많은 분이 살면서 끊임없이 하는 고민 중 하나가 바로 진로 고민일 것입니다. 중고등학교 혹은 대학 입시를 앞둔 청소년들부터 사회에 첫발을 내디딜 준비를 하는 사회 초년생, 대학 졸업반 학생들, 이직이나 전직을 고민하는 사람들, 은퇴 이후 인생 2막을 설계하는 사람들 등 진로 고민은 나이와 시기를 가리지 않습니다.
실제로 저도 심리연구소에서 커리어/진로코칭 강의를 할 때면 이렇게 다양한 교육생분들을 만나볼 수 있었습니다. 상담전문가로서 성인 또는 청소년 내담자를 위한 진로 상담을 하기 위해 교육을 신청하는 분들, 20~30대 청년 중 커리어 고민을 하는 분들, 중년의 나이로 직장 생활을 오래 하고 커리어 전환이나 은퇴 후 어떤 일을 하면 좋을지 구상 중인 분들 등 직업군, 연령대 모두 다른 분들이셨습니다.
그러나 이렇게 각양각색의 배경을 가진 교육생분들에게서 찾아볼 수 있었던 한 가지 공통점은 바로 ‘내가 좋아하는 일, 잘할 수 있는 일, 해야 하는 일’ 사이에서 균형을 찾고 조금 더 행복하고 즐겁게 일할 수 있기를 원한다는 점이었습니다.
좋아하는 일, 잘하는 일, 해야 하는 일이 각각 무엇인지 정확하게 알 수 있다면, 그리고 그 세 가지가 모두 일치할 수 있다면 진로 고민을 할 필요가 없겠지요. 하지만 우리는 대부분 이 세 가지가 전부 정확하게 어떤 일인지 알지 못하거나, 알더라도 모두 따로국밥처럼 제각각이라 어떻게 해야 할지 모르는 난관에 부딪히곤 합니다.
올해 상반기 인기리에 방영된 <닥터 차정숙>이라는 드라마가 있습니다. 주인공인 차정숙(엄정화 분)은 의과대학에서 만난 남편과 학생 시기 결혼한 후 의대를 졸업하고 20년 동안 가정주부로 살아왔습니다. 그러나 특별한 사건을 계기로 가족에게 헌신한 삶의 결과가 가족들의 무관심이라는 생각을 하게 되면서 늦은 나이지만 레지던트 수련을 시작하기로 결심합니다. 아들은 이미 레지던트 1년 차이고, 남편과 대학 동기는 이미 병원에서 교수이자 경력이 많은 의사로 활동하고 있었지만 말이죠. 그에 반해 나이는 많지만 의사로서의 경험이나 기술은 전무한 차정숙은 레지던트 생활을 하며 여러 가지 어려움을 겪기도 하고, 그러면서 조금씩 성장해 나갑니다.
이런 소재의 드라마가 등장하게 된 배경에는 결혼과 출산, 육아로 인한 여성들의 경력단절과 직업 세계로의 복귀가 중요한 사회적 이슈가 되고 있기 때문이 아닐까 싶습니다. 비단 경력단절 여성이 아니라도 각자의 사정에 따라 우리는 때로 진로/커리어 선택에서의 정체기 또는 과도기를 경험하고는 합니다.
아직 진로 선택의 경험이 없는 청소년들은 내가 무엇을 하고 싶고 잘하는지, 하고 싶은 일을 하기 위해서는 어떤 방법으로 어떤 경로를 거쳐야 하는지에 대한 이해와 정보가 부족해서 어려움을 겪습니다. 사회 초년생들은 어떤 기준으로 직업이나 직장을 선택해야 할지, 나에게 중요한 것이 무엇인지를 잘 몰라서 문어발식으로 이곳저곳 문을 두드리거나, 남들이 생각하는 좋은 직업, 좋은 직장의 기준에 자신을 끼워 맞추려고 합니다. 높은 연봉의 대기업이나 안정적인 직장, 사회적으로 인정받는 직업이 최선의 선택이라 여기면서 말이지요.
