두고 온 여름(성해나)
가족의 의미라는 게 어느 순간 폭력처럼 느껴지기 시작했다.
가족이라는 미명아래 일말의 가책도 없이 행해지는 당연한 감정과 의무(?)들이 싫었다.
대체 가족이 무엇이길래…
당최 좁혀지지 않는 가족의 범주에 의문이 들었다.
태어나면서부터 원하든 원하지 않든 우리는 가족을 형성하게 된다.
엄마와 아빠, 동생과 언니, 누나, 오빠, 형들의 존재가 따라붙는다.
결혼함과 동시에 남편, 혹은 아내의 식구들이 또 다른 나의 가족이 된다.
그러다 나의 자녀가 결혼이라도 하면 내 아이의 배우자, 또 그에 가족들까지 내 가족의 범주안에 들어온다.
나의 의지와는 상관없이 끝도 없이 계속 뻗어나가는 모양새다.
새롭게 파생되는 끊임없는 관계의 연속성에 체기가 올라온다.
이 관계들이 반갑지 않다.
되려 의문점이 생기기 시작했다.
이 단순한 관계들이 과연 가족일까.
가족이라는 건 정말 어떤 의미인 걸까.
어쩌면 우연히 겹쳐지는 인연들에 불과한 건 아닐까.
그렇다면 어쩌다 닿게 되는 타인들과 가족의 차이란 대체 무엇일까.
제도 안에서 묶이면 그저 가족이 되어버리는 걸까.
가족이 뭐길래 우리는 번번이 가족이잖아를 운운하며 상대에게 의무를 부여할까.
가족이라서 괜찮아,
가족이라서 이해하잖아.
가족이니깐 해줄 수 있잖아.
가족이니깐..
이렇든 저렇든 가족이니깐..이라는 전제조건은 불합리하게 느껴진다.
가족이니깐이라는 조건에는 항상 ‘함. 부.로’가 내포되어 있는 듯해서 더욱 그렇다.
왜 타인일 때는 주저하고 조심할 일도 가족이라는 관계가 성립되면 응당 그러하듯 요구하고, 아무렇지 않게 행동하게 되는 걸까.
가족이라는 단어가 주는 의미가 대체 무엇이길래 그토록 폭력적으로 변해도 별게 아닌 듯 생각하게 되는 걸까.
그렇다면 가족이라는 관계는 진정 우리가 고귀하게 여겨야 하는 것이 맞기는 한 걸까.
여기서 나는 하나만 바꿔 생각하고 싶어 진다.
사람이라서, 인간이라서,
인간이니깐 괜찮아,
인간이니깐 이해하잖아.
인간이니깐 해줄 수 있잖아.
사람이니깐…
우리가 일반적으로 가족의 의미가 의무적인 사랑과 희생이라 생각한다면..
사실 그건 가족이어서가 아니라 그럴 마음이 준비된 보다 인간적인 마음을 가진 사람들 사이에서 나오는 것이 아닐까 싶다.
내가 온 마음을 다 내어줄 작정이 되어있는 사이.
깊어질 대로 깊어진 관계.
나는 그런 관계야말로 가족이 아닐까 생각한다.
그저 결혼했으니깐, 내 아이니깐, 내 부모니까..라는 단순함은
가족이라는 단어가 주는 횡포에 불과하게 느껴진다.
종일 마음을 내어주고 시시때때로 묽어질 수 있는 관계.
가족이라는 틀에서 안달하지 않고, 개인의 온전한 마음에 기대어 형성되는 관계.
제도에 앞서 마음이 움직여지는 관계.
그런 것들이야말로 우리가 진정 원하고 있는 가족이 아닐까.
형식적으로는 꼭 그것들이 지금 우리가 알고 있는 가족의 형태가 아니더라도 말이다.
-갑자기 가족이 될 수 있으리 없다고 인색하게 거리를 벌리다가도 이런 순간이면,
차곡차곡 쌓아온 마음이 맥없이 허물어지고 마음이 부드럽게 기울었다.
(두고 온 여름 중)
사회가 규정짓고 사전에서 명시하는 가족에서 해방되고 싶다.
그런 틀에서 벗어나지 못한 채 마음에도 없는 것들을 해야만 하는 것에서 벗어나길 원한다.
한 개인으로서 인간다움을 갖추고 서로 깊어지는 진짜 관계를 맺고 싶다.
나의 마음을 움직이는 것은 그저 단순히 가족이어서 가족인 것처럼 주고받는 진짜는 빠져 있는 마음들이 아니다
기하의 아빠와 같은 진정한 인간다움.
기하의 아빠로부터 나오는 재하에 대한 깊은 마음.
재하를 끝까지 포기하지 않고자 하는 불어난 조용한 사랑.
나는 그런 마음들로 이어진 관계야말로 진짜 가족이라 말하고 싶다.
이런 것들이야말로
잔인할 정도로 너무 따뜻하다 못해 뜨겁게 느껴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