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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방인 Dec 13. 2023

먹어 삼키는 사랑에 관해.

구의 증명(최진영)



걱정하는 마음.

그게 있어야 세상에 흉한 짓 안 하고 산다.

구의 증명 중



어쩌면 나를 바로 세운건 걱정하는 마음이었을지도.

기대하지 않더라도 걱정하는 마음이 있어 가족을 버리지도, 나를 버리지도 않았을 수 있었겠다는 생각.

그게 흉하지 않게 자랄 수 있게 해 줬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이런 마음조차도 사랑에 기저를 두어야 하는 걸까.

사랑이 대체 어떤 마음이길래…



타인에 대한 사랑은 매번 의문이 들었다.

길바닥에 널려 있는 사랑이 사랑 같지 않아서 모두 가짜라고 생각했다.

세상에 사랑이 너무 많은 것 같아서 진짜를 가려내고 싶다고 자주 그랬다.

진짜 사랑은 어쩌면 없는 거라고 짐작했고,

다른 감정을 사랑으로 위장한 것이라 확신하기도 했다.

사랑을 하고 있지만 진정한 사랑은 할 수 없는 것이라고 생각했다.

그래서 영화나 드라마에 나오는 사랑이라야 쉽고 좋았다.

픽션이잖아..라는 아주 간편하고 분명한 이유가 되어 주었다.

절대 저항할 수 없는 단호한 이유라 생각했다.

거기서 사랑은 누구도 뭐라 할 수 없는 분명한 가짜였다.


사랑의 정의를 지속성과 시간에 두는 사람들은 일회성 사랑을 극도로 터부시 한다.

오랜 연인들에게 감탄하고 숙성됨에 놀란다.

마치 그들의 관계를 역사 대하듯 진지하게 읽는다.

노력에 의한 연장선이나, 직관적 감정에 솔직한 것이나 내가 보기엔 둘 다 시시할 뿐인데 말이다.

사랑이라기보다 그저 자신의 필요에 의한 시간이고 관계들인 것이다.

그 과정에 있어 어떤 사람은 긴 시간이 필요하고, 어떤 사람은 잠깐이면 되었을 뿐.

그럴싸해 보이기 위해 듣기 좋은 사랑으로 포장되어 그렇지 종국에는 모두 자신을 위한 것들이다.


황폐한 죽음에 이른 가여운 구를 끝내는 꾹꾹 먹어 삼키는 담이를 보면서

사랑의 끝이 결국 자신이라는 나의 생각을 보기좋게 증명해 주는 듯했다.


나보다 앞에 세울 수 있는 사랑은 없다.

내 앞에 세울 수 있는 사랑의 대상이란 있을 수 없었다.

모두 나로부터 기인한 것이라야 했다.

사랑의 종착지는 역시 나.

거기에 타인은 이용되고 훼손될 뿐이었다.


사랑보다 여리지만 강한 다른 마음들이 세상을 지킨다.

구태여 사랑이 아니라 걱정하는 마음처럼 세밀한 다른 마음들..

사람을 움직이는 건 사랑 뒤에 가려진 다른 마음들일 거란 생각이 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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