옵션 B, 애도는 계속되는 과정이다.
얼마 전 지인의 추천으로 페이스북의 최고 책임운영자(COO) 셰릴 샌드버그와 심리학 교수 애덤 그랜트의 공저 ‘옵션 B’를 읽었다.
심장마비로 남편을 갑작스레 떠나보낸 셰릴 샌드버그는 이 책에서 자신의 상실과 애도 과정을 자세히 나누었다.
그중 유난히 마음에 남는 부분이 있었다.
사랑하는 사람이 떠나고 난 뒤에는 생일이 아닌, 기일만을 기리게 되는 것이 슬프다는 것이었다.
그러게.
미처 생각지 못했던 부분인데, 나 역시 엄마가 떠난 뒤엔 엄마 생일이 되면 ‘오늘이 엄마 생일이구나. 살아있었다면 함께 축하할 텐데.’하고 아쉬워만 했지, 기념하거나 축하할 생각은 하지 못했다. 항상 기일만 기념하고 챙기곤 했다.
엄마는 12월에 와서, 12월에 떠났다.
그래서 매년 11월 무렵이 되면 어김없이 마음이 유난히 더 쓸쓸해졌다.
엄마가 가장 아팠던 계절, 찬바람이 앗아간 엄마의 숨. 말라가는 나뭇가지처럼 조금씩 생명력을 잃어가던 연약한 육체와 공허해져 가던 눈빛, 차갑고 건조하며 적막했던 병실의 공기를 그대로 복기해서 재인하게끔 하는 그 계절의 찬 공기가 싫었다.
그래서 엄마가 떠난 뒤로 겨울은 가장 싫어하는 계절이 되었다. 그저 올해도 이 겨울이 어서 지나가길, 빨리 따뜻한 봄이 와서 모든 것들을 녹여주길 바라고 또 바랐다.
그런데 떠난 사람의 ‘생일’에 대한 글을 읽으며, 이제 겨울을 좀 더 좋아해 줘야겠다 싶다.
겨울은 엄마를 데려간 계절이기도 하지만, 엄마를 이 땅에 데려다준 계절이기도 하기에 그렇다.
그동안 미워하기만 했던 겨울에 사과의 마음을 전하며, 올 겨울과는 조금 더 잘 지내봐야겠다.
한 달 전쯤 책을 읽고 난 후 얼마 되지 않아서 쓴 글인데, 막상 다시 그 계절이 가까워 오니 몸이 먼저 반응하는 것 같다.
우리의 마음은 인지와 감정에 의해 조절되는 부분도 크지만, 생리적 반응에 의해 영향을 받는 것도 크다.
찬 공기가 불러오는 몸안의 감각과 기억들이 활성화되는 이 계절이, 전보다는 조금 편해졌지만 여전히 평탄하게 보내기 쉽지 않은 시기이긴 하다.
하지만 8년이라는 시간이 지나는 동안 그 감각과 기억의 강도는 조금씩 옅어지고 있기는 하다.
‘옵션 B’에서 또 특히 좋았던 부분이 있는데, 애도에 관한 새로운 정의였다.
심리학을 공부하면서 ‘적절한 애도의 기간’, ‘애도의 단계’에 관한 이론들을 배우며 그 이론들이 말하는 애도의 과정과 내가 현재 있는 상태를 비교하곤 했다.
그러면서 내가 지금 느끼는 이 감정은 잘못된 걸까, 나는 정상적인 애도 기간과 단계를 지나쳐 아직도 과거의 일을 ‘떠나보내지’ 못하고 고착되어 있는 걸까 생각했다.
하지만 옵션 B에서 셰릴과 애덤(아마 심리학 교수인 애덤이 이 부분을 쓰지 않았을까 싶다)이 그런 애도의 단계에 대한 기존의 이론들을 반박하며 애도는 지속적인 과정이며, 우리가 흔히 생각하는 것처럼 애도가 끝나고 그로부터 벗어나 다음으로 옮겨가는(move on) 개념이 아니라고 한 것이 많은 위로가 되었다.
아, 항상 나의 애도는 왜 이다지도 오래 걸리고 끝나지 않는 걸까 스스로를 의심했는데, 잘못된 게 아니었다니, 나의 감정에 대한 정당한 명분을 얻은 것 같았다.
5년 전 스위스에 있을 때 누군가 이런 말을 해주었다.
상처와 아픔은 지우는 게 아니라, 함께 안고 살아가는 것이라고.
지우려고, 잊으려고 애쓰기보다는 함께 사는 법을 배울 수 있다면 우리의 애도가 사랑하는 사람과 함께 했던 추억을 더 기리고, 삶의 한 부분으로 받아들이도록 도와주는 매개체가 될 수 있지 않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