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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퍼플슈룹 Sep 02. 2022

부모 행복이 먼저일까? 아이 행복이 먼저일까?

힘들었죠?

 우리 준이, 오늘도 졸고 있네요

오늘도 어김없이 꾸벅꾸벅 졸고 있는 준이를 향해 여러 선생님들이 걱정스러운 이야기를 쏟아낸다. 6살 준이는 항상 짐이 덜 깨서 어린이집에 등원하고 가장 마지막까지 남아 있는 아이였다. 준이 엄마는 직장생활을 하지 않음에도 불구하고, 항상 마지막에 아이를 데리고 갔다. 이유가 궁금했지만, 묻지 않았다. 준이 걱정에 마음이 무거웠던 어느 날, 친구와 놀이하던 준이가 이런 말을 했다. “우리 엄마랑 아빠는 밤에 컴퓨터 한다. 그래서 나도 같이 한다.”


처음에는 어느 집에서나 흔히 볼 수 있는 풍경이라 생각해서 크게 신경 쓰지 않았다. 그런데 준이가 이어서 하는 말은 예사롭지 않았다. “엄마, 아빠는 깜깜해도 게임한다. 나도 옆에서 구경해. 잠도 거기서 자” 이 말은, ‘준이 부모님이 밤늦게까지 게임하고, 준이가 그 옆에서 잠이 든다는 얘기란 말인가?’ 확인이 필요했다. 그날 오후 원장님에게 상황을 전달했고, 준이 엄마와 면담 날짜를 잡았다. 면담 당일 준이가 어린이집에서 보이는 행동에 대해 자세하게 전달했다. 내 이야기가 길어질수록 준이 엄마 표정은 점점 상기됐다. 가만히 고개를 숙이고, 이야기를 듣던 준이 엄마는 자신의 이야기를 담담하게 풀어냈다. 


남편과 고등학교 때 만나 20살에 준이를 출산했다. 준이 조부모님들은 일을 하고 있었기 때문에 손자를 돌봐줄 수 없었다. 남편도 일 한다는 이유로 양육에 동참하지 않았다. 준이를 사랑하고 아꼈지만, 매일이 고통이었다고 말했다. 마음대로 나갈 수도 없고, 매일 밤을 지새워도 아이는 보채기만 하고 이유도 모른 채 뜬눈으로 밤을 지새운 날이 셀 수 없이 많았다. 누구 하나 도와줄 사람 없는 하루하루가 지옥이었고, 아이를 안고 눈물로 지새우는 날은 허다했다. 모든 원망은 남편에게 향했고, 부부싸움이 잦아질 수밖에 없었다. 20살밖에 안 된 어린 엄마가 갓 태어난 아이를 홀로 감당하기란 여간 어려운 일이 아니었을 것이다.


부부는 긴 고민 끝에 아이를 재우고 컴퓨터 게임을 함께 하기로 결정했다. 밤에 마음대로 나갈 수 없는데 이만한 방법이 없다며 좋아했던 부부. 준이 엄마는 무엇보다 게임을 하는 동안 남편과 대화할 수 있어서 행복했다며 빙긋 웃었다. 아무런 준비 없이 세상에 던져진 부모가 내린 최선이었다. 측은한 마음이 들어 등을 토닥토닥 해주고 싶었지만, 위로의 말로 대신했다. 


“어머니, 혼자서 얼마나 힘드셨어요.”


내 말을 듣던 엄마가 고개를 푹 숙인 준이 엄마, 어깨가 들썩이기 시작했다. 험한 세상에 아이와 함께 던져진 준이 엄마는 얼마나 외롭고 쓸쓸했을까? 그 마음에 깊이 공감하며 조용히 엄마를 기다렸다. 엄마가 아이를 방에서 재운 후 방을 나가는데, 아이가 자꾸 자다가 깨서 엄마를 찾는다고 했다. 6살 준이는 자다 깼을 때, 엄마가 없어서 자주 울었고 엄마가 있는 곳에서 밤을 지새웠다고 했다. 환한 방에서 아이가 잠을 편하게 자는 건 어려운 일. 결국 게임하는 엄마, 아빠 모습을 보며 자다 깨다를 반복했던 것이다. 다시는 이런 일 없도록 하겠다는 엄마의 다짐을 받고 면담을 마쳤다.





최근 부부 상담 프로그램에서 이런 엄마를 본 적이 있다. 평소 남편에 대한 불만이 많던 아내는 화가 날 때마다 7살 딸을 혼자 두고 장시간 집을 비웠다. 집에 홀로 남은 7살 딸은 엄마가 어디를 갔는지 몰라서 불안했다. 집 이곳저곳을 뛰어다니며 우왕좌왕했다. 뛰다가 멈춰서 가만히 TV를 멍하니 바라보거나, 넋이 나간 사람처럼 창문을 바라보며 서 있길 무한 반복했다. 전문가는 아이의 모습을 보고 경악을 금치 못했지만, 엄마는 아무 문제를 못 느꼈다. 7살이 집에 혼자 있으면 문제가 되냐며 오히려 반문했다. 엄마는 오로지 자신의 감정에만 몰입돼서 불안에 몸부림치는 아이의 모습을 전혀 눈치 채지 못하고 있었다. 지금 눈앞에 닥친 어려움에 빠져서 아이가 병들어가는 걸 모르고 지나치는 모습이 마치 준이 부모님과 비슷했다.


부모가 행복해야 아이가 행복하다는 말이 있는데, 과연 부모 행복과 아이 행복 어느 쪽이 먼저일까? 사실 정답은 없다. 각자의 가치관에 따라 다르기 때문에 옳고 그름을 따질 수 없다. 그렇지만 명확한 기준은 필요하다. 아이의 안전과 관련된 일이라면 두말할 것 없이 아이가 먼저다. 특히 아이가 어리면 어릴수록 부모는 아이를 안전한 곳에서 돌봐야할 의무가 있다. 이 명제에 면죄부는 있을 수 없다. 혹시 나는 해당되지 않는다고 생각하고 있는가? 내 감정에 빠져 아이의 안전을 외면하고 있는 건 아닌지 자신을 점검할 필요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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