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왜 죽지 않았는가(최진영)
추억하는 것은 싫다.
과거는 거짓된 기분이다.
자꾸 과거를 묻고 회상하는 쪽의 대화를 나누고자 하면 검은 말들이 조각조각 떠다닌다.
좋았던 적이 없고 나다운 적이 없던 시절의 이야기들이다.
정확하지 않은 기억들을 되짚어가며 애써 무언가를 꺼내놓는 것은 늘 거북하기만 했다.
다른 종류의 것들이 필요하다 느껴졌다.
기억은 왜곡되기 마련이고,
왜곡된 이야기들은 자기한테 유리하게 기울어질 뿐이다.
그러고 나면 진실과 상관없는 염오만 더욱더 커진다.
상처를 더 곪게 하는 것은 어쩌면 사실보다 그런 불확실한 기억일 수 있겠다 싶었다.
또렷하지 않은 기억의 파편이 인생을 조용히 오랜 시간 휘저어 놓듯이...
꾸준함의 힘은 상당해서 그런 미세한 흠이 결국 모든 걸 끝내 버리고 만다.
그것이 어떤 의미에서는 사랑일지라도 말이다.
과거를 묻어야 하는가.
과거를 잊어야 하는가.
과거는 그저 과거로 두어야 하는가.
그렇지 않다.
과거는 용서되고 이해되어야 한다는 말이다.
그래서 충분히 수용하고 담아낼 수 있어야 한다.
무턱대고가 아니라 확실하게 이해될 수 있어야 하는 것.
대신 누군가로부터가 아닌 나.로. 부. 터.
나에 대한 깊은 이해와 사려가 동반될 때 현재를 수긍할 수 있고 나아가 다음을 도모할 수 있게 된다.
비로소 내가 여기저기로 부유하지 않고 나다워질 수 있게 되는 것이다.
모든 의심을 착각으로 만들고 착각을 무의미로 만든 기억.
아무도 말한 적 없지만, 원도는 모두가 그렇게 믿는다고 믿었다.
그래서 원도 역시 그렇다고 믿었다.
순서 때문이다.
나는 왜 죽지 않았는가 중에서
우리는 물건을 잃어버리면 으레 지나온 자리로 돌아가 다시 찬찬히 둘러보고 짚어 본다.
그렇듯 나를 잃어버린 시간이 있다면 그 시간으로 돌아가 다시 머물러 봐야 한다.
치우치지 않고 묵연하게 차근차근 다시 읽어봐야 한다.
놓치지 않을 마음을 갖고 여기저기 둘러봐야 찾을 수 있다.
그게 무엇이 되었든.
절름발이 인생이 되지 않고 싶다면 늦지 않게 기울어진 곳을 다시 채워야 한다.
세상이 아닌 내가,
나를 이해하고 용서하고 아껴주는 시간들이 바탕을 이루어서 말이다.
그런 것들이 기울어져 있는 곳을 채워주고 균형을 이루게 해 주리리라 생각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