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음 깊은 곳 응어리
화가 잔뜩 난 표정으로 들어온 희철이가 씩씩대며 말했다.
“어른이 되면 사과를 안 해도 되나요?
나도 크면 선생님처럼 절대 사과하지 않을 거야.”
무엇 때문에 화가 났는지 물어보려고 희철이를 따라 교실로 들어갔다. 상황은 이랬다. 알림장을 쓰고 있던 희철이에게 친구가 다가와 말했다. “숙제 좀 도와줘.” 희철이는 하던 일을 마치고 도와주겠다고 말했는데, 친구는 자기부터 도와달라며 계속 다그쳤다. 희철이는 기다려 달라, 친구는 당장 도와달라며 서로 옥신각신 하고 있었다. 담임 선생님이 지나가다 이 모습을 보고 희철이에게 친구를 도와주지 않는다고 야단을 친 것이다. 억지를 부린 건 친구인데, 선생님이 이야기를 제대로 들어보지도 않고 자신만 핀잔한 상황이 억울했던 희철이. 얘기를 들어보니 나 같아도 억울했을 일이다. ‘담임 선생님이 바쁘셨나, 왜 그러셨을까’ 생각하며 분해 죽겠는 아이를 다독였다. 아이 얘기를 듣다가 문득 학창 시절이 스쳐 지났다.
고등학교 2학년 야간 자율학습 시간, 공부를 하던 중 짝꿍이 나에게 숙제를 물었다. 대답을 한 후 고개를 숙였는데 뭔가 이상한 기운이 느껴져서 고개를 들어보니 감독관 선생님이 나를 쳐다보고 있었다. 눈이 마주쳤지만, 아무 잘못이 없다고 생각한 나는 계속 쳐다보고 있었다. 감독관 선생님은 오른손을 까딱까딱 거리며 나를 불렀다. 뭔가 잘못됐음을 감지하고 긴장된 마음으로 복도로 나갔다. 선생님은 가만히 나를 한참을 쳐다보고 있다 아무 말 없이 따귀를 때렸다. 놀란 나는 뺨을 부여잡고 뒤로 주춤하면서 왜 이러냐고 말하려 했다. 그러나 “들어가!”라는 말만 남긴 채 사라져 버렸다. 저항할 틈도 없이 따귀를 맞고 억울해서 엉엉 울었고, 숙제를 물어본 친구는 미안해서 안절부절못했다. 내 학창 시절 모습이 희철이와 꼭 닮아 있었다. 그 생각을 하니 마음속에서 뜨거운 기운이 올라왔다.
깊은 생각에 빠진 나를 희철이가 흔들었다. “선생님, 제 얘기 듣고 계세요?” 옆에서 이야기를 듣고 있던 아이들이 하나, 둘 모여 저마다 억울했던 경험을 말하기 시작했다. 내기라도 하듯 서로가 더 억울했었다며 말하는 모습이 안쓰럽기까지 했다.
어린 시절 누구나 한 번쯤 억울한 일을 경험한다. 아니, 어른이 돼서도 이런 일은 계속 있다. 억울한 일을 경험하는 것까지 그럴 수 있다고 이해하지만, 이후 생기는 어른들의 대응은 상당히 관계를 불편하게 만든다. 앞, 뒤 상황을 알아보기는커녕, 눈에 보인 것만으로 판단한다. 그런데 더 화가 나는 포인트가 있다. 오해에서 비롯된 걸 나중에 알더라도 어른은 절대 사과하지 않는다. 이런 일을 자주 경험한다면 응어리로 깊숙하게 자리마음에 응어리로 남는다. 결국 희철이처럼 어른이 되면 사과하지 않아도 된다고 생각한다.
아이러니하게도, 요즘은 달라졌다. 육아 도서, 각종 강연 등에서 어른이 잘못된 행동을 했을 때 진심을 담아 사과해야 한다고 강조한다. 그런데 현실은 다르다. 아이 옷을 입히는데, 아이가 짜증내면 미안하다고 한다. 아이가 자신의 요구가 빨리 받아들여지지 않는다고 짜증내면 부모는 미안해하며 쩔쩔맨다. 장난감을 사주지 않는다고 떼를 쓰는데, 오히려 미안해한다. 부모는 아이의 마음을 읽어주지 못하고 요구를 들어주지 못해서 그저 미안하다. 미안해하는 이유는 내 아이의 자아존중감이 다칠까 봐 불안해서다. 자아존중감은 내가 나를 가치 있고 좋은 사람이라고 생각하는 힘이다. 나는 존중받을만한 사람이고, 당신도 존중받을 사람이란 걸아는 마음이다. 장난감 사주지 않는다고 쉽게 무너질만한 정서가 아니다.
시도 때도 없이 하는 사과를 하는 것이 중요한 게 아니다. 아이를 하나의 인격체로 인정하고 존중하면서 어른도 잘못하면 사과한다는 걸 보여줘야 한다. 어른의 진정성이 담긴 모습을 보면서 아이들은 배우고 행한다.
‘아, 어른도 잘못하면 사과하는구나. 나도 똑같이 해봐야지.’