어느 정도 사회 경험이 있고 본인 분야에서의 직무능력을 갖추고 있는 분들은 그동안의 직무 경험과 연결되면서 성장할 수 있는 일이나 더 나은 연봉, 직급을 보장받을 수 있는 커리어 설계와 관련된 고민을 하는 경우가 많습니다. 혹은 그동안 해왔던 일이 익숙하고 잘하는 일이기는 하지만 하고 싶었던 일은 아니었기에 전혀 다른 분야로의 진출을 고민하기도 합니다.
이럴 때 기억해야 할 것이 있습니다. 바로 진로를 고민하고 구체적인 방향성을 설정하기에 앞서 ‘자신에 대한 이해’가 선행되어야 한다는 것입니다. 내가 어떤 사람이며, 나는 어떤 일을 할 때 행복한지, 내가 잘하는 일은 무엇인지, 원하는 일과 관련해 나에게 그 일을 할 수 있는 능력이 있는지를 종합적으로 판단해 보는 과정을 거칠 필요가 있습니다.
그리고 그 과정에서 다음과 같은 방법을 통해 도움을 받을 수 있습니다.
STRONG 직업흥미검사를 활용해 6가지의 흥미코드(RIASEC) 중 나의 직업적 흥미코드와 내가 원하는 업무환경, 선호하는 업무 스타일 등을 확인해 볼 수 있습니다. MBTI를 통해서는 16가지 유형 분류에 따른 성격적 특성과 함께 추천 직업군, 리더십 스타일, 서로 다른 유형 간의 소통과 협력 등에 대한 정보를 얻을 수 있습니다. 그 밖에도 나와 타인의 대인관계 욕구에 대한 정보를 통해 나를 이해하고 타인과의 소통, 조화를 돕는
FIRO-B, 내가 주로 사용하는 갈등해결 방식과 상황별로 유용하게 쓰일 수 있는 다양한 갈등관리 방식에 대해 알아볼 수 있는 TKI, 강점에 대한 정보를 제공하는 Strengthfinder, 행동양식과 욕구, 흥미, 업무 스타일에 대한 정보를 제공하는 버크만 진단 등이 있습니다.
이런 심리검사를 통해 나를 보다 정확하게 이해함으로써 내가 가진 성격적 자원, 흥미, 소통방식, 문제해결방식, 욕구 등이 효과적으로 활용될 수 있는 영역은 어디일지, 혹은 반대로 이미 선택한 진로나 커리어에서 이런 특성들을 어떻게 잘 사용할 수 있을지를 탐색해 볼 수 있습니다. 이때 명심할 점은 단순히 검사 실시에 방점을 두는 것이 아니라, 정확하고 풍부한 해석을 제공해 줄 수 있는 전문가를 통해 별도의 검사 결과 해석 워크숍을 갖는 것이 중요하다는 사실입니다.
지금까지 자신이 걸어온 길과 그것이 미친 영향, 앞으로 어떤 길을 가고 싶은지 정리해 보는 것은 진로와 관련된 가치관과 우선순위를 명확하게 세우는 데 도움이 됩니다. 또, 그 안에서 본인만의 강점이나 자산, 직업적 기술(skill)을 비롯한 가용 자원은 무엇인지를 살펴보는 것도 의미 있는 작업이 될 수 있습니다. 지금까지 진로와 관련해 어떤 노력을 기울여왔으며, 현재 있는 위치에 어떻게 도달하게 되었는지 파악해 보는 것입니다. 이를 통해 앞으로 선택할 진로와 그 이유 및 목적, 그것을 통해 이루고자 하는 목표와 사명이 무엇인지를 보다 명확히 할 수 있습니다.
진로와 관련된 중요한 가치를 목록으로 만든 후, 가장 중요한 것부터 우선순위를 정해나가는 것입니다. 연봉, 성장 가능성, 안정성, 물리적 거리, 일과 삶의 균형, 근무시간, 복지, 타인 및 사회에 대한 기여와 같이 다양한 선택지들을 놓고 각 항목을 어느 정도로 중요하게 생각하는지 비교하면서 막연하게 느껴졌던 진로의 방향을 구체화해 나갈 수 있을 것입니다.
