에 있어 주었다.
그 당시에는 간병을 하느라 나 역시 여유가 없었기에 엄마의 심경을 헤아려보지 못했다. 엄마가 떠난 후에야 비로소 그 일 년 반의 시간 동안 엄마의 삶은 어땠을까, 엄마는 무엇을 느꼈으며, 어떤 감정이었을까 생각해보았다.
그러면서 이따금씩 후회 아닌 후회와 아쉬움, 미안함, 안쓰러움, 안타까움 같은 마음들이 몰려왔다. 그때 엄마가 원했던 대로 치료를 하지 않았더라면 어땠을까. 그랬다면 엄마는 좀 더 행복했을까. 좀 더 온전하고 충만한 시간을 보내다 갈 수 있었을까. 짧은 시간이지만 아직 건강이 허락되었을 동안 가족들과 더 많은 곳을 다니고 더 많은 추억을 만들 수 있었을까 하는 생각들을 이따금씩 해본다.
이미 지나간 시간이고 되돌릴 수 없는 일이기에 그렇게 하지 못했던 것을 후회하지는 않으려고 한다. 반대로 그때 만약 치료를 하지 않았다면 아무런 후회가 남지 않았을까 생각해보면, 어떻게 했더라도 후회와 아쉬움은 남았을 것이기 때문이다. 사랑하는 사람과의 이별은 시기와 방식과 관계없이 언제나 후회와 아쉬움, 미련이 남을 수밖에 없음을 인정해야 한다.
하지만 그 후로 나는 혹시 나중에 내가 엄마와 같은 상황에 처한다면(말기암 혹은 치료 불가능한 질병 등의 진단을 받는다면) 항암치료나 연명치료를 받지 않겠다는 쪽으로 생각을 굳혔다. 물리적인 시간으로서 나에게 주어진 삶을 단순히 지속시키는 것보다는, 짧더라도 온전히 나로서 존재하며 다가오는 죽음을 조금 더 자연스럽고 건강한 육체와 정신으로 맞이하고 싶다.
태어나는 것은 결정하지 못했지만, 존엄하게 죽을 수 있는 권리 역시 인간으로서 누릴 수 있는 권리가 아닐까 생각해보며, 윌의 마음을, 그리고 엄마의 마음을 조금 더 이해하게 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