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거진 MY Works

Bosco (Forest)

빛이 스치고, 바람이 지나간다

by Hemio

https://www.youtube.com/watch?v=6XpDbRrSPXY

어느 봄날, 나는 숲길을 걷고 있었다.

그날의 공기는 따스했고, 나뭇잎들은 연초록이었다.
무엇보다 인상 깊었던 건, 나무 사이로 반짝이던 빛이었다.


빛은 고요하게 움직였다.
쏟아지기보단 스쳤고, 강렬하기보단 숨결처럼 머물렀다.
그 순간, 나의 안쪽 어딘가에서
한 줄기 선율이 떠오르기 시작했다.


나는 곧장 피아노 앞에 앉았고,
멈추지 않고 손을 움직였다.
Bosco는 그렇게 한 번의 숨,
한 번의 ‘산책’처럼 흘러가며 완성되었다.
작곡 시간과 연주 시간은 정확히 같았다.


이 곡의 조성은 Db장조.
조금 낯설고 미끄러운 질감의 조성이다.
하지만 나는 이 조성이
그날의 숲을 가장 잘 담아낼 수 있다고 느꼈다.


Db는 모든 음이 검은 건반 위에 얹혀 있다.
때문에 손끝의 위치가 흔들리고, 감각이 재정렬된다.
나는 그 어긋남 속에서
자연이 내는 ‘비균형의 아름다움’을 찾고 싶었다.


곡의 1주제는 16분음표의 아르페지오 위를
한 줄기 단순한 선율이 타고 흐른다.
나는 이 부분을 쓰며,
잎사귀 사이로 반짝이는 볕을 떠올렸다.


빛은 고정된 것이 아니라, 흔들리는 것이다.
바람에 따라 모양이 바뀌고,
움직임에 따라 마음의 속도도 달라진다.
그 흐름을 붙잡기 위해
나는 최대한 간결한 선율을 택했다.


그러다 곡은 6/8박자로 자연스레 넘어간다.
이 새로운 박자 안에서
앞서 나왔던 선율이 다른 표정으로 돌아온다.


나는 이 부분에서
눈을 감고 흐르는 강을 상상했다.
강물 위로 햇살이 부서지고,
그 부서진 조각들이 내 안의 기억들을 건드린다.


이윽고 피아노의 음역은 매우 높아진다.
맑고 가벼운 음들이 흘러나오고,
나는 마치 숲속에서
하늘을 올려다보는 기분이 되었다.


Bosco는 거창한 서사가 있는 곡이 아니다.
하지만 듣는 이로 하여금,
잠깐이라도 삶의 속도를 늦추게 할 수 있다면,
그걸로 충분하다.


봄날의 산책,
빛이 반짝이던 나뭇잎,
그리고 그 순간을 음표로 옮기고 싶었던 나.


나는 그저,
그날의 공기를 이 곡 안에 가뒀다.


https://linktr.ee/comp.hemio


keyword
매거진의 이전글Drea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