특히 아직 특정 진로나 직업군과 관련된 구체적인 경험이 없는 청소년기나 대학생 시기에는 다양한 분야를 접해보는 것이 중요합니다. 부모님이나 주변 사람의 영향으로 특정 직업군이나 영역에 관한 정보와 경험만을 접했거나 고정관념이 형성된 경우, 다양한 분야에 대한 탐색 없이 진로 결정이 이루어지기 쉽습니다. 예를 들어, 본인의 의지나 능력, 흥미와 관계없이 어릴 때부터 부모님이 특정 직업에 대한 기대를 반복적으로 심어준다거나, 주변에서 모두 한 가지 분야에 종사하는 사람들만 보고 자라 다른 영역에 대해서는 전혀 알지 못한 채 진로를 선택하게 되는 경우를 들 수 있습니다.
이렇게 다양한 영역에 대한 경험이나 충분한 조사 없이 진로를 결정하게 되면 뒤늦게 본인의 적성에 맞지 않는다든지, 본인이 원해서 결정한 길이 아니라는 후회를 느낄 수 있습니다. 또, 다른 영역에 재능이 있는데 그 분야에 대한 노출 경험이 없어서 본인이 그런 재능이 있었다는 사실조차 알지 못한 채 살아갈 수도 있습니다. 그렇기에 청소년이나 성인 초기의 진로 선택에서는 다양한 영역에 대한 경험과 관심 분야에 대한 직간접적 노출, 사전 조사가 특히 더 중요합니다.
'호모 헌드레드'라는 말이 나올 정도로 100세 시대가 다가오면서 평생직장의 개념이 희미해지고 있는 요즘, 진로 고민은 어쩌면 우리가 평생 안고 가야 할 숙제인지도 모르겠습니다. 하지만 반대로 생각해 보면, 한 가지 진로만을 맹목적으로 바라보고 달려가거나 평생 한 가지 일에만 매달리기보다 다양한 영역을 시도해 보고 많은 경험을 해볼 수 있는 기회가 늘어났다는 뜻이기도 합니다.
진로를 설계하며 때로는 이전에 내가 해왔던 일들과 연결되는 길을 가기도 하지만, 어떤 때는 전혀 다른 것 같이 보이는 길을 가게 될 때도 있습니다. 그럴 때면 그간의 경험이나 기술들이 아무 쓸모가 없는 것처럼 느껴지기도 하죠. 하지만 꼭 그런 것은 아닙니다. 분야가 다르더라도 한 분야에서 쌓아온 지식과 경험이 다른 분야에 확장 적용될 수도 있기 때문입니다.
예전에 앙리 까르티에 브레송이라는 사진작가의 전시회에서 인상 깊게 본 문구가 있습니다. 브레송의 삶을 소개하는 글이었는데, 그가 외국 생활을 하면서 사냥을 즐겼고 사냥한 고기를 마을 주민들에게 팔기도 했다는 내용이었습니다. 그러면서 브레송은 사냥할 때 총구를 겨누고 총탄을 날리는 그 순간이 사진작가로서 카메라의 뷰파인더를 누르는 그 순간과 매우 흡사하다고 느꼈다는 것입니다. 총쏘기와 카메라의 셔터 누르기, 전혀 다른 듯 보이는 이 두 가지 행위가 브레송이라는 창의적인 주체자를 통해 새롭게 연결되고 재창조된 것입니다. 서로 무관해 보이는 영역이라도 이렇게 누가, 어떻게 바라보고 활용하는지에 따라 새로운 의미와 연결고리를 가질 수 있습니다.
이런 경험이 비단 브레송에게만 국한되는 것은 아니지 않을까요? 진로와 커리어와 관련된 많은 선택의 갈림길에서, 그 어떤 선택을 하든 이전에 내가 걸어온 길과의 연결성과 함께 새로운 의미와 가치를 발견할 수 있는 여러분이 되시기를 기원합니다.
*진로/커리어 설계에 관한 더 자세한 내용이 궁금하신 분들은 저의 또 다른 브런치북 <연애로 배우는 커리어 개발 노하우> https://brunch.co.kr/brunchbook/luvcareer를 참고하시기 바랍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