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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방인 Nov 21. 2023

읽지 말라고 쓰는 당신의 이야기.

달력뒤에 쓴 유서(민병훈)

나에 대해 쓰는 글이 쉬울까.

남의 이야기를 쓰는 것이 쉬울까.


가장 잘 쓸 수 있는 글은 경험에서 나온다.

하지만 나는 쓸 때마다 한계에 부딪친다.

연민을 도려낸 채 이야기를 하기가 쉽지 않다.

번번이 너무 감정에 휩쓸려 왜곡된다는 느낌을 받는다.

그러면 남의 이야기를 통해야만 건너편에서 얘기하듯 할 수 있는 걸까 싶어 진다.

결론은 애초에 하지 않는 게 나았다로 넘어간다.

자의식을 깨고 풀어내기까지 주저함이 반복된다.

자신의 이야기를 하는 것은 그만큼.

어렵다.



나는 여전히 에두르고, 빙빙 돌고, 중요한 것을 분명하게 말하지 않았다.

-달력뒤에 쓴 유서 중




남의 이야기는 큰 일에도 담백하다.

시간들 사이 오가는 무수한 감정들이 매몰차게 배제된다.

나의 이야기라면 가벼운 사건에도 질척거린다.

그 속에 쌓인 산뜻하지 못한 감정들이 넘쳐 난다.

나의 이야기와 남의 이야기 사이에서 혼란스러워지는 이유다.


하지만 우리는 어떻게든 하고 싶은 저마다의 이야기들이 있다.

안 하면 안 되는 이야기.

할 수밖에 없는 이야기.

해야만 하는 이야기.

그래야 살 것 같은 이야기.

그러고 나서야 앞으로 나아갈 수 있을 것 같은 이야기.

그런 이야기들은 풀어내기 두렵지만 분명히 해야 한다.

대신에 정말 큰 용기가 필요하다.


자전적 소설.

토해내듯 쏟아지는 이야기에 무자별적인 폭격을 당해서 어지러웠다.

적나라했고 심하게 상세했다.

중간중간 끊어진 이야기들이 있었지만 없어도 그만이었다.

정제된 감정인 듯 보였지만 오히려 더 날 것처럼 느껴졌다.

그들 사이에 아슬아슬하게 서 있었다.

너무 닿거나 떨어지지 않게-

진짜는 늘 조심스러웠다.


우리를 위한 이야기가 아니다.

당신들을 위한 이야기도 아니다.

여전히 그곳에 멈추어 있던 그를 위한 이야기일 뿐이다.

그런 이야기를 무엇하러 하냐는 질문이 읽는 내내 웅성거렸지만 그의 용기에 또 반하기도 했다.


읽지 말라고 쓰는 이야기도 이야기이지 않은가.

한 사람을 위한 소설도 소설이지 않은가.


무엇보다 누구여도 상관없이 들어주면 되지 않겠는가.

가능하다면 무심하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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