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icro와 macro의 통합, 개인의 심리와 사회문화적 조건
난민 지원 단체에서 다문화 상담에 대한 강의를 들었다.
통일학을 공부한 뒤로는 인권이나 사회정의 같은 법, 사회문화, 정치 관련 강의나 세미나를 더 많이 들었는데 이런 찐 심리학, 그중에서도 상담 관련 강의는 오랜만이다.
강의를 듣다 보니 심리학, 상담쪽 용어인 사례개념화, scientist practitioner model 관련 얘기들이 나온다. 상담이 일반적인 대화와 다른 점은 내담자들이 상담 장면에 가져오는 주호소(issue) 탐색과 가설 설정, 상담을 위한 내담자와의 공동의 목표 설정 등을 통해 변화를 촉진하고 함께 하는 과정(process, journey)이라는 점이다. 이런 일련의 과정에서 큰 틀이 되어주는 것이 바로 사례개념화라고 볼 수 있다. scientist practitioner model은 심리학자가 객관적이고 측정 가능한 방법을 사용하며 연구하는 과학자인 동시에, 현장에서 활동하는 실무자(활동가)로서의 역할을 병행해야 한다는 것이다. 연구자와 실무자 중 어느 역할의 비중이 더 큰지에 따라 sP가 될 수도, Sp가 될 수도 있다.
어쨌든, 오랜만에 이런 전공 용어를 듣다 보니 새록새록 학부와 석사 시절 기억이 떠오른다. 상담실습도 하고, 정신장애 진단통계편람인 DSM도 열심히 외우고, 정신병동 회진을 돌기도 했더랬다.
졸업 후 임상 및 상담심리 전공자로서의 전형적인 커리어 패스라고 볼 수 있는 상담사나 임상심리전문가로서의 길을 걷지는 않았다. 일반 회사에서 일을 하다, 전공을 살리겠다고 다시 심리학 분야로 돌아왔지만 병원이나 상담센터가 아닌 컨설팅펌과 교육회사의 성격이 혼재되어 있는 연구소에서 일했다.
지도교수님은 졸업 후 수련만 받으면 전문가가 되기 위한 자격조건에 마침표를 찍는 것인데 왜 굳이 다른 길을 가는지 염려하며 말리셨다. 휴학하고 필리핀에 갈 때도 내 맘대로, 졸업 후 진로도 내 맘대로, 그러고 보면 난 참 교수님 속을 많이 썩인 것 같다. 평소 고분고분하던 애가 중요한 시기마다 그랬으니 교수님 입장에선 믿는 도끼에 발등 찍히고, 얌전한 고양이 부뚜막에 먼저 올라가는 것 같은 그런 형상이었을 테다.
어쨌든, 돌고 돌아 다시 연구소에서 심리학 전공을 살려 일하면서 정말 즐겁게 일했다. 다시 그때와 같은 열정을 갖고 일할 수 있을까 싶을 정도로 재미있게 일했으니 말이다. 그렇다고 해서 고생하지 않은 것은 아니다. 야근과 출장이 밥먹듯 잦았으니 말이다.
병원이나 상담센터가 아닌 연구소에서 일하기로 한 것은, 개인 내면의 심리적 문제를 사회적 차원에서 연결해 풀어나가고 싶었기 때문이다. 심리학이라는 학문의 특성상 다루는 주제가 개인 내면이라는 미시세계지만, 실무 경험이 거의 없었던 그 시기에도 희미하게나마 정부나 다양한 기관들과 연계해 사회문제를 해결해나가는 데 심리학을 써먹고 싶다는 생각을 했다.
실제로 연구소에서 일하는 동안 공기업, 사기업, 정부기관, 개인, 집단 등 다양한 고객들과 일하면서 생활 속에 더 가까운 심리학, 사회 이슈와 연결되는 심리학으로서 전공지식을 활용할 수 있었고, 그에 대한 큰 기쁨과 자부심을 느꼈다.
