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명수와 미켈란젤로, 다빈치, 미용실 인턴 실습생의 이야기
발음만 들어선 오해하기 딱 좋지만, 욕이 아니다. 국민MC 유재석이 박명수에게 붙여준 별명이라고 한다.
개그맨으로서만 아니라 손바닥TV 진출을 비롯해 다양한 영역에 도전한 박명수에게 10개의 직업을 가졌다는 의미로 붙여준 별명인데, 벌써 10년 전 무한도전 '무한상사' 시리즈에서 지어준 별명이라니 유재석의 선구안과 박명수의 개척정신, 도전정신의 콜라보로 생겨난 말이 아닌가 싶다.
* 관련기사: https://www.edaily.co.kr/news/read?newsId=01216886599397720&mediaCodeNo=258 없는 게 없는 무한도전 유니버스라더니 직업 세계의 변화를 예측한 이 '10jobs' 짤까지 존재한다니 대단하다.
박명수는 그밖에도 치킨가게 운영, DJ 등 다양한 영역에 활발하게 진출하며 도전과 실패, 성공을 고루 맛보았다. 요즘에는 이렇게 다양한 직업을 갖고 살아가는 사람들을 일컬어 10jobs와 비슷한 말로 'n잡러'라고 부르기도 한다.
박명수만큼의 실패나 성공까지 경험해보진 못했지만, 나 역시 이런 저런 다양한 일들을 많이 해본 편이다. 다양한 회사, 다양한 전공 공부, 다양한 업무와 직위, 업무 형태를 경험했다. 최근에는 부끄럽지만 '작가'라는 타이틀까지 하나 더했다. 물론 아직 책한권 낸 게 전부이기에 스스로 이 타이틀을 써도 되나 싶은 민망함이 있긴 하다.
어쨌든, 이렇게 나도 나름대로 10jobs, n잡러를 향해 가고 있는 삶이 아닐까 생각하면서도 늘 마음 한켠에는 한 우물을 파지 못한 것에 대한 자격지심이 있다. 왜 난 남들처럼 진득하게 한 직장에서, 한 분야에서 오래 있지 못하고 늘 새로운 곳, 낯선 분야로 눈을 돌리는 걸까 싶은 거다. 한 분야에서, 한 조직에서 계속 머물렀더라면 지금쯤 더 안정적인 삶을 살지 않았을까, 더 많은 경력과 실력을 쌓지 않았을까 하는 생각을 해보는 것이다.
이런 아쉬움은 단순히 가보지 못한 길에 대한 미련일 수도 있다. 혹은 한 분야와 조직에서 오래 있었다면 정말로 더 안정적이고 성공적인 커리어와 삶을 누리고 있었을 지도 모를 일이다. 가보지 않은 길이기에, 그 끝이 어디를 향하고 있을지는 나로서는 알 수 없다.
하지만 이런 미련을 떨쳐 버리기 위해서라도 '꼭 한 우물만 파야 하는가?' 하는 질문을 고집스레 던져본다.
여러 갈래로 파놓은 우물이 나중에 저기 저 깊은 지하에서 하나의 물줄기로 합쳐져 만날 수도 있지 않나.
미켈란젤로나 다빈치같은 역사적인 인물들도 미술뿐만 아니라 해부학이나 의학, 건축, 과학 등 다방면으로 활동했고 융합과 통섭의 아이콘으로 불리우지 않는가.
물론 내가 그런 천재라는 소리는 당연히 아니다. 아직 그 정도의 현실검증력은 갖고 있다. 하지만 반대로 천재가 아니라고 10jobs, n잡러를 못하란 법도 없다.
10jobs와 n잡러, 박명수와 미켈란젤로, 다빈치로 이어진 의식의 흐름은 얼마 전 미용실에서 만난 인턴 실습생의 이야기로 이어진다.
머리를 자르러 간 미용실에서 인턴 실습생이 머리를 감겨주었다. 뒤로 누운 자세로 얼굴에는 수건을 덮고, 머리를 감는 5분간의 시간 동안 이 실습생과 예상치 않은 블라인드 인터뷰(내 눈을 가린 채로 했으니 '블라인드'다)를 진행하게 되었다.
이런 저런 이야기를 나누다 실습생이 미용일을 시작하게 된 계기를 이야기해주었는데, 원래는 일본에서 유학하며 일본어를 공부하던 대학생이었다고 한다. 그런데 군복무 중 우연히 이발병으로 차출되었고, 이발병 일을 하면서 미용에 적성과 소질을 느껴서 제대 후 본격적으로 미용일을 시작했다는 것이었다. 군대 가기 전까지는 전혀 미용을 접해본 일이 없었다는데, 선임병이 무작위로 이발병을 선발할 때 '하필이면' 이 친구가 당첨(?)된 것이었다. 우연이었지만 그로 인해 이후 진로가 바뀌었으니, 이 실습생에게는 선임병이 인생의 방향을 바꿔준 나름의 은인 같은 존재였겠다 싶었다.
예전에 심리연구소에서 일할 때 직업흥미검사와 진로, 커리어 코칭 관련 업무를 진행했던지라 이 친구의 얘기를 듣는 동안 나도 모르게 오지랖이 발동했다. 같은 미용업계에 종사하는 다른 사람들이 갖지 못한 '일본어' 구사능력이 있으니 그걸 잘 활용해서 나중에 미용업으로 일본에 진출하거나 일본쪽 업계와 협업을 해도 좋겠다고 이야기해준 것이다. 그랬더니 아니나 다를까, 본인 역시 나중에 그렇게 할 계획이 있다고 했다.
이 친구와 이야기를 나누는 동안 두 개 이상의 분야가 접목되어 이렇게 새로운 길을 만들어가고 시너지가 날 수도 있겠다는 생각에 더 확신이 들었다. 물론 그러기 위해서는 남들보다 배 이상의 노력이 필요할지도 모른다. 세상에 저절로 되는 일은 없으니 말이다. 하지만 성공했을 때는 그 시너지 효과와 영향력 역시 배로 더 클것이다. 그리고 혹시 실패하더라도, 도전한다는 그 사실 자체로 충분히 멋지지 않은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