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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Helping Hands Jun 09. 2022

순례자의 길, 순례자의 마음

길이 있기에 걷고, 삶이 있기에 살아간다.

요즘 유튜브를 통해 손미나 작가의 산티아고 순례 여정을 지켜보고 있다.


작년 우연한 기회로 그녀와 함께 저녁식사를 했는데, 그때 스페인 순례에 대한 계획을 들었다.


나와는 평생 접점이 없을 거라 여겼던 유명인과의 생각지 못한 만남이었지만, 이미 예전부터 학교 선배라는 공통점과 사회 초년생 시절 어딘가로 떠나길 꿈꾸며 설렘 반 부러움 반으로 읽었던 그녀의 책들로 인해 나는 어느 정도 일방적인 내적 친밀감을 느끼고 있던 차였다.


그래서 급작스러운 만남에도 얼마 되지 않는 연결고리를 어필하며 반가운 마음을 적극 표현했는데, 유명인답지 않은(?) 털털함과 솔직함으로 식사하며 이야기를 나누는 내내 유쾌했던 기억이 있다.


아무튼 그 당시 나는 그녀의 순례 계획을 들으면서도 순례길을 왜 가고 싶을까 하는 나 나름의 의문이 있었다. 꼭 그녀라서가 아니라, 순례길을 걷는 사람들의 마음이 궁금했다.


하지만 그러고 나서 거의 일 년이 지나도록 SNS나 다른 채널을 통해서 그녀가 순례길을 떠난다는 소식을 접할 수 없었기에, 나는 으레 ‘그래, 그 계획은 무산되었거나 영영 연기된 모양이다.’라고 지레짐작했다.


모든 일이 다 맘먹은대로 흘러가는 법은 아니니까, 충분히 그럴 수 있다고 생각했다.


그런데 얼마 전 그녀가 유튜브를 통해 순례길로 떠난다고 알렸고, 거의 일 년 전 아이디어로 나누었던 그 일을 정말 실행에 옮긴 것을 보며 난 ‘참 멋진 사람이구나.’ 생각했다.


일 년이 가까운 시간 동안, 혹은 그 이전부터 생각했을지 모를 그 일을 뚝심 있게 밀어붙였구나 싶었다.


그렇게 그녀의 순례길 여정을 지켜보며, 몇 년 전 순례길을 걸었던 친한 언니가 떠올랐다.


나보다 열 살 이상 많은, 독일에 사는 그 언니는 6년 전 나와 만났을 때 언젠가 꼭 순례길을 걷고 싶다고 했고, 2~3년 전쯤 정말로 그 일을 해냈다.


순례길은 때가 되면 순례자를 부른다고 한다.


아무 때나 순례길을 걷고 싶은 마음이 드는 것도, 아무 때나 정말로 그 길을 걷게 되는 것도 아니란 뜻이다.


인생에서 정말 그래야 하는 그 시기, 타이밍에 맞춰서 순례길이 순례자를 부른다니, 나에게도 언젠가 그때가 올지 궁금하다.


여하튼, 손미나 작가의 순례길 여정에 랜선으로나마 동행하며 순례길을 걷는다는 것이 어떤 의미일지 조금 더 가깝게 느끼고 있다.


길을 걷는다는 것, 800km 이상의 여정을 완주해야 한다는 것, 혼자 때로는 누군가와 같이 걷는다는 것, 때로는 포기하고 싶지만 내 앞에 놓인 길이 있기에 걷는다는 것, 수백 km의 길도 4~5km의 짧은 거리로 시작하는 하루(출발선)가 있어야 한다는 것, 매일 주어진 거리를 꾸준히 걸어야 한다는 것, 때로는 누군가를 돕고 또 누군가로부터 도움을 받는다는 것, 길을 걸으며 이따금 주변의 풍경을 돌아보며 즐기기도 하는 것… 왜 이 길을 걸어야 하나 싶을 때도 여전히 걸어야 한다는 것, 뒤쳐져서 실패하고 끝난 것 같아도 내일 다시 걷기 시작하면 결코 끝이 아니라는 것, 어깨에 진 짐이 많을수록 힘들다는 것, 불필요한 짐은 최대한 버려야 한다는 것…


참 여러모로 인생이라는 순례길을 걷는 것과 비슷하구나 싶다. 그래서 아마 그렇게 많은 사람들이 순례길을 걷고 싶어 하는 것이겠지.


도시의 화려함도 유명한 관광 유적지도 아닌, 평범하고 소박한 순례길을 그리도 오랫동안 고생스럽게 걷고 싶어 하는 것은 그 길이 가장 인생을 고스란히 닮아있고, 담아내고 있기 때문이 아닐까 짐작해본다.


이렇게 순례자의 마음을 조금이나마 이해하고 공감하게 된 것을 보면, 순례길이 나를 부를 날도 조금 더 가까워진 것이 아닐까 하는 희망을 가져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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