한편 그렇게 일을 하는 동안 마이크로와 매크로, 미시와 거시 사이의 연결에 대한 목마름은 더욱 커져갔다. (임상/상담) 심리학에서는 개인의 과거, 현재에 대한 탐색을 통해 심리적 문제의 원인을 찾고 그것을 극복하며 개인이 가진 자원과 잠재력을 최대한 발휘할 수 있게 하는 것을 목표로 삼는다. 하지만 이따금씩 이런 생각이 들었다.
‘개인이 아무리 노력하고 의지가 있더라도 주변 환경이나 사회적 시스템이 뒷받침되지 않으면 개인은 계속해서 좌절과 무기력을 경험할 수밖에 없다. 이런 경우 환경이나 제도적 개선이 이뤄지지 않은 상태에서 모든 원인을 개인에게서 찾는 것은 분명 문제가 있고, 개인에게 모든 책임이 전가될 우려가 있다.’
그렇다면 이런 상황을 개선하기 위해선 무엇이 선행되어야 하는가?
이런 질문을 스스로에게 끊임없이 던지며 언젠가부터 ‘공동체 개발(community development)’라는 단어가 머릿속에 각인되었다. 정확하게 공동체 개발이 무엇인지도 모르면서 말이다.
그렇게 몇 년간 내 머릿속에 추상적 개념으로만 있던 이 단어가 생명력을 가지게 된 것은 로잔에서 3개월간 ‘공동체 개발 학교’ 과정을 수료하면서부터였다. 5년 전 로잔에 머물던 시기에 이 학교 과정이 처음 개설되면서 막연히 상상하던 공동체 개발이 무엇인지 처음 알게 되었다. 그리고 수업 과정 중 스위스에 있던 난민들을 매주 만나고, 그들과 함께 시간을 보내며 함께 이벤트를 기획해 ‘starry starry night’이라는 행사를 진행하기도 했다.
강의 과정을 마친 후에는 7주간 혼자 독일 곳곳과 네덜란드를 다니며 독일인, 한국인, 탈북난민 등을 만나며 그들의 이야기를 듣고 그들 집에서 객식구로 얹혀지내기도 했다.
공동체 개발 학교와 스위스, 독일, 네덜란드에서의 난민들과의 만남을 통해 나는 미시와 거시, 심리학과 공동체 개발이라는 두 세계의 접점을 찾아갈 수 있었고, 사람과 세상을 보는 눈 역시 조금이나마 넓어졌다.
그리고 다시 한국에 와서 통일학을 공부하며 지금까지도 미시와 거시 사이를 잇기 위한 노력을 이어가고 있다. 때로는 그 과정이 너무 막막하고 내 능력으로 감당하기엔 버거워서 내가 지금 뭘 하고 있는 건가, 내 능력으로 할 수 있는 일인가 싶을 때도 있다.
사람들이 무슨 공부하냐고 물어보면 심리학과 통일학을 연계하는 학제 간 통합 연구를 한다고 소개하는데, 사실 나도 그게 잘 될지 모르겠다. 이쪽저쪽 다 하려다 가랑이가 찢어지는 건 아닌지.
하지만 오늘 다문화 상담에 대한 강의를 들으며 문득 그간의 내 노력들과 걸어왔던 길들이 의미 없는 것은 아니었구나 하는 생각이 들었다.
전통적인 상담 관점에서만은 해결할 수 없는 다문화 상담에서의 이슈들-이를테면 난민이나 이주민들이 경험하는 문화적 배경이나 상실 경험에 대한 이해, 심리적 영역뿐 아니라 생계, 주거, 육아와 같은
현실적 영역에 대한 동시적 접근의 필요성-을 다루기 위해선 미시와 거시에 대한 동시적 접근이 필수적이기 때문이다.
마이크로와 매크로, 둘 중 어느 한쪽에서라도 전문가가 되기란 쉽지 않다. 잘하면 통합, 통섭이지만 잘못하면 이도 저도 아닌 게 되기 십상이기 때문이다.
그래서 내 가랑이는 당분간 계속 찢어져야 할 테고, 언제까지 찢어야 할지, 얼마나 더 찢어질 수 있을지 모르겠지만 그래도 일단 힘닿는 대로 찢어볼랍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