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저 눈떠보니 이 세상이었다

살아가는 거창한 이유는 없다. 그저 오늘을 살아갈 뿐.

by Hemio

살아가는 이유라거나, 엄청난 사명이나 의무 같은 걸 굳이 떠올려본 적이 없다.

그저 눈떠보니 이 세상이었고, 부모님의 자식이었으며, 살아가다 보니 여기까지 왔고, 만나다 보니 어떤 사람들과 인연을 맺게 되었다. 거창하게 “인생의 목적”을 말하지 않아도, 이래도 괜찮은 걸까 싶었지만, 지금까지는 그렇게 별 탈 없이 살아왔다.


거창한 건 없을지라도...


사람들은 종종 “내가 왜 태어났고, 무슨 위대한 일을 해야 하나?”라고 고민한다. 하지만 나는 그런 질문을 늘 미루거나, 굳이 심각하게 생각해본 적이 많지 않다.


존재의 소박함

내가 특별히 무언가를 ‘해야 하는 이유’를 찾지 못한다고 해서, 존재가 무가치한 것은 아니다. 그냥 여기에 살고, 이 순간을 넘기다 보니 하루씩 지나가고, 그게 어쩌면 자연스러운 흐름 같다.



누군가의 기억에 나쁜 사람은 아니었다.


그래서 나름대로 세운 ‘나만의 기준’이 있다.


나쁜 기억을 남기지 않기

당장 대단한 업적이나 사명을 떠안지 않아도, 적어도 타인에게 “아, 저 사람은 진짜 나쁜 사람이었어”라는 인상은 남기지 않고 싶다.


충분히 괜찮은 사람

내 인생이란, 결국 주변 사람들과의 관계 속에서 의미가 만들어진다. 그 관계를 깔끔하고 따뜻하게 유지하고 싶다는 소망이면, 지금으로선 충분하다.



물론, 누군가에겐 개자식일 수도...


내가 아무리 노력해도, 누군가에게는 나쁜 사람, 못된 사람처럼 보일 가능성을 완전히 없앨 수는 없다. 가치관이 충돌하거나, 오해가 쌓일 수 있기 때문이다. 그렇다고 해서 완벽함을 지향할 필요는 없지만, 그 확률을 줄이려는 노력은 하고 싶다.


개자식일 확률을 줄이는 장치


그럼 어떻게 해야 “개자식”일 확률을 줄일 수 있을까? 내 짧은 답변은, 일상 속에서 작은 교양과 배려, 신념을 지키는 것 정도라고 느낀다.


생각: 말하기 전에 한 번 더 곱씹어본다. “이 말을 들으면 상대가 어떤 기분이 될까?”


언행: 거친 말투나 비난을 삼가고, 내가 옳다고 확신해도 타인의 입장을 조금 헤아려보려 애쓴다.


행동: 약속을 대충 깨지 않는다. 서로가 기대하는 최소한의 예의를 지킨다.


교양: 책을 읽고, 다양한 사람의 이야기(문화, 예술 등)를 접하여 “내가 모르는 세상”이 있음을 늘 의식한다.


신념: 이 모든 것이 ‘강박’이 아니라, “사람들과 불필요한 상처를 주고받지 않겠다”는 내 나름의 원칙이다.



이런 것들은 거창한 도덕 강령이 아니라, 내가 계속 보완해야 할 생활의 습관일 뿐이다. 물론 언제나 성공하지 못한다. 순간 욱해서 말실수를 하기도 하고, 게으름 부리다 속 썩이기도 한다. 하지만 완벽해질 수 없다는 걸 알기에, 조금씩 개선해가면 된다고 생각한다.


위 5가지를 지키지 못해...
언제나 실수하면서 잘못하면서 후회하면서 살아간다.
아마, 앞으로도 평생 그럴 것 같다.


목적은 없을지라도...


결국, “이 세상에 왜 태어났고, 무슨 사명을 가져야 하는가”라는 질문에 나는 별다른 답을 찾지 못했다.


거창한 비전이나 의무가 아니더라도...

그냥 내 삶을 살고, 누군가에게 치명적인 상처를 주지 않는, 그런 정도면 족하다. 그리고 인간다움을 간직하려고 조금씩 배우고 교정한다.



그저 여기에 머물되, 괜찮은 존재로 남기


“고상한 업적이나 세상을 구할 큰 비전 없이도, 나는 이대로 괜찮다”는 확신이 삶을 좀 더 편하게 만든다.


돌아보면, 누군가의 기억에 “저 사람은 정말 못됐다”는 인상이 아니라, “같이 있어도 불편하지 않았다” 정도만 남길 수 있다면, 내게는 그것으로 충분하다.



여기까지 왔고, 앞으로도 이렇게 간다


나에게는 “살아가는 이유”라는 거창한 구호가 없다. 하지만 눈떠보니 이 세상이었고, 살다보니 여기까지 왔다. 만나다 보니 이런 관계망이 생겼고, 그 관계 속에서 크게 해를 끼치지 않고 살아가고 싶다는 소박한 바람이 전부다.


언제까지나 완벽할 수 없다는 전제 하에, 내가 할 수 있는 건 ‘개자식일 확률’을 조금이라도 줄이는 것, 그리고 가끔이라도 누군가의 곁에서 따뜻한 사람으로 기억되는 것이다.


의미는 그게 내 삶의 버팀목이고, 깊은 철학이나 장대한 사명 없이도 꽤 만족스럽게 살 수 있는 이유다.


결국, 이 글의 핵심은, 삶의 목적이 거창해야만 소중한 것이 아니라는 사실이다. 소소한 일상에서 인간다움을 유지하는 최소한의 교양, 그리고 주변에 해를 덜 끼치는 태도가 있다면, 그걸로도 충분히 삶을 영위할 가치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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